민주주의의 실질을 담아낸 남북의 첫 헌법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촛불바다'가 되살린 민주주의의 기억

2008년 5월과 6월 두 달 동안,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저항의 촛불을 들고 광장과 거리를 메운 각계각층 군중이 함께 부른 노래가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초여름 밤하늘에 울려퍼진 군중합창의 노랫말은 60년 전에 지어진 것이다. 그것은 1948년 7월 17일에 제정된 헌법 제1조와 제2조의 규정이다. 1987년 10월 29일에 개정된 현행헌법에서는 그 두 조문이 합해져 제1조로 되었다.

각계각층 대중이 저항의 촛불을 밝히고 이명박 정권을 질타하면서 헌법조문을 노래로 부른 것을, 저항의식의 집단적 표출이라고만 평이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헌법 제1조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였건만, 실제로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고, 국민의 요구를 등진 소수집권자들에게 권력이 집중된 것은 명백하게 현행헌법 제1조의 규정을 훼손한 반역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 각계각층 대중이 '촛불바다'에서 건져낸 깨달음의 내용이다. 서울 도심의 밤거리에 장엄하게 펼쳐진 '촛불바다'는, 입으로만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말하는 어구 민주주의(verbal democracy)의 기만성을 폭로한 거대한 정치각성의 공간이었다.

주권이 봉건군주나 독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으므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조문은 지극히 당연한 말로 들리고, 그래서 무심하게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실현이냐 아니면 민주주의의 실패냐를 좌우하는 핵심명제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 핵심명제를 노랫말에 실어 합창하던 대중의 시야 밖에는, 눈여겨보아야 할 사실이 하나 더 놓여있었다. 그것은 1948년에 제정되고 1987년에 개정된 현행헌법에 들어있는 민주주의의 핵심명제가 1948년 9월 8일에 공포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제1조와 제2조에도 들어있었다는 사실이다. 북측의 첫 헌법 제1조와 제2조는, "우리나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고 규정하였다.

놀라운 것은, 1948년에 서울과 평양에서 약간의 시차를 두고 각각 제정, 공포된 두 헌법이 일치된 내용을 맨앞자리에 앉혔다는 점이다. 이것을 우연한 일치로 볼 수 없다. 그 일치현상은 60년 전 한반도에 분단체제가 고착화되기 직전에 남북에서 똑같은 정치적 요구가 제기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정치적 요구는 남과 북을 가릴 것 없이 한반도 전역의 모든 국민(인민)에게 절실한 요구였다.

60년 전, 남북에서 똑같이 제기된 정치적 요구를 실현하는 길은,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한반도 전역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제정, 공포된 두 헌법이 맨앞자리에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최고의 정치과업을 앉힌 까닭이 거기에 있다.

우선 용어선택문제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측의 첫 헌법은 주권이 인민에게 있다고 명시하였고, 남측의 첫 헌법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명시하였다. 그렇지만 역사자료를 살펴보면, 남측의 첫 헌법초안에서도 인민이라는 말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남측의 헌법기초위원회 전문위원 10명이 1948년 4월에 작성한 헌법초안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어 있었다.

그런데 1948년 5월 31일에 개원한 제헌국회에서 제헌의원 30명으로 구성한 헌법기초위원회가 헌법초안을 검토할 때, 위원 한 사람이 "인민위원회에서 쓰는 인민이라는 말만 들어도 골치가 아프다"고 하면서 용어교체를 요구하자 헌법기초위원회가 표결에 들어갔고, 결국 남북이 공통적으로 쓰던 인민(people)이라는 좋은 말을 '황국신민'의 국가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일제잔재어인 국민(national)이라는 말로 바꿔버리고 말았다. 인민이라는 말이 남측의 헌법조문에서 실종되고 국민이라는 일제잔재어가 들어간 것은, 인민이라는 말을 좌파 전용어로 여긴 헌법기초위원회의 어이없는 결정이었다.

인민이라는 남북공용어가 헌법에서 실종된 뒤에 남측에서 민주주의를 논할 때 인민민주주의(people's democracy)라는 말을 쓰기 어렵게 되었으니 하는 수 없이 국민민주주의라는 말을 써야 하였는데, 그 말 자체가 너무 어색해서 쓰이지 않았고, 한때 진보적 지식인들은 민중민주주의라는 말을 쓰기도 하였다.

남북의 첫 헌법, 공통적인 내용을 담았다

원래 인민민주주의란 인민이라는 역사의 주체가 민주주의라는 역사적 과업을 만나는 역사발전단계에서 쓰이는 합성어이다. 남북이 그 합성어를 함께 써오던 중에 남측 국회에서 인민이라는 말을 거부하였으므로, 그 합성어는 자연히 북측에서만 쓰게 되었는데, 북측에서 쓴다는 이유만으로 인민민주주의라는 말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옹졸하고 편협한 일이다. 그렇지만 용어선택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이 글에서는 인민민주주의를 진보적 민주주의(progressive democracy)라는 말로 바꿔 쓴다.

60년 전 한반도의 정치상황을 논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남측의 첫 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명시하였고, 북측의 첫 헌법은 사회주의를 명시하였으리라고 속단하기 쉽지만, 놀랍게도 그 두 헌법은 표현방식만 다를 뿐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공통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오늘의 남측 현실에서는 믿기 힘든 일이지만, 남측의 첫 헌법은 북측의 첫 헌법과 마찬가지로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명시하였던 것이다.

남북의 첫 헌법이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똑같이 명시한 것은, 한반도 전역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통일적으로 실현하는 사회역사발전방향이 탄탄하게 정해져 있었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일제식민통치로부터 해방된 한반도에 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을 건설하는 역사적 과업은, 남북의 첫 헌법이 똑같이 규정한 대로,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과업이었다. 한반도 전역에서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않고서는 민주공화국을 건설할 수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남북의 첫 헌법이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똑같이 명시한 것은, 남북의 사회체제가 서로 달라서 나라가 갈라진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논거로 된다.

그렇다면 남북의 첫 헌법에 담긴 진보적 민주주의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국민(인민)의 자유권적 기본권만이 아니라 실질적 권리도 보장하는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가 국민(인민)의 실질적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자유권적 기본권만 겨우 보장해주는 초보단계에 머무를 때, 초보적 민주주의가 보장해주는 권리는 실질 없는 공허한 권리로 될 수밖에 없다. 자유권적 기본권에 더하여 실질적 권리까지 보장될 때, 그때 비로소 남북의 첫 헌법에서 주권이 국민(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인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 민주주의의 핵심명제가 실현되는 것이다. 남북의 첫 헌법에 명시된 국민(인민)의 실질적 권리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서 필수요소이다. 그 필수요소는 아래와 같이 설명된다.

민주주의의 실질은 무엇이었을까?

일제식민통치 40년 동안 식민지조선에서는 소작제가 줄곧 유지되었다. 일제의 식량약탈정책으로 식민지농업경제가 파탄에 이를수록 소작농과 빈농은 늘어났고 지주의 착취는 가혹하였다. 8.15 광복으로 일제식민통치에서 벗어났으나 낙후한 농업경제를 물려받은 데다가, 소작농과 빈농이 근로대중의 절대다수를 차지하였던 한반도에서, 소작제 폐지와 토지개혁은 거의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 정치과업이었다.

일제침략자들이 식민지조선에서 강탈한 천문학적 규모의 재화와 자산들 가운데는 막대한 부동산이 있었는데, 강탈당한 부동산은 거의 토지였다. 조선인 지주가 주로 농지를 소유하고 소작농을 착취하였다면, 일제침략자들은 농지를 포함한 토지 전반을 강탈, 점유하였고, 점유한 토지 가운데 일부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일제가 패망하여 한반도에서 쫓겨가자, 일제침략자들이 버리고 떠난 토지의 법적 귀속문제가 제기되었다. 토지개혁은 불가피하였다.

토지개혁은 북측에서 먼저 실시되었다. 북측의 첫 헌법 제6조는 "전 일본국가와 일본인의 소유토지 및 조선인 지주의 소유토지는 몰수한다. 소작제도는 영원히 폐지한다"고 규정하였다. 이 규정에서 눈여겨볼 것은, 일제침략자들이 소유하였던 토지를 몰수하는 과업과 조선인 지주들이 소유한 토지를 몰수하는 과업을 구분하였다는 점이다. 일제침략자들이 소유하였던 토지 가운데서 비농지 부동산은 몰수하여 국유화하였고, 조선인 지주들이 소유한 농지는 몰수하되 국유화하지 않고 소작농과 빈농에게 개인소유농지로 나누어주었다. 일제침략자들이 소유하였던 농지 역시 몰수하되 국유화하지 않고 소작농과 빈농에게 나누어주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헌법에서는 규정되지 않았지만, 북측에서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소유한 토지 역시 몰수하여 농지는 소작농과 빈농에게 나누어주었고 비농지 부동산은 국유화하였다.

북측에서 실시된 토지개혁은 지주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경제기반을 박탈함으로써 그들을 사회정치적으로 청산하였을 뿐 아니라, 소작농과 빈농에게 농지를 나누어줌으로써 모든 농민을 농업생산의 주역으로 나서게 만든 진보적 민주주의의 핵심과업이었다.

그렇다면 남측의 첫 헌법은 토지개혁과업을 어떻게 규정하였을까? 그 헌법 제86조는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고 비교적 간단하게 규정하였다.

남측과 북측의 헌법조문에서 나타난 차이는, 토지개혁(land reform)과 농지개혁(agrarian reform) 사이에 놓인 기본개념의 차이이다. 북측에서는 농지를 포함한 토지 전반을 개혁하는 토지개혁를 헌법적으로 규정하였고, 그에 비해 남측에서는 토지 가운데서 농지(farmland)만을 개혁범위에 포함시켰을 뿐이고, 건물, 택지, 임야, 산림 같은 비농지 부동산은 지주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계속 소유하도록 허용하였다.

개혁범위만이 아니라 개혁방식에서도 큰 차이가 나타났는데, 북측에서는 토지 전반을 무상몰수 무상분배하였고, 남측에서는 농지만을 유상수매 유상분배하였다. 유상수매 유상분배란, 정부가 지주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소유한 농지를 사들여서 농민에게 파는 방식이다.

북측에서 토지개혁이 실시되고, 남측에서도 농지개혁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남측의 지주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자기 땅을 빼앗길까봐 불안해졌다. 지주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집결한 우익정당들인 한국민주당과 대한국민당이 1949년에 합당하여 생겨난 민주국민당이 국회에서 다수당이 되고, 민국당 주요인사들이 내무장관, 재무장관, 상공장관, 교통장관, 체신장관을 차지하여 사실상 내각을 장악하자, 그들은 농지개혁을 주장한 조봉암을 농림장관 자리에서 쫓아내고, 첫 헌법에 규정된 농지개혁이 실시되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유상수매 유상분배 방식에 따른 농지개혁법을 놓고 국회에서 말싸움이 벌어지면서 농지개혁법 입안일정이 표류하였고, 그 사이에 지주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자기들이 소유한 땅을 팔아치웠다. 이승만 정부는 일부러 늑장을 부리다가 1950년 3월 25일에 가서야 농지개혁법 시행령을 공포하였는데, 그 법의 적용을 받아야 할 농지는 이미 지주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소유가 아니었다. 이승만 정부가 지주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게서 사들인 농지면적은 60만1천97정보였다. 지주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은 농지를 팔아치운 대신에 비농지 부동산을 움켜쥐고서 부동산 가치를 높여줄 산업화 시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농지개혁은 실패작이었다.

남측에서 농지개혁이 실패한 것은, 지주들과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사회정치적으로 청산하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들이 청산되기는커녕 지배권을 장악한 것이며, 또한 남측의 사회정치적 현실이 첫 헌법이 가리킨 방향과 반대되는 역방향으로 퇴행함으로써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었던 것이다.

진보적 민주주의를 첫 헌법에 명시해놓고도 그것을 실현하지 못하였을 뿐아니라 4년 뒤인 1952년에 헌법을 개정하면서 폐기하고, 그 뒤로 계속하여 역방향으로 나아간 퇴행, 이것이 남측에서 지난 60년 동안 전개된 사회정치적 현실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실현되었다고 하지만, 점진적 실현은 자유권적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초보적 민주주의를 넘어서지 못하였고, 지금 이명박 정권은 초보적 민주주의마저 훼손하는 중이다. 1948년에 남측의 첫 헌법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명시하였건만,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도 각계각층 대중이 광장과 거리에서 저항의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민주주의의 또다른 실질은 국유화였다

국유화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오늘의 남측 현실에서는 좀처럼 믿기 힘든 일이지만, 남측의 첫 헌법은 주요자원과 주요산업의 국유화를 규정하였다. 남측의 첫 헌법 제85조는 "광물, 기타 주요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을 국유로 한다"고 규정하였고, 제87조는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제88조는 "국방상 또는 국민생활상 긴절한 필요에 의하여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또는 그 경영을 통제, 관리함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고 규정하였다.

그것과 똑같은 맥락에서 북측의 첫 헌법도 주요자원과 주요산업의 국유화를 명시하였다. 그 헌법 제5조는 "광산, 기타 지하부원, 삼림, 하해(河海), 주요기업, 은행, 철도, 수운, 항공 체신기관, 수도, 자연력 및 전 일본국가, 일본인 또는 친일분자의 일체소유는 국가의 소유"로 규정하였다.

남측의 첫 헌법이 주요자원을 국유화한다고 규정하면서도 주요산업은 국영화 또는 공영화한다고 규정하여 약간의 차별을 둔 것에 비해, 북측의 첫 헌법은 주요자원과 주요산업을 모두 국유화한다고 차별 없이 규정하였다. 남측의 첫 헌법은 주요자원을 국유화하되 주요산업 일부는 국유화하고 일부는 공영화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주요자원 및 주요산업 국유화강령을 일정하게 변형하였으나, 민주주의 실현의 기본방향을 주요자원 및 주요산업 국유화로 정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진보적 민주주의의 국유화강령은 주요자원 및 주요산업의 국유화만이 아니라 대외무역의 국유화까지 포함한다. 그 까닭은, 주요자원과 주요산업을 국유화하면 대외무역이 자연히 국가의 통제나 감독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측의 첫 헌법 제87조는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 하에 둔다"고 규정하였고, 북측의 첫 헌법 제5조 역시 "대외무역은 국가 또는 국가의 감독 밑에서 수행한다"고 규정하였다. 남북의 첫 헌법이 똑같이 대외무역에 대한 국가적 통제를 규정하였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주요자원, 주요산업, 대외무역의 국유화(nationalization of major resources, major industries and foreign trade)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필수요소이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주요자원, 주요산업, 대외무역의 국유화강령을 헌법조문에만 앉혀놓았을 뿐, 실제로는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1952년에 헌법을 개정할 때, 그 강령을 헌법조문에서 아예 삭제해 버렸다. 그 이후 남측의 정치권에서는 국유화라는 말 자체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승만 정권은 주요자원, 주요산업, 대외무역의 국유화강령을 전혀 인정하지 않다가 결국 4년 뒤에 가서 삭제해 버렸으면서도 제헌과정에서는 왜 그 강령을 헌법조문에 넣었을까? 헌법에 어떤 정치강령이 실수로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이다. 이승만 정권이 인정하지 않다가 결국 삭제해 버린 그 강령을 처음에 헌법조문에 앉힌 까닭은, 그 강령이 좌파와 우파, 혁신과 보수를 가릴 것 없이 아무도 반대할 수 없는 가장 절실한 시대적 요구이자 한반도 전역의 국민(인민)적 요구였기 때문이다.

주요자원, 주요산업, 대외무역의 국유화강령이 아무도 반대할 수 없는 시대적, 국민(인민)적 요구였다는 사실은, 민족해방운동의 우익분파였던 상해임시정부가 1941년에 선포한 건국강령에도 국유화강령이 들어있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건국강령은 "대산업기관의 공구와 시설을 국유로 하고, 토지, 광산, 어업, 수리, 임업, 소택과 수상, 공중의 운수사업과 은행, 전신, 교통 등과 대규모의 농, 공, 상 기업과 성시, 공업구역의 공용적 주요산업은 국유로 하고, 소규모 혹은 중소기업은 사영으로 함"이라고 명시하였고, "국제무역, 전기, 수도, 대규모의 인쇄소, 출판, 영화 등을 국유, 국영으로 함"이라고 명시하였다.

이처럼 주요자원, 주요산업, 대외무역을 국유화하는 정치과업은 상해임시정부 건국강령과 남측의 첫 헌법에 들어있는 중요한 과업이었을 뿐 아니라, 북측에서도 역시 중시하여 첫 헌법에 명시한 핵심과업이었다.

주요자원, 주요산업, 대외무역을 국유화하는 까닭

그렇다면 주요자원, 주요산업, 대외무역을 국유화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주요자원, 주요산업, 대외무역을 사유화(privatization)하면 민생경제가 쇠퇴하고 빈부격차는 자꾸 커지게 되어 국민(인민)의 실질적 권리를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요자원, 주요산업, 대외무역의 사유화가 민생경제의 쇠퇴원인이나 빈부격차의 심화원인으로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도시중산층이 발달한 북유럽의 현실을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북유럽의 현실은 특수한 현상이다.

민생경제의 쇠퇴와 빈부격차의 심화가 차단되고 상대적으로 도시중산층이 발달하는 현실변화는 남측에서 명백하게 한정적이다. 도시중산층의 발달은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난 1987년부터 외환위기를 겪은 1997년까지 약 10년 동안에 국한되었으며,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약 10년 동안 도시중산층은 해체의 길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도시중산층이 발달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주요자원, 주요산업, 대외무역을 사유화한 민주주의는, 국민(인민)의 실질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어구 민주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60년 전이나 오늘이나, 주요자원, 주요산업, 대외무역의 국유화가 민주주의 실현에서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주요자원, 주요산업, 대외무역을 국유화하지 않은 민주공화국은 간판만 민주공화국일 뿐 실제로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렇다면 진보적 민주주의가 주요자원, 주요산업, 대외무역의 국유화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국유화된 새로운 유형의 민주적 기업경제만이 민생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남측에서 기업경제와 대외무역은 활발한 반면, 민생경제가 죽어가는 상반된 사태가 일어난 까닭은, 사유화된 기업경제가 성장동력을 잃어버리자 저 혼자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면서 민생경제부터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사유화된 기업경제가 기업경제와 민생경제의 건전한 연관관계를 깨고 민생경제를 희생양으로 삼을 때, 민생경제는 파탄되며, 결과적으로 사회적 빈부격차는 더 커지게 된다. 입으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어구 민주주의가 국민에게 실질적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민생경제가 파탄되고 사회적 빈부격차가 심화된 오늘, 명백하게 현실로 입증되었다.

역대정권들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권 역시 1948년에 제정된 첫 헌법이 명시한 진보적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더욱이 이명박 정권은 공기업이라고 부르는 주요산업을 '공기업의 선진화'라는 명분으로 사유화하여 외국자본들에게 팔아먹고 있다.

자유권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초보적 민주주의마저 훼손하는 이명박 정권에게서 진보적 민주주의의 실현가능성을 찾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민생경제 파탄과 빈부격차를 넘어서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역사적 전망을 진보정치운동에서 찾아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통일뉴스 2008년 9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