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해결을 통한 비핵화검증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백악관의 소리'를 중계하는 사람들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도 이 땅의 친미논객들과 보수언론은 일제히 '백악관의 소리'를 중계하였다. 중계에 따르면, 핵검증협상을 통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국제기준에 맞는 검증원칙을 제안하였는데, 북측은 그것을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녕변핵시설 불능화작업을 중지하고 원상복구를 고려하겠다고 반발하는 바람에 상황이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장은 6자회담이 꼬여 상황이 악화될 때마다 북측에게 책임을 떠넘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따르는 이 땅의 친미논객들과 보수언론이 또다시 꺼내놓은 판에 박힌 주장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것은 판에 박힌 거짓말 중계이다.

거짓말 중계는, 이라크 침공명분을 날조한 거짓말을 935차례나 쏟아냈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연출하는 정치사기극의 모방이다. 이라크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부쉬는 260차례나 거짓말을 늘어놓았고, 당시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in L. Powell)은 254차례나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원래 사기극 연출보다 무력침공을 좋아하는 호전광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당시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의 거짓말 횟수는 109차례였다. 그들이 연출한 상상을 초월하는 사기극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백악관 수석대변인을 지낸 스캇 맥클렐런(Scott McClellan)이 2008년 5월에 펴낸 책 '사건발생:부쉬의 백악관 내부와 워싱턴의 기만문화(What Happened: Inside the Bush White House and Washington's Cuture of Deception)'에서 폭로되어 사람들에게 충격과 경악을 주었다. 능란한 솜씨로 사기극을 연출하는 정치사기꾼들이 한반도의 핵검증문제에 관해서 무슨 거짓말인들 꾸며내지 못하겠는가!

크리스토퍼 힐의 이상한 행동

6자회담이 비공개회담인데다가, 이번에 6자회담을 꼬이게 만든 핵검증협상 역시 공개되지 않아서 협상전모를 외부에서 들여다보기는 어렵지만, 다행히도 진실을 만나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정보 한 자락이 시선을 끈다. 2008년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제6차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에 관한 정보가 그것이다. 그 회담에서 진행된 핵검증협상의 결과는, 7월 12일 제6차 6자회담 수석대표 언론발표문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그런데 회담장에 나타난 미국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의 행동이 이상하였다. 그는 회담이 열리기 직전, 다른 수석대표들에게 부랴부랴 문서를 돌렸다. 그 문서는 백악관 대책회의가 작성한 네 쪽짜리 핵사찰방침 제안서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제프리 제임스(Jeffrey James)가 주재하는 백악관 대책회의는 국무부, 국방부, 중앙정보국의 차관급 관리들이 참가한 가운데 실무를 처리하는 중요한 회의이다.

힐이 다른 수석대표들에게 검증의정서 초안(verification protocol draft)을 돌렸다는 언론보도는 오보이다. 검증의정서 초안에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고 실무적으로 복잡한 내용이 들어가야 하므로 그것을 만들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당시 백악관 대책회의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자랐다.

6자회담에서 핵검증문제를 합의하는 정상적인 절차는, 검증의정서 초안을 다른 수석대표들에게 보내서 사전에 검토할 시간을 준 다음에 6자회담을 열어 합의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백악관 대책회의는 검증의정서 초안이 아니라 핵사찰방침 제안서를 서둘러 작성하였고, 6자회담이 열리기 전에 미리 다른 수석대표들에 보내서 사전에 검토할 수 있게 하여야 하는데도 힐은 회담 개회 직전에 불쑥 제안서를 내놓은 것이다. 그들의 이상한 행동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백악관을 당황하게 만든 북측의 의무이행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측이 비핵화일정을 과감하고 신속하게 추진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하였던 그들의 예상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당황하게 만든 북측의 비핵화추진일정은 다음과 같다. 2008년 4월 14일 북측 외무성은 미국 국무부에게 2쪽 분량의 비공개각서(confidential minute)를 보냈다. 그 각서에는 미국이 북측의 우라늄농축 의혹과 시리아에 대한 핵협력 의혹을 우려하고 있음을 북측이 "인지한다(acknowledge)"는 내용, 그리고 쌍방이 서로 만족할 수 있도록 견해차이를 해소해 나가기 위해 북측이 "협조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우라늄농축 의혹과 시리아 핵협력 의혹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만들어낸 의혹이지 사실이 아니므로, 그들이 조작한 의혹에 대해서 북측이 해명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런데도 북측이 '인지'와 '협조'를 언급한 비공개각서를 그들에게 보낸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집요하게 의혹을 제기하는 바람에 제자리에서 맴도는 비핵화과정을 어떻게 해서든지 진전시키려는 주동적인 조치였다.

비공개각서를 보낸 뒤, 북측의 의무이행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2008년 5월 8일 북측은 미국 국무부 관리에게 1만8천800쪽 분량의 핵관련문서를 넘겨주었고, 6월 10일 북측 외무성은 반테러 의무이행에 관한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이미 2001년 11월 12일에 두 개의 반테러국제협약에 서명한 북측이 테러지원활동과 무관함을 다시 한번 밝혔다. 또한 2008년 6월 26일 북측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게 핵신고서를 보냈고, 이튿날에는 녕변핵시설에 있는 냉각탑을 폭파함으로써 단호한 비핵화의지를 물리적으로 입증하였다.

그 무렵 북측의 핵기술자들은 국제원자력기구 요원들의 현장접근을 허용한 가운데 녕변의 8개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작업을 이미 끝냈고, 나머지 3개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었다.

백악관의 제어행동을 암시한 대통령성명

북측이 그처럼 과감하고 신속하게 비핵화를 추진할 줄을 예견하지 못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자기들이 늦춰잡은 비핵화일정만 붙들고 있다가 외교적 낭패를 보는 게 아니냐 하는 불안감을 느꼈다. 북측이 과감하고 신속하게 비핵화를 추진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해야 하고, 그에 따라 한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고, 조미수교회담을 시작하는 연속적인 관계정상화일정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 연속적인 일정은 촘촘히 맞물려 있어서, 일단 거기에 들어서면 뒤로 물러서거나 다른 데로 빠져나가기 힘들다.

연속적인 관계정상화일정은 한반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정세변화과정이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그 과정에 선뜻 들어설 의사나 준비가 없었다. 그들이 비핵화진전속도를 늦출 제어행동에 나선 까닭이 거기에 있다.

국무부가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를 연방의회에 통보한 날로부터 45일이 되는 2008년 8월 11일에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가 지정해제 발효를 확인하는 최종통보를 연방의회에 보내야 지정해제가 완료되는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최종통보를 보내지 말고 비핵화진전속도를 늦출 제어행동을 취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결정에 따라 백악관 대책회의가 서둘러 만든 것이 핵사찰방침 제안서이다.

원래 그 제안서는 비핵화진전속도를 늦추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북측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누가보아도 황당무계한 핵사찰방침이 들어갔다. 황당무계한 핵사찰방침이란, 1차 검증에서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경우 추가로 다른 의혹대상을 검증할 뿐 아니라, 녕변핵시설 이외에 고농축우라늄 의혹과 핵확산 의혹에 대해서도 검증한다는 이른바 특별사찰(special inspection)이다. 특별사찰이 뜻하는 바는, 두말할 나위 없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자의적으로 의혹시설을 지목하면, 미국사찰단이 사찰하고 싶은 대상을 마음껏 사찰한다는 것이다.

북측 수석대표가 그처럼 황당무계한 제안을 거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북측 수석대표가 제안을 거부하자 핵검증협상은 논란에 빠졌고, 결국 일반적 사항만 담은 언론발표문을 내고 회담을 끝냈던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비핵화진전속도를 늦출 제어행동에 나섰다 해도,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핵신고서를 보낸 북측의 의무이행을 제어할 도리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부쉬는 북측이 핵신고서를 중국에 보낸 시각에 맞춰 2008년 6월 26일 백악관 장미원(Rose Garden)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키지 않는 대통령성명을 읽었다.

부쉬가 읽는 성명을 들으면서도 사람들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비핵화진전속도를 늦출 제어행동에 나섰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성명에 들어있는 문장 한 줄이 제어행동을 암시하였을 뿐이다. 성명에서 부쉬는, "만일 북측이 올바른 선택을 계속해 나간다면 북측은 리비아가 지난 수년에 걸쳐 이루었던 것처럼 국제사회와 관계를 개선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대통령성명에서 리비아를 거명한 것은, 모범적인 비핵화사례를 들어보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국제원자력기구가 동참한 사찰단이 리비아에서 실시한 핵사찰 및 핵폐기를 북측에서도 되풀이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다.

15년 전에 파기된 국제기준

요즈음 백악관 대변인들은 북측이 국제기준에 맞는 핵사찰방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국제기준이란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조치에 대한 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co to the IAEA Safeguards Agreement)'에 들어있는 두 개의 치명적인 독소조항, 곧 핵물질을 직접 다루지 않는 미신고시설에 대한 특별사찰과 의혹시설에 대한 불시사찰을 뜻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국제기준에 맞는 핵사찰이란 미신고시설 특별사찰과 의혹시설 불시사찰인 것이다.

그러나 북측은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유보한 1993년 6월 11일의 조치를 2003년 1월 10일에 철회하였으므로 추가의정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백악관 대변인들이 추가의정서가 아니라 국제기준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쓸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주목하는 것은, 국제기준에 맞는 핵사찰을 받은 리비아에서는 미국이 미신고시설까지 마음껏 사찰하고 핵폐기작업을 모두 마친 뒤에서야 비로소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해주었다는 점이다. 2003년 12월 리비아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여 대량파괴무기(WMD) 개발계획을 무조건 포기한다는 정치적 항복선언을 내놓자, 미국 국무부는 자국민의 리비아 여행금지조치를 풀고 워싱턴과 트리폴리에 각각 이익대표부를 내오는 '정치적 보상'을 주면서, 국제기준에 맞는 핵사찰에 들어갔다. 미국이 리비아를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한 때는, 핵사찰은 말할 것도 없고 핵폐기작업까지 마친 뒤인 2006년 5월 15일이었다.

국제기준에 맞는 핵사찰을 받은 나라는 세 나라 뿐이다. 루마니아는 1990년 1월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진 때로부터 이태 뒤인 1992년 5월에 시장개방과 외자유치를 위하여 자진해서 특별사찰을 받았다. 걸프전에서 패한 이라크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1991년 4월부터 1998년 10월까지 최장기 특별사찰을 받았는데, 미국 국가정보기관이 특별사찰을 이용해서 이라크 국가기밀을 속속들이 염알이질하였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미국의 압박공세에 밀려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포기한 리비아가 자국시장을 개방하고 특별사찰을 받은 것은 미국에 의해서 사실상 무장해제를 당한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꺼내놓은 국제기준에 맞는 핵사찰은, 북측이 루마니아, 이라크, 리비아의 비극을 따라주기를 바라는 실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제안이다.

사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이 국제기준에 맞는 핵사찰방침을 거부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제안하였다. 비핵화진전속도를 제어하려는 목적에 따라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제어행동은 부질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특별사찰과 불시사찰을 요구하는 국제기준은 조미관계에서 이미 파기되었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993년 6월 2일부터 11일까지 뉴욕에서 진행한 조미회담에서 클린턴정부는 특별사찰과 불시사찰을 고집해온 자기들의 핵사찰방침을 포기한다고 북측에게 공약하였다.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에서 채택된 조미기본합의에는, 그 공약에 따라 특별사찰과 불시사찰이 들어가지 않은 대신, "북측과 국제원자력기구 사이의 안전조치협정에 따라 임시 및 일반사찰을 재개한다"는 규정만 들어갔다.

차분한 대응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비핵화진전속도를 제어하기 위해 일부러 황당하기 짝이 없는 핵사찰방침을 꺼내놓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이 그 제안을 거부했다고 생트집을 잡으면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여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비핵화의무를 성실히 이행해온 북측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약속위반과 사기극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북측은 뜻밖에 차분하게 대응하였다. 2008년 8월 26일에 나온 외무성 대변인성명에서 그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대변인성명은 2008년 8월 14일부터 "핵시설 무력화작업을 즉시 중지"하였으며, "녕변핵시설들을 곧 원상대로 복구하는 조치들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북측은 녕변핵시설 원상복구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하겠다고만 말하였고, 북측 핵기술자들이 불능화작업을 벌이는 녕변핵시설에 접근이 허용된 국제원자력기구 요원들을 국외로 내쫓지 않았다.

북측이 차분하게 대응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미신고시설에 대한 특별사찰과 의혹시설에 대한 불시사찰을 북측이 아무런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국제기준에 맞는 핵사찰방침을 제안한 것에 대응하여, 북측은 9.19 공동성명에 근거한 핵사찰방침을 준비해두었다.

놀랍게도, 9.19 공동성명에 근거한 핵사찰방침은 북측이 이미 16년 전에 제안한 것이다. 1992년 6월 26일 북측 외교부(당시 명칭)가 발표한 대변인성명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공화국정부는 핵사찰이 공정하게 진행되려면 우리나라가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을 때 우리도 남조선에 있는 미국 핵무기와 핵기지에 대한 사찰을 진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일관하게 주장하여왔다. (줄임) 우리나라에서의 핵위협은 남조선에 배비된 미국의 핵무기로 인하여 산생된 것이므로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한 북남사찰을 통하여 미국 핵무기와 핵기지에 대한 전면사찰이 진행되여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9.19 공동성명에 근거한 핵사찰방침이란 특별사찰과 불시사찰을 한반도 전역에서 실시하는 것이다.

2008년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수석대표회담에서 북측은 9.19 공동성명에 근거한 핵사찰방침을 역제안하였다. 2008년 7월 15일 미국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비공개 청문회에 나간 크리스토퍼 힐이 수석대표회담 중에 북측이 주한미국군기지에 대한 핵사찰을 요구하였다고 증언한 것이나, 2008년 7월 17일 외교소식통을 인용한 언론보도에서 북측이 주한미국군에 대한 핵사찰을 허용하지 않는 검증체계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지적한 것, 그리고 또 다른 언론이 북측이 주한미국군기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한국군기지에 대해서도 핵사찰을 요구하였다고 보도한 것은, 북측이 9.19 공동성명에 근거한 핵사찰방침을 역제안하였음을 말해준다.

9.19 공동성명에 근거한 핵사찰은 가능한가?

9.19 공동성명에 근거한 핵사찰은 6자회담에서 합의한 비핵화원칙에 근거한 정당한 방침이다. 6자회담에서 합의한 비핵화원칙은 9.19 공동성명 제1항에서 명백히 규정되었다. 그 규정에 따르면, 6자회담의 목적은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the verifiabl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이다. 그 규정에서 비핵화의 범위를 북측이 아니라 한반도라고 못박은 것은, 북측 지역에서만 비핵화실현여부를 일방적으로 검증한다는 뜻이 아니라, 한반도 전역에서 비핵화실현여부를 공정하게 상호검증한다는 뜻이다.

9.19 공동성명 제1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안에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하였다"고 규정하였는데, 북측이 핵무기와 핵계획을 실제로 포기하였는지는 검증해야 알 수 있다. 북측의 핵포기여부를 검증할 담당자는 미국사찰단이다.

북측의 핵포기여부를 검증하려면 미국사찰단이 녕변핵시설에 대한 일반사찰을 실시해야 하는 데, 일반사찰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특별사찰이다. 순전히 논리적으로 말하면, 북측의 핵포기여부를 검증할 미국사찰단은 미신고시설들인 북측의 무기급 핵물질 보관소와 핵탄두 보관소에 대한 특별사찰을 실시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인민군이 지키는 최고보안시설, 극비군사시설, 비밀핵기지를 적대국에게 공개하는 것이므로,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다.

북측이 핵포기공약을 이행하기 위하여 폐연료봉 8천17개와 무기급 핵물질을 미국에게 수출하거나 핵탄두를 자진하여 해체할 수 있지만, 조선인민군이 미국사찰단에게 무기급 핵물질 보관소와 핵탄두 보관소의 현장사찰을 허용하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다른 한편, 9.19 공동성명 제1항은, "미합중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규정하였는데, 이것은 미국이 핵무기철수와 대북불가침을 행동이 아니라 말로 확인한 것이다. 미국이 말로 확인해준 내용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말만 하고 실제로는 핵탄두를 주한미국군기지에 감춰두었는지 또는 대북핵공격을 은밀히 준비하는지는 북측이 알 수 없으므로 마땅히 검증해야 한다. 미국이 핵무기철수와 대북불가침을 확인한 내용을 검증할 담당자는 북측사찰단이다. 그런데 북측사찰단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서 주한미국군기지를 사찰하는 특별사찰은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또한 9.19 공동성명 제1항은, "대한민국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에 따라 핵무기를 접수 및 배비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재확인하고 자국 영토 안에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고 규정하였는데, 이것은 핵무기부재를 확인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확인내용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해마다 두 차례씩 전쟁급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할 때마다 전술핵무기 장착이 가능한 미국군 전폭기, 각종 정밀유도무기, 핵추진 잠수함, 항공모함전단이 남측에 수시로 들락날락하므로, 북측사찰단은 작전현장을 방문하여 미국군의 각종 군사장비를 사찰하여야 하는데, 이것 역시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정치적 해결을 통한 비핵화검증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반도 비핵화의 실현여부를 상호핵사찰을 통해서 검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9.19 공동성명이 6자회담의 목표로 설정한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는 핵사찰로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9.19 공동성명은 신기루 같은 목표를 설정한 것일까? 북측은 9.19 공동성명에 근거한 상호핵사찰의 실현불가능성을 알면서도 공허하게 주장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는 달성할 수 있고, 또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는 길은 사실상 실현불가능한 상호핵사찰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정치적 해결이다. 6자회담의 최종목표는 상호핵사찰에 의한 비핵화검증이 아니라, 명백하게도, 정치적 해결을 통한 비핵화검증이다. 9.19 공동성명에 근거한 핵사찰방침에 담긴 속뜻은, 조미 쌍방이 상호핵사찰을 실시하자는 비현실적인 제안이 아니라, 정치적 검증을 통하여 비핵화를 실현하자는 현실적인 제안이다.

정치적 해결을 통한 비핵화검증은 무엇일까? 그것은 북측사찰단과 미국사찰단이 상대의 최고보안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실시하지 않는 대신, 조미 쌍방이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국교를 맺음으로써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였음을 정치적으로 검증하는 것이다.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국교를 맺으려면, 북측은 녕변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탄두를 자진해서 해체하여 비핵국가로 복귀하여야 할 것이며, 미국은 북측을 위협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영구중지하고 핵우산 제공공약을 영구포기하며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하여야 할 것이다. 그와 더불어, 한반도 군사정세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전환과정에 맞춰 조미군사회담을 개최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조미군사안보위원회를 설립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발전과정에서 관계정상화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 요인은 미국 대통령이 평양방문을 단행하여 정상회담을 실현하는 것이다. 조미정상회담을 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6자회담만 진행해서는 비핵화실현여부를 정치적으로 검증하는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나저나 외교정책의 변화를 외치는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2008년 11월 4일에 실시될 미국 대선에서 당선된다면,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이 임기말인 2000년 10월에 추진하다가 멈춰버린 역사적인 평양방문이 9년만에 다시 추진되지 않을까? (통일뉴스 2008년 9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