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을 포기한 사회에 진보정치의 희망을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옥상에 놓인 검은색 모의관

전자제품 생산업체들이 모여있는 서울 금천구의 가산디지털단지(Gasan Digital Complex)에는 세계 최초로 새로운 위성라디오기술을 개발하여 디지털위성라디오업계의 신화를 창조했다고 자랑하는 '유망기업'이 있다. 2007년 10월 현재 자본금 231억원을 쌓아놓은 기륭전자(Kirung Electronics)이다.

그런데 그 '유망기업' 정문에 있는 경비실 옥상에서는 두 여성이 66일 동안 생사의 갈림길에서 단식투쟁을 벌였다. 한증막 같은 폭염과 때때로 몰아친 폭우 속에서 그들의 목숨을 지켜준 것은 직사광선과 비바람을 가리는 비닐천막과 생수병에 든 물이다. 사다리를 걸쳐놓은 옥상에는 '근조'라는 큼지막한 글씨가 적힌 검은색 모의관이 철조망 위에 놓여있었다. 그 자리에서 굶어죽어도 옥상에서 내려가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뼈아픈 사연을 아는 사람들의 가슴을 마구 두드린다. 두 달이 넘도록 먹을거리를 끊고 사투를 벌여오면서 뼈와 가죽만 남은 그들의 몸에서는 따스한 생명의 온기가 시나브로 식어가고 있었다. 2008년 8월 8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이 진단한 결과는, 두 달 넘게 단식투쟁을 벌인 그 두 여성이 "몸에 저장되어 있던 영양소를 다 소모했고, 심부전으로 그들의 심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폐에는 물이 차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의학적 한계를 넘어섰"으므로 심각히 우려된다고 하였다. 2008년 8월 16일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진 그 두 여성은 금속노동조합 서울남부지회 기륭전자 분회장 김소연과 조합원 유흥희이다.

병원에 실려가서도 단식을 계속하면서 목숨 걸고 싸우는 그들의 요구는, 불법적으로 해고당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 일자리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편안하게 사는 소시민들에게는 그 요구가 소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월급 64만원(약 630달러)을 주겠다는 파견업체와 계약하고 기륭전자에 취업하였다가 해고되어 길거리로 쫓겨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 요구는 처절한 절규이다.

원래 기륭전자가 직접고용하지 않고, 파견업체와 계약한 노동자를 간접고용한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그런데 기륭전자는 불법적으로 고용한 노동자들을 잔업과 특근으로 혹사하였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은 월평균 90-95시간을 더 일하여야 하였다. 그들이 혹사당한 '댓가'로 한 달에 손에 쥔 것은 고작 95만원(약 920달러)이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860만명에 이르는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가 받는 평균임금의 51%밖에 받지 못한다. 비정규직 임금실태를 조사한 최근 자료에 따르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는 정규직 여성노동자 평균임금의 66.9%, 비정규직 남성노동자 평균임금의 64.9%밖에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살인적인 저임금'이나 '피땀을 쥐어짜는 착취'라는 말은, 이 땅의 노동실태를 과장하는 표현이 아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기륭전자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피땀을 쥐어짜고도 성에 차지 않아 그들을 마구잡이로 해고하였다는 점이다. 기륭전자는 여성노동자들의 휴대전화에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시오"라는 11개 문자를 전송하고, 그들을 길거리로 내쫓아 버렸다. 불법해고에 충격을 받고 그만 엉엉 울어버린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2005년 7월 5일 금속노동조합 서울남부지회 기륭전자 분회를 세웠을 때, 기업경영자는 노동조합 분회에 가입한 비정규직 노동자 250명 가운데 200명을 내쫓는 집단해고만행을 저질렀다. 길거리에 쫓겨난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간고한 장기투쟁은 3년 전에 그렇게 시작되었다.

"야만의 사회가 된 것 같아요. 사람이 죽어도 며칠만 반짝 하잖아요. 옛날엔 사람이 분신하면 온 나라가 뒤집혀서 해결하라고 들끓었는데, 이제 한 두 사람이 죽어도 누가 죽었나 보네 라며 금새 잊잖아요. 살기 위해 죽음을 결의한 거예요. 개 짖으면 귀신소리로 들려요. 치료는 포기했죠. 손과 다리가 저리고 심장압박증상이 있어요. 힘이 없으니 잘 걷지도 못하고 보통 누워있어요." 무더위로 숨이 막히는 2008년 8월 6일 그들이 쓰러져있는 옥상에 올라간 취재기자가 김소연 분회장에게서 들은 말이다.

기륭전자는 핏기가 사라진 창백한 얼굴로 옥상에 쓰러져 무기한 단식으로 사투를 벌이는 해고노동자들에게 "굶어 죽고 싶으면 죽어라"는 식으로 협상요구마저 걷어차버렸고, 경찰은 단식투쟁이 50일째 되는 날 그 노동자들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였으니, 이 사회를 어찌 잔인하다 아니할 수 있으랴! 600억원(5천900만달러)에 사들여 18인승 전용항공기로 개조한 보잉 737기에 오른 재계총수가 고품격 기내회의실에 설치된 첨단정보통신장비를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창공으로 사뿐히 날아오를 때, 착취로 짓눌린 생산현장에서마저 쫓겨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이상 갈 곳 없는 생존의 벼랑끝에서 몸부림치는 현실은, 비단 기륭전자에서만 아니라 이랜드와 홈에버, 코스콤, 케이티엑스(KTX)와 새마을호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장기투쟁이 계속되는 이 땅의 생산현장 곳곳에서 마주치게 된다.

더러운 세상에 떠도는 해괴한 법

2008년 6월 24일, 38번 국도가 지나는 경기도 평택시의 어느 다리 밑에 세워둔 트럭에서 그 트럭을 운전해온 건설노동조합 조합원이 목을 맨 채 숨져있었다. 운전대 옆에는 "더러운 세상 나 먼저 간다. 착한 사람 죽는 게 이거 뿐이다"는 유언을 적은 종이쪽지가 남아있었다. 빚더미와 생활고에 시달리며 한 달 넘게 파업에 참가하였던 그는, 더러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너무 괴롭고 원통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람찬 생산노동의 주역이 되어야 할 노동자들이 절망의 거리로 쫓겨나 철탑고공농성과 삭발투쟁과 단식투쟁을 벌이는 이 사회를 가리켜 만일 누가 민주사회라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노동자가 목을 매달고 저주하며 숨지는 이 더러운 세상을 뻔히 보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성공시대를 넘어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는 사기발언으로 들린다.

짐승시체 나뒹구는 들판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무덤덤하게 돌아다니는 야생동물계의 야만을 닮아가는 이 사회에서 860만명에 이르는 김소연과 유흥희가 비정규직의 올가미에 목이 졸린 채 몸부림치는 데도, 세상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오늘도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그런 사회에 가득 찬 것은, 명백하게도, 문명을 포기한 야만이다.

비정규직 노동인구 860만명을 보호해준답시고 노무현 정권이 2007년에 만들어놓은 것이 비정규직 보호법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제도를 그대로 놔두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해준다는 말은 언어도단이다. 비정규직이라는 올가미가 860만명의 목을 조르는데, 그 올가미를 그대로 두고 그들을 '보호'해주겠다고 하니, 헛소리가 아닐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비정규직 보호법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해주는 법이 아니라, 그들의 목을 조르는 비정규직제도를 보호해주는 법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시행한 때로부터 1년이 지난 최근에 통계청이 내놓은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분석하면, 비정규직 노동인구 가운데 그나마 근로조건이 덜 열악하다는 기간제 취업인구는 24만명이나 줄어들었는데, 가혹하게 착취당하는 시간제 취업인구, 호출제 취업인구, 용역제 취업인구는 각각 10만명, 9만명, 3만명씩 늘어났다. 사내도급과 외주하청이라는 이름으로 가혹하게 착취하는 간접고용제는 통계청 조사범위 밖에 있는 '완전한' 불법고용인 까닭에, 간접고용제 취업인구가 지난 1년 동안 얼마나 더 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한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으로 생겨난 결과를 살펴보면, 그 법의 시행으로 일자리가 줄었다는 응답이 41.3%, 노사갈등이 심화되었다는 응답이 32.5%로 나타났고, 그 법을 시행하기 전에 비정규직 노동인구의 평균임금은 정규직 평균임금의 52.4%이었는데, 그 법을 시행한 뒤에는 되레 51%로 줄어들었다.

영국 비비씨(BBC) 텔레비전방송과 일본 일간지 '요미우리신붕'이 2007년 10월부터 2008년 1월까지 서른 네 나라에서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빈부격차에 대한 사회적 불만지수는 평균 64%로 측정되었는데, 이명박 정권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완성하였으니 이제는 선진화를 향해 나아가자"고 선동하는 이 사회에서는 불만지수가 86%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이며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정몽준 한 사람이 올해 거머쥔 주식배당금이 615억 원이고, 여러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회사인 GS홀딩스 상무의 일곱 살 짜리 초등학생 아들이 싯가 299억원에 해당하는 주식 73만 주를 소유하고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한국노동연구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06년 현재 상위 1%가 국내순자산의 16.7%, 상위 5%가 39.8%, 상위 10%가 54.3%를 각각 소유하였다.

그런데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쌓아놓고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상위 10%밖에 되지 않는 부유층인구의 반대쪽에서는, 전체 취업인구의 68%가 월소득 200만 원 미만으로 살아가는 빈곤과 궁핍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있다. 저임금과 고물가에 짓눌려 허리를 펴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인구가 860만 명에 이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취업을 포기하고 '그냥 쉬면서 사는' 취업포기인구는 날로 늘어나 305만 4천 명이나 된다. 2008년 7월 현재, 비경제활동인구는 20대 연령층에서 232만2천명, 30대 연령층에서 205만4천명, 40대 연령층에서 163만명이다. 가장 왕성하게 일할 2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연령층에 드는 600만6천명이 생산현장 밖에서 떠도는 것이다. 또한 고등학교 졸업자 비경제활동인구는 534만9천명, 대학 졸업 이상의 고학력 비경제활동인구는 257만6천명이다. 청년층과 고학력층의 비경제활동인구는 해마다 크게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처럼 고용악화와 임금하락과 물가상승이 서로 맞물려 악순환하는 동안, 사회적 분극화는 빈부격차를 최대로 벌려놓았고 민생경제를 완전히 불능화하였다.

야만화현상이 일어나는 두 체계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약 10년 동안 이른바 '압축성장'이라는 신화에 도취되었던 이 땅의 기업경제가 1987년 11월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릴 때, 신자유주의세계화라는 낯선 깃발을 들고 들이닥친 국제통화기금(IMF)은 이 땅의 기업경제를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마구 떠밀었다. 그때부터 사회적 분극화가 만연되었다. 그리고 사회적 분극화의 세월이 10년이나 흐르는 사이에 이 땅의 민생경제가 마주친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대량착취하는 장벽였다. 김소연과 유흥희의 사투는, 민생경제를 가로막은 대량착취장벽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처절한 싸움인 것이다.

그런데 김소연과 유흥희의 사투를 외면하는 보수논객들은, 이 사회가 직면한 경제위기를 논하면서 성장과 분배의 불균형이라는 말을 종종 꺼내곤 한다. 경제성장만 추구하면서 그 성장의 결과물인 이윤을 정상적으로 분배하지 못해서 민생경제가 위기에 빠졌다는 식의 논법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들이 해법으로 내놓는 것은 성장과 분배의 균형이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주장하는 그들의 관심사는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을 치는 것이다. 사회안전망을 쳐놓으면 사회적 분배가 정상화될 것이고, 정상분배가 노동의욕을 자극하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더 부지런히 일하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기업경제과 민생경제의 균형적 성장이 촉진될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런 점에서, "분배 없는 성장은 가능해도, 성장 없는 분배는 불가능하다"고 떠들면서 사회안전망 구축을 반대하는 극우논객들과 그들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는 기업경제가 성장할수록 그 나마 근근히 유지해오던 사회안전망마저 찢겨나가고 민생경제는 영구파탄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한 사회적 참사가 일어나는 원인은, 김소연과 유흥희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이 폭로한 그대로, 고용체계와 임금체계에 박혀있는 것이다. 명백하게도, 문제의 핵심은 분배체계가 아니라 고용체계와 임금체계이다. '분배를 포기한 성장'이라는 지적은 오류이며, '고용을 파탄시키는 성장'과 '임금을 폭락시키는 성장'이라고 지적해야 옳다.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는 통계청이 '취업인구'라 부르는 이 땅의 절대다수인구, 다시 말해서 2007년 11월 현재 2천373만9천명에 이르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죽이느냐 아니면 살리느냐 하는 생사문제에 직결되어 있으며, 김소연과 유흥희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이 고발한 그대로, 비정규직 노동인구 860만명을 무참히 짓밟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고용체계와 임금체계의 야만화, 바로 이것이 민생경제를 파탄시킨 원인이다.

그렇다면 그 두 체계에서 야만화현상이 일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이 사회를 '경영'해온 역대정권들이 한결같이 고용체계와 임금체계의 결정권을 기업경영자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두 체계의 결정권을 독점하고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기업경영자들은, 기업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명목을 내걸고 고용계약과 임금협약을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결정해온 것이다. '자기 마음대로 결정한다'는 일상적 표현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기업경영자들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결정한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오늘 비정규직 고용체계 및 임금체계는, 불평등하다는 말이 무색해질 만큼 야만적으로 되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은 기업 대 기업의 무한경쟁이 벌어지는 자유시장에서 기업경쟁력을 강화하여 경제성장을 촉진시키려면 "노동자들이 어려움을 겪더라도 참고 견디면서 기업경영에 협조해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너스레를 떨면서, 만일 시장경쟁에서 뒤져 기업이 문을 닫으면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잃을 터이니 "선진적인 노사협조를 해치는 불법적인 노동관행을 바로잡기 위하여 엄정한 법질서를 확립하겠노라"고 을러댄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그들의 입으로 시인하지 않는 사실은, 자유시장의 무한경쟁원리에 따라 기업을 운영할수록 기업의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는 필연적으로 야만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기업운영을 자유시장의 무한경쟁원리에 내맡기는 '기업친화적 경제정책'의 시행은,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를 야만화하여 860만명의 김소연과 유흥희를 결국 생존의 벼랑끝으로 끌고 가는 '죽음의 대행진'인 것이다.

길게 논할 필요 없이, 문제를 푸는 방도는 간명하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사문제에 직결된 고용체계 및 임금체계가 자유시장의 야만적인 무한경쟁원리와 연동되지 못하도록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민주적 통제(democratic control)란, 자유시장의 무한경쟁원리를 배제한 민주주의적 원리에 따라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를 뜯어고치고 새롭게 운영하는 것을 뜻한다. 만일 야만화된 두 체계를 민주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사회안전망을 칠 수도 없거니와, 설령 어떻게 해서 그것을 쳐놓은들 재정지출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로 되고 말 것이다.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개혁정책에 관한 논의는, 이 글의 길이가 제약되어 있어 다음 기회로 미루고, 원리만 지적한다. 야만화된 두 체계를 뜯어고칠 민주주의적 원리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산활동과 일상생활을 자유시장의 야만으로부터 지켜주는 민생우선보장원리이다. 기업의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를 민생우선보장원리에 따라 민주적으로 개혁하고 통제하고 운영할 때, 이 사회는 비로소 '자유시장의 벌거벗은 야만'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문명한 옷'을 걸칠 수 있다.

희망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산활동과 일상생활을 자유시장의 야만으로부터 지켜줄 민생보장을 가장 절박하게 요구하는 당사자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자신이다. 그래서 노동계급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근로대중은 각종 대중단체를 결성하여 생존권을 지키는 싸움에 나서는 것이다. 고용체계와 임금체계가 야만화될수록, 그리하여 비정규직 노동인구와 비공식부문의 근로대중이 넘쳐날수록 생존권싸움은 더욱 격렬해진다

그러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생존권싸움판에서 언제나 겪는 것처럼, 노동조합과 근로대중단체들은 그 싸움판을 에운 '관계법령'이라는 견고한 차단물과 마주치게 된다. 이 사회의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는 법적으로 고착되고 제도적으로 공고화되어서, 노동조합과 근로대중단체들이 산발적으로 벌이는 생존권싸움만으로는 도저히 뜯어고칠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고착되고 공고화된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를 산발적인 생존권싸움으로 뜯어고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를 고착시키고 통제하고 운영하는 기업경영자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로 각각 결집하여 지배력을 막강하게 키웠을 뿐 아니라, 그들과 이명박 정권이 거의 운명적으로 밀착되었기에 그러하다.

2007년 12월 28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전경련회관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만난 재계총수들이 "시장경제원칙을 존중하고 법치주의를 확립해 기업인들이 마음놓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니까, 2008년 3월 10일 여의도에 있는 한국노총회관에서 열린 한국노총 창립 62주년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관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새 정부는 노사관계 선진화에...법과 원칙을 엄정하고 공정하게 집행하겠다"고 맞장구쳤다. 2008년 4월 4일 위의 경제5단체가 지식경제부에 보낸 건의서에서 이명박 정권에게 시급히 요구한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 고령자, 장애인, 모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허술하게나마 쳐놓은 사회안전망을 훼손하거나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재계총수들과 기업경영자들은 "자유대한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자"고 외치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목에 올가미를 걸어놓았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경제회생을 위해 노사관계를 선진화하자"고 손발을 맞추면서 그 올가미를 힘껏 조여대는 중이다.

재계총수들과 밀착한 이명박 대통령이 진두에서 지휘할 뿐 아니라, 기업경영자들과 붙어 돌아가는 한나라당이 발벗고 나서서 야만적인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를 유지해주고 있으므로 그 두 체계를 뜯어고치는 민주개혁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기업친화적 경제정책'을 반대하는 진보정치운동으로 되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를 뜯어고치는 민주개혁이 진보정치운동에 의해서 추진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야만적인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진보정치운동은, 노동조합과 근로대중단체의 일상적인 민생활동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노동조합과 근로대중단체들이 진보정치세력과 결합하여야 두 체계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민생정치활동이 비로소 시작된다.

노동조합과 근로대중단체들이 진보정치세력과 결합한 민생정치활동의 거점을 진보정당이라 부른다. 세계 각국에는 형형색색의 수많은 진보정당들이 있는데, 이 땅에는 민주노총과 전농을 비롯한 각계층 대중단체들과 진보정치세력이 결합한 민주노동당이 있다. 150년 세월을 피눈물로 헤쳐온 세계노동운동사가 가르쳐주는 것처럼, 노동조합과 근로대중단체들이 진보정치세력과 결합하여 실현하는 진보정치만이,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진보정당의 민생정치활동만이, 야만적인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는 단 하나 뿐인 해법이다.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이 들러리를 서는 '민생안정 특별대책위원회'가 국정차원에서 민생정치활동을 한다지만, 그것은 '노사관계가 선진화된 모범기업'을 기웃거리며 기업경영의 고충이나 들어주는 '기업경영지원 특별대책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의원들과 당직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시위투쟁과 단식투쟁을 벌이는 민생정치활동은, 민주노동당의 고유한 임무이다.

김소연과 유흥희가 겪는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동정(sympathy)으로는 그들을 살릴 수 없다. 김소연과 유흥희의 고통에 무심한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뛰쳐나온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야만적인 고용체계와 임금체계를 뜯어고치는 진보정치의 깃발을 움켜쥐고 일어서는 날, 노동과 투쟁으로 단련된 그들의 억센 손은 절망을 깨뜨릴 것이다. 진보정치의 희망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통일뉴스 2008년 8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