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관계에 얽혀있는 돌섬과 바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독도문제의 본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년 동안 일본정부가 우리나라 독도영유권을 침탈하려고 책동하였던 사례는, 낱낱이 밝히기 힘들 만큼 많다. 특히 1997년부터 일본정부는 그들이 다께시마(竹島)라 부르는 독도를 ‘탈환’하는 ‘과업’을 ‘10대 외교지침’에 포함시키면서 침탈의도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1999년 1월 22일 제2차 한일어업협정이 발효되자, 일본정부는 비상시에 일본어선이 독도에 상륙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한국정부에게 요구하더니, 2000년부터 일본 외무성은 ‘외교청서’에 ‘다께시마’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주장을 담았고, 일본 방위성도 2005년부터 ‘방위백서’에 같은 주장을 담았다.

내외언론이 일본정부의 독도영유권 침탈기도를 보도할 때마다,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반일감정이 끓어오르지만, 정작 독도문제의 본질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독도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만일 그 본질을 독도영유권에 대한 일본정부의 침탈기도에만 한정한다면,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다. 독도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하는 것은, 일본정부가 또 다른 전략목표를 세워두었다는 점이다. 일본정부의 전략목표를 총체적으로 파악해야 독도문제의 본질이 드러난다.

일본정부가 노리는 전략목표는 자그마한 돌섬을 빼앗으려는 일본극우세력의 영토확장야욕에 한정되지 아니한다. 그 전략목표는 미일동맹체제의 동북아시아 지배전략에 직결된 동해관리권을 독점하는 것이다. 1962년 9월 3일 한일관계정상화를 위한 회담에 일본측 협상대표로 나온 외무성 아시아국장 이세끼 유지로(伊關佑二郞)는 “다께시마의 크기는 히비야공원 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폭파해버리자”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독도를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독도를 아예 없애버리고서라도 동해관리권을 독점하려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 시기 미국이 태평양관리권을 독점하기 위해서 하와이 점령이 불가피하였다면, 현 시기 동해관리권을 독점하려는 일본에게는 독도 점령이 불가피하다.

독도영유권 침탈기도와 동해관리권 독점책동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극우단체들은 독도영유권을 빼앗으려고 날뛰는데 비해, 일본정부는 동해관리권을 독점하기 위해서 독도영유권을 빼앗으려고 날뛴다. 일본정부는 2007년에 ‘해양기본법’을 제정하고, 총리 직속기구로 ‘해양정책판공실’을 설치하고, ‘해양강국 재건’을 국가목표로 내걸었는데, 이러한 조치들이 동해관리권 독점이라는 전략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음은 명백하다. 독도영유권 침탈기도를 논하면 일본의 영토확장야욕만 드러나지만, 동해관리권 독점책동까지 논하면 미일동맹체제의 지배전략도 드러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독도영유권 침탈기도를 막아내려는 방어적 대응만으로는 일본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내미는 공격적인 동해관리권 독점책동을 막아낼 수 없다. 동해관리권을 독점하려는 미일동맹체제의 동북아시아지배전략의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독도영유권 수호문제를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동해관리권과 미일동맹체제

동북아시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우리나라를 일제의 식민통치로 밀어넣은 결정적인 사건은, 1904년 2월 8일 제물포 해전으로 시작하여 1905년까지 이태 동안 계속된 러일전쟁이다. 러시아 해군제독 로제스트벤스키(Zinoy Petrovich Rozhestvenski)가 지휘하는 발트함대와, 일본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찌로(東鄕平八郞)가 지휘하는 일본함대가 당시 세계 최대의 해전을 벌인 바다는 동해였다.

일본해군이 중국 뤼순항에 포진한 러시아함대를 격침시키고, 일본육군이 뤼순요새에 주둔한 러시아군을 격파한 1905년 1월 일본정부는 내각결정으로 독도영유권을 ‘확인’하였고, 2월 22일에는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시킨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발표하였다. 1905년 5월 28일 대마도 앞바다에서 러시아 발트함대가 궤멸당하고 생포된 해군제독 로제스트벤스키는 항복하였다.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주목하는 것은, 러일전쟁 직후 동북아시아정세가 바뀌던 시기에 미국정부가 취한 태도이다. 미국 대통령 디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는 전쟁장관 윌리엄 태프트(William H. Taft)를 일본에 파견하여 일본 총리 가쯔라 다로(桂太郞)와 비밀협약을 맺게 하였다.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일본의 야욕을 미국이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긴 태프트-가쯔라 밀약은 1905년 7월 29일 도쿄에서 조인되었다. 이것은 미국이 1882년 5월 22일 인천에서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23년 만에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일본의 식민지화정책을 적극 지지하였음을 뜻한다.

그것만이 아니라, 루스벨트는 승전국 일본의 외상 고무라 주따로(小村壽太郞)와 패전국 러시아의 총리 세르게이 비테(Sergei Yulyevich Witte)를 뉴햄프셔주 해군기지 포츠머스로 불러들여, 전후처리를 위한 강화조약을 맺게 주선하였으니, 그것이 1905년 9월 5일에 조인된 포츠머스조약이다. 일본은 그 조약 제2조에 따라 조선을 식민지화하였고, 그 조약 제11조에 따라 동해어업권을 독점하였다. 포츠머스조약은 동해를 ‘일본해’로 명기한 국제조약이다. 그 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미국 대통령 디어도어 루스벨트는 “나는 이전에도 친일파였지만, 앞으로 더 확실하게 친일파가 되련다”고 공언하였다.

그때로부터 한 세기가 흐른 오늘, 동해는 주변나라들이 20세기에 미처 알지 못했던 거대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바다로 탈바꿈하였다. 한 세기 전에 일본이 동해에서 독점한 것은 어업권이었으나, 오늘 일본이 동해에서 독점하려는 것은 확장된 해양관리권이다. 그렇게 된 까닭은, 동북아시아의 정치, 군사, 경제지형을 바꾸어놓을 3대 국제개발사업의 진출통로 한복판에 동해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3대 국제개발사업이란 시베리아 에너지자원개발, 유라시아대륙횡단철도 개통, 그리고 중국 동북지방의 출해권 실현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3대 국제개발사업이 성공하면, 동해해상교통로의 가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지정학적, 지경학적 견지에서 보면, 21세기 동북아시아의 정세변화에서 동해가 차지하는 전략적 중요성이 돋보인다.

주목하는 것은, 동해관리권 독점과 미일동맹체제 강화의 상관관계이다. 태평양해상교통로를 장악하고 아시아정책을 중시하는 미국과, 동해를 ‘일본해’로 부르며 해양강국을 재건하겠다고 선언한 일본이, 미일동맹체제를 강화하려면 동해관리권을 장악하지 않을 수 없다. 미일동맹체제를 강화하는 정치군사전략에는 저들의 동해해상교통로를 확장하고 동해관리권을 독점하려는 계산이 깔려있다. 2005년 2월 19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U.S.-Japan Security Consultative Committee)에서는 주일미국군과 일본자위대를 일체화하기 위한 ‘공동전략목표(common strategic objectives)’를 채택하였는데, 동북아시아지역의 공동전략목표 12개 항목 가운데 ‘해상교통안전을 확보한다(maintain the security of maritime traffic)’는 항목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일본정부는 오랜 기간동안 집요하게 동해관리권 독점이라는 자기의 전략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치군사적 준비를 다그쳐왔다. 그 준비가 미일동맹체제의 동북아시아지배전략을 수행하는 것임은 물론이요, 미국정부와 일본정부가 그 준비를 위해 공모, 결탁한 것도 물론이다.

대응전략을 사실상 포기한 까닭

독도영유권을 침탈하려는 일본정부의 집요한 도발을 응징해야 할 당사자인 한국정부는 저들의 침탈기도를 물리칠 대응전략을 내놓은 적이 없다. 대응전략이 없으니, 경고발언이나 몇 차례 하다가 잠잠해지는 것이 고작이고, 응징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백령도에는 중무장한 병력을 주둔시켜 동족과 대결하면서도, 정작 영유권을 넘보는 외세와 대결해야 할 독도에는 군병력을 배치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정부의 독도영유권 침탈기도에 맞서는 대응이 국민대중의 반일감정에만 불안정하게 의존하고 있고, 정부당국이 대응전략을 사실상 포기하였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정부당국은 왜 독도영유권 침탈기도를 응징하는 대응전략을 포기한 것일까? 세 가지 요인을 지적할 수 있다.

첫째, 1945년 8월 이후 전후처리기간에 이 땅에서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였고, 일본에서는 전범자들을 청산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청산하기는커녕, 서울과 도쿄에서 친일파와 전범자들이 각각 정권을 잡는 바람에, 한일관계가 변태적으로 형성되었다. 한일 두 나라에서 각각 친일파와 전범자들이 처단되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그들을 집권세력으로 일으켜주고, 한일국교수립을 막후에서 조정하여 친일파와 전범자들의 재결합을 성사시킨 장본인은 미국이다. 이 땅에서 정권을 잡은 친일파가, 일본에서 정권을 잡은 전범자들이 저지르는 독도영유권 침탈기도를 응징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친일파와 전범자들의 재결합은 세대가 바뀐 오늘에도 여전히 한일관계를 규정하고 있다.

둘째,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본에게 종속되었기 때문이다. 1965년 한일국교수립 이후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42년 동안 이 나라의 무역흑자총액은 1천10억 달러인데, 같은 기간에 대일무역적자총액은 그것의 세 배가 되는 3천282억2천600만 달러이다. 한국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모조리 일본에게 갖다 바치고 있는 꼴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대일무역적자가 줄어들기는커녕 해마다 늘어난다는 점이다. 1999년부터 2008년 상반기까지 약 10년 동안 대일무역적자총액이 1천847억7천200만 달러로 치솟은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이 나라의 경제가 파산위기에 빠졌던 1997년말, 외환보유고는 80억 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1년 안에 갚아야 할 단기차입금이 240억 달러였는데, 그 가운데 80억 달러가 일본계 은행으로부터 빌린 단기차관이었다. 그때 만일 김대중정부가 일본정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면,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면서 전면파산을 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정을 간파한 일본정부는 한국정부의 약점을 잡고 압박하였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어선을 나포하고, 제1차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새로운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하자고 강요하고, 독도접안공사를 중지하라고 요구하는 것 등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제2차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에서 일본정부는 독도영유권을 침탈하려고 책동하였다. 그 결과, 독도 앞바다가 ‘한일공동관리수역’으로 되었고, 독도라는 공식지명을 협정문에 넣지 못하였다. 제2차 한일어업협정에 따르면, 독도는 ‘한일공동관리수역’ 안에 있는 암초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독도영유권이 국제법적으로 심각하게 훼손당하였음을 뜻한다. 대일경제종속이 주권침해로 이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정부는 일본을 자극해서는 실익이 없다고 하면서, 현행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고 재협상하여 국제법적으로 훼손당한 독도영유권을 회복하라는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한국정부의 대일저자세는 대일경제종속이 빚어내는 비극이다.

셋째, 독도문제에 관련하여 미국정부가 일본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도문제를 놓고 한일 두 나라가 갈등을 빚을 때마다, 미국정부는 침묵을 지켰다. 그들의 침묵은 독도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정부가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뜻이 아니라, 일본을 묵묵히 지지한다는 뜻이다.

독도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이 줄곧 일본을 지지해왔다는 사실은 역사자료를 통해 입증된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고 전후문제를 처리하면서 영토귀속문제가 제기되었던 1940년대말에서 1950년대초에 이르는 기간에 미국정부가 독도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합군최고사령부(SCAP) 외교국장이며 연합국 대일이사회 미국대표 겸 의장이며, 주일미국정치고문이었던 윌리엄 씨볼드(William J. Sebald)는 1949년 11월 19일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Dean Gooderham Acheson)에게 보낸 문서에 이렇게 적었다. “이전에 일본이 소유했던 섬들을 처리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말씀드리는데, 리앙꾸르롹스(Liancourt Rocks, 서양해도에 나오는 독도이름-옮긴이)는 강화조약 초안 제3조에 일본영토로 넣어줄 것을 건의합니다. 이 섬에 대해 일본은 오랫동안 정당한 주장을 펴온 것으로 보이며, 이 섬을 코리아 근해의 섬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미국 국무부는 1949년 12월 29일 대일강화조약 초안을 작성하였는데, 그 초안에는 독도가 일본영토인 ‘다께시마’로 기록되었고, ‘다께시마’가 일본영해의 기산점으로 설정되었다. 이것은 1946년 1월 29일에 연합국최고사령부가 작성한 지령 제677호에서 독도를 우리나라 영토로 표시하였던 초기조치를 약 4년 뒤에 미국 국무부가 뒤집어버린 것이다.

결정적인 사건은 1951년 4월 23일에 열린 비밀회담이다. 그 비밀회담에서 일본 총리 겸 외상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와 미국 국무부 특별고문 존 덜레스(John Foster Dulles)가 만났는데, 그들은 대일강화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한국정부를 배제하기로 합의하는 비공개각서를 채택하여 밀약을 맺었다. 그 밀약에 따라, 1951년 9월 8일 한국정부를 배제한 가운데 샌프란시스코에서 대일강화조약이 체결되었고, 전후 영토귀속문제를 처리한 강화조약 제2조의 영토조항은 독도를 우리나라 영토로 명기하지 않았다.

대일강화조약에서 독도를 우리나라 영토로 명기하지 않은 것이, 미일 두 나라가 공모결탁한 정치적 음모의 결과라는 사실은, 미국 국무차관 딘 러스크(David Dean Rusk)가 주미한국대사 양유찬에게 보낸 1951년 8월 10일자 각서에서 드러난다. 그 각서에는 이런 대목이 들어있다. “독도, 다께시마 또는 리앙꾸르롹스로 알려진 이 섬에 관해서 말하면, 사람이 살지 않는 이 돌섬은 우리가 가진 정보에 따르면 결코 코리아의 일부로 다루어진 바 없고, 1905년 이래 일본 시마네현의 오끼섬 지역사무국 관할 아래에 있었다. 이 섬은 이전에 코리아가 영유권을 주장한 바 없다.”

한미일 삼각관계에 울리는 변주곡

도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정부는 왜 일본을 지지하는 것일까? 한미일 삼각관계에서 그 까닭을 찾을 수 있다. 한미관계와 달리, 미일관계는 미일정상회담,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 미일방위협력소위원회, 미일합동위원회, 미일차관급전략대화, 미일심의관급협의로 탄탄하게 다져졌다. 미국정부의 시각에서 볼 때, 미일관계가 본체라면, 한미관계는 본체에 붙어있는 보조장치이다. 본체는 어떤 경우에도 내버릴 수 없지만, 보조장치는 쓸모가 없어지면 언제든지 내버리고 다른 것으로 교체할 수 있다.

미국정부가 미일관계를 얼마나 중시하고 한미관계를 얼마나 경시하는지를 살펴보려면, 2007년 2월 16일 미국에서 발표된 초당적 전략보고서 ‘미일동맹: 2020년까지 아시아 바로잡기(The U.S. Alliance: Getting Asia Right through 2020)’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부쉬정부 시기에 국무차관을 지낸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Lee Armitage)가 주도하여 작성된 이 문서는, 그가 2000년에 이어 두 번째로 작성한 것이어서 ‘신아미티지 보고서’라고도 부른다.

물론 미국정부는 한미관계가 중요하다고 인정하지만, 그러한 인정은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라, 그 관계가 미일관계를 보조하는 조건에서 가능한 것이다. 만일 한미관계가 미일관계를 더 이상 보조할 수 없게 되면, 미국정부가 한미관계를 저버리는 것은 시간문제로 된다. 친미주의자들은 ‘혈맹’인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 설마 그렇게 냉혹할 리 있겠느냐고 하면서 완강히 부인하겠지만, 미국정부가 한미관계를 저버릴 가능성은 엄연히 존재한다.

미국정부가 한미관계의 효용가치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된 1970년대말의 경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정부가 한미관계의 효용가치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까닭은, 동북아시아정세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변화란 중미관계와 조미관계가 연동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한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미국정부는 1977년 3월 뉴욕 유엔주재 북측 외교관들을 미국정부가 주최한 공식만찬에 처음으로 초대하였고, 1979년 4월에는 평양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미국선수단을 보냈다.

중미관계와 조미관계가 개선되는 것은, 한미관계가 ‘동북아시아의 반공방파제’로서 지닌 전략적 가치를 크게 감소시켰으며, 그에 따라 미국정부는 주한미국군 철군을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Jimmy Carter)는 부통령 월터 먼데일(Walter Fritz Mondale)을 일본에 파견하여 백악관의 주한미국군 철군결심을 알려주면서도, 박정희 대통령에게는 보름 뒤에 백악관의 철군결심을 통보하는 편지 한 장을 보냈다. 박정희 정부가 카터의 주한미국군 철군결정에 반발하면서 한미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키자, 분노한 카터는 1979년 10월 6일 박정희 정부가 야당을 탄압한다는 구실을 내걸고 주한미국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William H. Geysteen, Jr.)을 워싱턴으로 소환하는 초강경한 조치를 취하였다. 한미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으로, 1978년 11월 미국은 미일방위협력지침을 책정하고 일본과 군사동맹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오늘 동북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정세변화는 1970년대말에 일어난 정세변화와 비슷하다. 9.19 공동성명에 따라 비핵화가 진전되면, 우리나라에 평화체제가 세워지고 조미관계와 조일관계가 정상화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주한미국군이 철군위기에 몰리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주한미국군이 철군위기에 몰리면, 맥이 풀린 한미관계는 미일관계를 보조할 수 없게 된다.

일본자위대의 독도점령 씨나리오

우리나라에 평화체제가 세워지고 조미관계와 조일관계가 정상화되고, 위에서 논한 3대 국제개발사업이 실현되면, 동해의 전략적 가치가 결정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그에 따라, 일본정부는 동해관리권을 독점하기 위한 전면공세에 나설 것이고, 일본자위대는 일본의 동해해상교통로를 확장하기 위한 군사작전을 밀고 나갈 것이다. 동해관리권을 독점하려는 전면공세와 동해해상교통로를 확장하려는 군사작전을 위험천만하다고 보는 까닭은, 그 공세와 작전이 독도점령을 상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통일되어 자주강국을 건설하면, 일본정부는 독도를 점령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되므로, 비핵화가 진전되어 평화체제수립과 평화통일실현의 가능성이 짙어질수록 일본정부는 우리나라가 통일되기 전에 독도를 점령하고 동해관리권을 독점하려는 야욕을 더욱 강하게 느낄 것이다.

명백하게도, 독도영유권과 관련하여 한일 두 나라는 어떠한 협상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독도문제에서는 타협이 불가능하다. 남아있는 가능성은 군사적 선택이다. 군사적 선택이란, 한국군에게는 독도방어작전을 뜻하고, 일본자위대에게는 독도점령작전을 뜻한다.

일본자위대는 ‘유사시’에 대비하여 독도를 점령할 군사작전능력을 길러왔고, 독도상륙훈련까지 실시해오고 있다. 1998년 11월 2일부터 16일까지 미일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되었는데, 훈련이 막바지에 이른 11월 15일 일본 방위청 통합막료회의는 육해공 자위대 통합부대를 동원하여 “어느 나라가 점령하고 있는 일본해의 한 섬을 탈환하는 씨나리오”에 따라 상륙훈련을 실시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격전지였던 태평양의 작은 섬 이오시마(硫黃島)에서 실시된 그 상륙훈련에는 일본자위대 병력 2천4백 명, 이지스함 등 군함 11척, 이(E)2씨(C) 조기경보기 등 군용기 20대가 동원되었다. 자위대가 창설된 이래 처음으로 실시한 3군합동상륙훈련이었다.

그에 비해 한국군은 1996년부터 해군과 해양경찰이 참가하는 독도수호훈련을 실시해왔다. 그러나 말이 ‘수호훈련’이지 실제는 긴급사태 초동대응훈련이어서, 일본 해상자위대를 상대하기는커녕 일본 해상보안청도 상대하기 힘들다. 전투행동반경이 1천800km가 되는 에프(F)-15케이(K) 전투기가 33개월 동안의 전력화 과정을 마치고 2008년 7월 10일에 작전배치되기 전까지, 한국공군은 독도상공에서 작전할 수 있는 전투기를 보유하지 못하였다. 한국군에게는 독도침공을 막아낼 방어능력도 없고, 독도를 빼앗긴 뒤에 되찾을 탈환능력도 없다.

일본자위대가 독도주변에서 초계활동을 벌이는 한국군을 무력화하고 독도를 기습, 점령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지만, 일본자위대는 단독작전으로 독도를 점령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도점령작전은 일본자위대가 앞서고 주일미국군이 지원하는 미일합동군사작전으로 될 것이다. ‘조선반도 유사시 전쟁계획’으로 알려진 ‘작전계획 5055’는 2002년에 작성된 미일합동전쟁계획이다. 2008년 9월 요꼬스까(橫須賀) 해군기지에 배치될 니미츠급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는, 이전에 배치되었던 미국해군 항공모함과 마찬가지로, 독도를 넘보는 일본해상자위대 군함들을 이끌고 동해에서 정기적으로 합동훈련을 실시할 것이다.

일본자위대가 주일미국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기습적으로 독도에 상륙하는 최악의 사태를 일으켜도, 한국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나라가 통일되어야 독도영유권과 동해해상교통로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통일뉴스 2008년 7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