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군사안보위원회 설립과 주한미국군 철군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여덟 명 미국인이 평양방문 중 놀란 까닭

2008년 4월 8일 싱가포르에서 조미양자회담이 열린 날, 평양방문길에 오른 여덟 명 미국인이 있었다. 그들은 카네기 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선임연구원 스티븐 델 로쏘(Stephen Del Rosso, Jr.), 컬럼비아대학교의 일본정치학 교수 제럴드 커티스(Gerald Curtis),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 명예교수 로벗 스칼라피노(Robert A. Scalapino), 해군전쟁대학(Naval War College) 전략연구소 소장 조너던 폴락(Jonathan Pollack), 주한미국대사를 지낸 스티븐 바스월즈 (Stephen W. Bosworth), 뉴멕시코주지사 수석고문인 토니 남궁(Tony Namkung), 사회과학연구회(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 동아시아협력안보담당 연구원 런 씨글(Leon V. Sigal), 국무부 정보연구담당 차관보를 지낸 몰튼 에이브러모위츠(Morton Abramowitz)이다. 미국에서 한국(조선)문제 전문가로 알려진 그들은 2008년 4월 10일 평양에 도착하여 2박3일을 지냈다.

그들이 미국에 돌아와서 전한 견문수준의 정보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그 대목에 관해서, 서울에서 발행되는 시사전문지 '시사IN'은 2008년 6월 3일에 이런 보도기사를 내보냈다. "취재를 통해 확인한 정확한 정보"라고 밝힌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북측이 조선인민군 최고위급과 미국군 최고위급이 참가하는 조미군사협의기구를 설립하는 문제를 미국인 전문가들에게 설명하였다는 것이다. 그 설명을 듣고 놀란 미국인 전문가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인가?"고 묻자, 북측 인사들은 "장군님의 재가 없이 이렇게 중요한 얘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고 되물었다고 한다.

미국인 전문가들이 듣고 놀란 조미군사협의기구 설립에 관한 설명은 그 자리에서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이 설명을 듣고 놀랐다면, 평소에 북측이 발표한 문서를 꼼꼼하게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측이 미국인 전문가들에게 설명한 조미군사협의기구 설립문제는 원래 평화협정 체결방안에 포함된 것이다. 그러므로 북측이 제안한 평화협정 체결방안을 알아야, 조미군사협의기구 설립문제를 알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주목하는 문서는, 2003년 7월 23일 '조선정전협정 체결 50돐을 맞으며' 판문점에서 발표한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 비망록'이다. 해당부분을 인용하면 이렇다.

"조선인민군측은 1998년 10월 9일 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를 담보하는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당면하여 현 정전협정을 그대로 두고 남아있는 조항이라도 리행하기 위한 군사공동기구로서 군사안전보장위원회를 설립할 데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줄임) 그러나 미국측은 아무런 타당한 론거도 없이 우리의 성의 있는 제의를 이번에도 또다시 거부해 버리였다."

위의 비망록에서 북측은 이미 10년 전에 군사협의기구 설립문제를 미국 정부에게 제안하였다고 밝혔다. 비망록은 여덟 명 미국인 전문가들이 듣고 놀란 군사협의기구를 '조미군사안전보장위원회'라 불렀다.

북측의 제안에서 주목하는 것은, 군사안보위원회를 설립하는 시점인데 그 시점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이전으로 잡혀있다. 평화체제수립과 조미국교수립이 시차를 두지 않고 거의 병행적으로 추진될 것임을 예상하면, 북측이 제안한 군사안보위원회 설립문제 역시 그 추진과정 중에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내가 쓴 글에서 논한 것처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조미국교를 수립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북측은 핵탄두를 해체하고 장거리미사일을 폐기하는 군사적 조치를 실행하여야 하며, 미국은 그에 상응하여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군사적 조치를 실행하여야 한다. 북측의 핵탄두 해체와 장거리미사일 폐기에 관한 결정, 그리고 그에 상응한 미국의 주한미국군 철군결정은 조미정상회담과 그 뒤를 이을 조미수교회담에서 가능한데, 그러한 정치적 결정에 따라오는 문제는 그 결정을 실무적으로 집행할 군사회담을 여는 것이다. 만일 정치적 결정만 내놓고 그 결정을 실무적으로 집행하지 않는다면 결정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북측이 여덟 명 미국인 전문가들에게 설명한 군사안보위원회 설립문제는 바로 그러한 군사회담을 상설기구화하는 문제이다.

지난 시기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는 매우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고 운영되었던 반면, 평화체제와 조미국교를 수립하는 급변정세에서 설립될 조미군사안보위원회는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과정에서 제기될 매우 복잡한 군사문제를 원만히 풀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는 것이다. 북측이 군사안보위원회를 설립하는 문제를 제기한 것은, 주한미국군을 반드시 철군시켜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북측에게 있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주한미국군 철군과정에서 제기될 군사문제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대신, 한국군에게 미국산 무기를 이전보다 더 많이 판매하여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행동을 취할 가능성, 그리고 주한미국군 철군을 반대하는 남측 정부가 주한미국군 철군을 저지하기 위하여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군사문제로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군사문제들은 주한미국군 철군결정을 가로막을 수 있는 장애요인으로 된다. 철군과정에 제기될 군사문제를 해결하는 군사안보위원회를 내와야 할 까닭이 거기에 있다.

철군반대론자를 위한 정치적 배려

남측 정부가 주한미국군 철군을 반대한다는 사실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을 만큼 명백하다. 그들은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입 밖에 꺼내는 것조차 반대할 만큼 완고한 태도를 취한다. 이를테면, 노무현 정부 시기 이종석 통일부장관(당시 직책)은 2006년 3월 16일 서울에서 열린 공개강연에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북핵문제가 순조롭게 진행돼 평화체제 논의로 접어들면 두 가지 조건하에 평화협정 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줄임) 첫째, 평화협정을 맺는 과정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거론돼서는 안 된다. 주한미군을 상수로 보고 논의해야 한다. 둘째, 남북 경계선은 남북군대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그 관리권이 남북으로 넘어오는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서주석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당시 직책)도 2006년 3월 31일 서울에서 열린 공개토론회 기조연설에서 한(조선)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적어도 주한미군은 전제조건이며 협상대상이 될 수 없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은 우리 스스로 안보를 위해 택한 것"이라고 하면서 평화체제는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하게 하는 보완기능을 지닌다고 주장하였다. 노무현 정부가 철군문제에 관해서 그처럼 완고하였으니, 이명박 정부의 완고한 태도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하여,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북측의 입장은 확고하다. 이를테면 북측은 2000년 6월에 열린 제1차 정상(수뇌)회담과 2007년 10월에 열린 제2차 정상(수뇌)회담에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언급하였으며, 2000년 9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1차 남북(북남)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에서도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거론하였다. 또한 2007년 10월 4일 제2차 정상(수뇌)회담 마지막 날에 열린 환송오찬에서도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옆자리에 앉은 김장수 국방장관에게 근본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주한미국군 주둔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했다고 김장수 장관이 언론에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여덟 명 미국인 전문가들이 전해준 정보는, 평소에 주한미국군 철군을 주장해온 북측의 견해와 상당히 다른 것처럼 보인다. 여덟 명 미국인 전문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조너던 폴락은 "논쟁의 요지는 주한미군 주둔의 목표와 한미군사동맹의 대상이 북한을 겨냥하지 않는 한 북한은 주한미군의 주둔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주한미국군이 북측을 공격하려는 전략을 포기하는 경우, 북측이 주둔을 용인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종류의 주둔용인설은 여덟 명 미국인 전문가들이 처음 들은 것이 아니다. 북측이 기존의 철군요구에서 새로운 주둔용인으로 방침을 바꾸었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내놓은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2005년 6월 10일 '로이터통신'에 발표한 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통일 이후에도 주변열강들을 감시하는 역할로 주한미국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물론 미국군이 북측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 그렇다"고 주장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꺼내놓은 주둔용인설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한 사람은, 2000년 6월 14일 평양에 있는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시간 동안 회담을 진행하였을 때, 그 자리에 배석한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이다. 그가 최근에 서울에서 펴낸 자신의 회고록 '피스메이커: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0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제가 대통령에게 비밀사항을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군 주둔문제입니다만......1992년 초 미국 공화당 정부시기에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남과 북이 싸움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댔습니다. 역사적으로 주변강국들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전략적 가치를 탐내어 수많은 침략을 자행한 사례를 들면서 '동북아시아의 역학관계로 보아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해줬어요. 제가 알기로 김 대통령께서는 '통일이 되어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제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는 것이 남조선 정부로서는 여러 가지로 부담이 많겠으나 결국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설명을 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그런데 왜 언론매체를 통해 계속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건가"하고 묻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주기 바랍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주목하는 것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측 대통령과 상의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과 담판을 벌여 풀어야 할 '미결의 양자현안'이라는 점이다. 철군문제를 결정할 당사자는 남측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당사자가 아닌 남측 대통령과 만나서 철군문제를 논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철군문제를 거론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김대중 대통령의 생각이 같다고 말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금수산 기념궁전 참배와 연방제 통일방안 합의를 강하게 제안하였으나, 김 대통령이 끝내 거부하는 바람에 회담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제기하는 경우 논쟁만 하다가 공동선언도 채택하지 못하고 성과 없이 끝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결렬위기에 빠진 회담을 진행하면서 회담상대를 설득하여 협상성과를 내오려면 회담상대를 배려하는 협상기술이 요구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철군문제를 거론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김대중 대통령의 생각이 같다고 말한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한미국군 주둔을 용인한 것으로 철군반대론자들이 오해할 만큼 철군문제에 관해서 유연하게 발언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기 위한 정치적 배려였던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철군문제에 관해서 유연하게 발언하면서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려고 하였으나, 김 대통령이 끝내 반대의사를 굽히지 않는 바람에 결국 6.15 공동선언에서는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절충적 합의로 정리된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장하는 주둔용인설은 역할변경을 전제로 하는 논리이다. 그것은 주한미국군의 역할을 평화유지역할로 바꾸면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식의 논리이다. 그러나 주한미국군이 평화유지군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철군반대론자의 생각은, 미국의 군사전략도 모르고 한(조선)반도 군사상황도 모르는 몰이해이다. 설령 주한미국군이 역할을 변경하여 평화유지군처럼 변신한다고 가정해도 철군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되레 철군필연성이 제기된다. 원래 평화유지군은 분쟁지역에서 전쟁방지와 평화유지를 위해 주둔하기 때문에, 평화유지군으로 역할을 변경한 주한미국군은 한(조선)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세워지면 주둔근거를 잃어버리고 철군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주한미국군이 평화유지군 같은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고 말한 것은, 주한미국군의 역할변경을 전제로 하는 주둔용인설이 아니라 평화체제수립을 전제로 하는 철군필연설이다.

단독회견에 담긴 철군전략구상

철군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주둔용인설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배려를 오해한 것이라고 보는 내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자료가 있다. 그것은 2000년 6월 30일 원산초대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여섯 시간 동안 단독회견을 진행한 재미동포 언론인 문명자 주필이 '월간 말' 2000년 8월호에 발표한 기사이다. 그 기사 가운데서 해당부분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문명자 주필 : "김대중 대통령은 이번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즉각적인 철수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점을 설명해서 김 국방위원장께서 완전한 동의는 아니나 일부 납득했다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정일 국방위원장 : "그 동안 미군더러 나가라고 했지만 그들이 당장 나가겠습니까. 우선 미국 스스로가 생각을 달리해야 합니다. 그들은 분단에 책임이 있는 만큼 통일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지난날 닉슨도 카터도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했는데, 주한미군문제는 우선 그들 스스로가 우리 민족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방향에서 알아서 결정해야 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단독회견을 진행한 언론인은 문명자 주필밖에 없다. 문 주필의 단독회견은 다른 언론인이 깰 수 없는 기록으로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그 만큼 위의 기사가 주는 의미가 각별하다는 뜻이기도 한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단독회견은 당시 내외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위의 회견기사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완전히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분 납득한 것은, 나라가 통일된 뒤에도 주한미국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주한미국군을 즉각적으로 철군하는 것이 힘들다는 주장이다. 주목하는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한미국군을 반드시 철군시켜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에 대한 그의 확고한 생각은, 회견기사의 다른 부분에서 나타난다. 그는 "통일 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발언 (줄임) 등이 보도되어 사실 김 대통령에 대한 인민들의 인상이 좋지 않았습니다. 김 대통령께서 어려운 결심을 해서 통일을 위해 평양까지 오시는데 그래서는 안 되겠기에 예정에 없이 공항에 나갔습니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위의 회견기사에 담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철군전략구상은 대중언론의 완곡한 표현으로 다듬어진 것이므로, 철군문제에 관한 회견내용을 직설적 표현으로 다시 정리해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철군전략구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철군전략구상을 요점으로 정리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정책을 전환해야 철군이 가능하고, 즉각적인 전면철군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며, 철군문제는 나라의 통일문제와 결부되었으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나라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돕는 방향에서 철군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는 세 가지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적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정책전환이란, 그들이 대북적대정책을 청산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추진 중인 비핵화과정에서 전망할 수 있는 대로, 적대정책을 청산하는 정치적 결정은 항구적인 평화체제와 조미국교를 수립하기 위한 결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대북적대정책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열리게 될 조미수교회담에서 철군협상이 가능하다는 뜻이 분명해진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즉시철군의 현실적 불가능성을 인정하였다는 말은, 그가 단계적 철군의 현실적 가능성을 인정하였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을 차출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감군하다가 최종적으로 철군을 완료할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정한 주한미국군의 단계적 철군방안은, 북측이 미국에게 제안한 평화협정의 단계적 체결방안과 일치한다. 그에게 있어서, 평화체제수립과 단계적 철군은 하나로 일관된 전략구상인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철군전략구상을 이해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그러나 외부에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는 요소는, 위의 단독회견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발언에 들어있다. 단독회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한미국군 철군이 나라를 통일하기 위한 정치, 군사적 조치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철군하지 않으면 나라를 통일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입증된 것처럼, 북측 최고수뇌부는 나라의 통일을 뒤로 미룰 수 없는 지상과제로 여긴다. 북측 최고수뇌부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상대로 밀고 밀리는 15년 공방전을 숱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벌여온 목적은, 조미수교회담을 성사시키고 그 회담에서 철군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북측 최고수뇌부가 15년 공방전을 끝내면서 철군문제를 해결하려는 까닭은, 주한미국군을 철군해야 나라를 통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북측이 20년 이상 오랜 기간 동안 조미수교회담을 끈질기게 추구해온 까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철군전략구상을 실현하는 문제가 그 회담의 성사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비핵화를 실현하여 평화체제를 세우고, 조미국교를 수립하여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는 것은 북측이 나라의 통일을 실현해가는 일련의 과정이다. 현 정세는 그 과정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통일뉴스 2008년 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