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왕자의 충고와 미결의 양자현안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사우디아라비아 왕자 반다알의 충고

미국 북동부 대서양 해안에서 백사장과 바다가재(lobster)가 넉넉한 최적의 여름휴양지로 이름난 메인(Maine)주 켄벙크포트(Kennebunkport)에는 부쉬가문의 여름별장이 있다. 2000년 6월 10일 그 별장에서는 미국 대통령 부쉬의 어머니 바버라 부쉬(Barbara P. Bush)의 일흔 다섯 번째 생일잔치가 열렸다. 생일을 맞은 주인공이 눈치 채지 못하게 준비한 깜짝생일잔치(surprise birthday party)였다.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텍사스 주지사 부쉬가 준비한 생일잔치에 얼굴을 내민 하객들은 부쉬가문과 가깝게 지내는 저명인사들이었는데, 그 가운데는 사우디아라비아 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인 왕자 반다알 빈 술탄(Bandar bin Sultan)도 있었다. 반다알은 1983년부터 2005년까지 주미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를 지낸 워싱턴 외교가의 거물이며, 부쉬가문이 배출한 대통령 2대에 걸쳐 아주 가까운 관계를 맺은 사람이다. '워싱턴포스트' 편집부국장이며 주목 받는 저술가인 밥 우드워드(Bob Woodward)가 2006년에 펴낸 책 '거절하는 나라(State of Denial)'는, 깜짝생일잔치에서 미국 대통령 후보지명자와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주고받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부쉬: "이봐 반다알, 나는 자네를 세계가 뭔지 아는 진짜배기 머저리라고 보는데, 내게 설명 좀 해주게나. (Bandar, I guess you're the best asshole who knows about the world. Explain to me one thing.)"

반다알: "뭔데? 주지사. (Governor, what is it?)"

부쉬: "내가 왜 북조선을 걱정해야 하나? 내가 세계 각국에 관한 요약보고를 받을 때마다, 모두들 북조선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군. (Why should I care about North Korea? I get these briefings on all parts of the world, and everybody is talking to me about North Korea.)"

반다알: "주지사, 자네가 북조선에 대해 걱정해야 할 이유가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말해주지. (I'll tell you what, Governor. One reason should make you care about North Korea.)"

부쉬: "좋아, 이 건방진 사람, 어디 말해보게. (All right, smart aleck, tell me.)"

반다알: "그 나라 경계선에는 미국군이 3만8천 명이 있지. 다른 거 말고 이걸 좀 생각해보게. 경계선 너머로 총 한 방만 쏴도 그 군인들 절반이 즉시 죽게 되지. 화학전 공격 또는 생물학전 공격을 받거나 심지어 재래식 공격을 받아도 미국사람 1만5천 명이 죽게 되지. 그 순간, 미국은 전쟁을 하는 걸세. (The 38,000 American troops right on the border. If nothing else counts, this counts. One shot across the border and you lose half these people immediately. You lose 15,000 Americans in a chemical or biological or even regular attack.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s at war instantly.)"

부쉬: "음, 머저리들이 내게 솔직하게 보고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 난 북조선의 유래를 반쪽밖에 듣지 못한 셈이네. (Hmmm. I wish those assholes would put things just point-blank to me. I get half a book telling me about the history of North Korea.)"

반다알: "자네가 그 문제를 걱정하지 않으려면, 해결책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 (Now I tell you another answer to that. You don't want to care about North Korea anymore?)"

부쉬: "그런 말은 안 했는데. (I didn't say that.)"

반다알: "자네가 걱정하지 않으려면, 거기 있는 미국군을 철군해버리게. 그러면 전쟁이 터져도 지역분쟁이 될 걸세. 그때는 자네가 충분한 여유를 갖게 될 걸세. 지역분쟁에 개입할 건지, 말 건지 등을 결정할 시간적 여유 말일세.(But if you don't, you withdraw those troops back. Then it becomes a local conflict. Then you have the whole time to decide, 'Should I get involved? Not involved?' Etc.)"

반다알은 역시 '워싱턴 외교가의 거물'이라는 평판을 받을 만하다. 국제문제에 관해 무지한 부쉬에게 그는 주한미국군이 처한 군사적 위험을 짚어 주고 해법까지 충고해주었다. 반다알이 부쉬에게 충고한 내용을 좀 더 정확하게 정리하면,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주한미국군은 반다알이 부쉬에게 말해준 것 이상으로 참혹한 인명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내외언론을 통해 왜곡된 정보만 듣고 한(조선)반도의 군사정세를 거꾸로 읽는 사람들은 좀처럼 믿을 수 없겠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주한미국군은 조선인민군의 집중공격, 기습공격을 받고 궤멸될 것이다.

미국군을 궤멸위험에 방치한 백악관의 속셈

주한미국군이 개전 초기에 궤멸될 것이라는 말은 과장어법이 아니다. 1994년 6월 16일 주한미국군사령관(당시) 게리 럭(Gary Luck)이 작성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제출한 전쟁평가서에 따르면, 개전 초기에 미국군 8-9만 명이 죽는다는 것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당시) 토머스 슈워츠(Thomas A. Schwartz)는 2000년 3월 7일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 3월 15일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 그리고 4월 5일 중앙정보국 본부에서 열린 고위간부회의에서 조선인민군이 공격하면 주한미국군은 세 시간 안에 궤멸되고 만다는 내용으로 보고하였다. 미국 국방부 부장관(당시) 폴 월포위츠(Paul D. Wolfowitz)는 2001년 7월 12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조선인민군이 미사일로 한 차례만 공격해도, 사상자가 수만 명 또는 수십만 명이 발생할 것이며, 수많은 미국군 공군기지들이 무용지물이 되고, 많은 함정들이 격침될 가능성이 있다"고 증언하였다. 이처럼 조선인민군이 주한미국군을 궤멸시키기 위한 전격전에 엄청난 작전능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대규모 증원군이 한(조선)반도에 도착하기 전에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야 피해와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군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주한미국군이 궤멸위험에 빠져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주한미국군사령관에게 '안보'를 내맡긴 이 땅의 친미주의자들만 그러한 군사정보를 알지 못하고 있고, 설령 알았더라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쉬쉬하는 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그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간파하였다.

자국군을 궤멸위험에 내모는 정부는 세상에 없을 터인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왜 주한미국군을 궤멸위험에 방치하는 것일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을 궤멸위험에 방치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행동에 대해서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여러 각도에서 설명하려고 애써왔다. 그런 종류의 설명 가운데서 가장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 이른바 인계철선효과(tripwire effect)이다. 인계철선효과란 주한미국군이 조선인민군의 공격을 받는 경우 미국이 전면전으로 대응하게 되는 연쇄효과를 뜻한다.

그렇지만 인계철선효과는 미국군이 조선인민군을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전쟁평가가 나온 조건에서만 의의를 갖는다. 미국군이 전쟁에서 조선인민군을 이길 수 없다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전면전에 나설 수 없고 전쟁을 피해야 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에게 인계철선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가 또는 없는가 하는 문제는, 이처럼 미국군 전쟁수행능력에 대한 평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발행되는 이름난 주간지 '뉴스위크'가 1993년 11월 29일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1991년에 미국 국방부가 미국군과 조선인민군이 전면전을 벌이는 컴퓨터 모의전쟁실험(computer-driven war simulation)을 실시하였더니 조선인민군이 핵전쟁이건 재래식 전쟁이건 모두 이길 수 있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미국 국방부에게 충격을 준 그 전쟁평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에게 인계철선효과를 기대할 수 없음을 입증하였다. 다시 말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주관적 의사와는 정반대로, 주한미국군은 '전면전 위협을 가하는 인계철선'이 아니라 '궤멸위험에 빠진 볼모'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적어도 17년 전에 한국군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 합동참모본부에 되돌려주는 것은 물론, 궤멸위험에 빠진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였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궤멸위험에 빠진 주한미국군을 17년 동안 방치하는 이상행동을 보여 왔다. 미국군이 궤멸위험에 빠졌음을 알면서도 그들을 궤멸위험 속에 방치해오는 것은, 미국 대통령이 업무상 배임죄로 탄핵당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자신의 방치행위를 어떤 근거에서 정당화, 합리화하고 있을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을 궤멸위험 속에 방치해오는 까닭은, 군사적으로는 설명될 수 없고 정치적으로만 설명될 수 있다. 물론 미국 군부가, 더 정확히 말하면 미국 육군성(U.S. Department of Army)이, 육군에 할당된 야전군사령관 장성보직을 계속 확보하기 위해서 주한미국군 철군을 강하게 반대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조선인민군에 대한 '전쟁억지력'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궤멸위험에 빠져있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낯선 전선에 내몰린 불우한 운명의 병사들을 붙들고 자기들의 장성급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은별이 번쩍거리는 군부지위나 유지해보려는 일부 야전사령관들의 천박한 욕구는, 그 욕구를 주한미국군을 궤멸위험 속에 방치하는 원인이라고 지목할 수 없을 만큼 지엽적인 요인이다.

주한미국군을 궤멸위험 속에 방치하는 까닭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사령부를 앞세워 60년 묵은 한미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는 정책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관계를 영구히 유지하려는 그들의 정책, 바로 그것이 자국군을 17년 동안 궤멸위험 속에 방치해오는 진짜 이유이다. 한미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주한미국군을 궤멸위험에 남겨두는 자기들의 방치행위를 은폐하기 위하여 주한미국군 궤멸위험을 국가기밀로 처리하는 한편, 조선인민군의 군사력을 형편없이 낮게 평가하는 왜곡정보를 꺼내놓는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군사정세를 거꾸로 설명하는 왜곡정보에 군사전문가들이 말려드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물론 한미관계를 유지하는 법적 근거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지만, 주한미국군 주둔으로 안받침되지 못하는 조약은 언제 무력화될지 모르는 신사협정(gentleman's agreement) 이상의 효력을 갖지 못한다. 주한미국군 철군 이후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기존의 한미관계를 유지하는 물리적 지탱력을 가질 수 없다. 한 마디로 말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한미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 혹은 없는가 하는 최고의 정치문제는, 주한미국군을 계속 주둔시키는가 아니면 철군하는가 하는 정치적 결정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유지하는 한미관계는, 자세하게 설명하여야 실상을 알 수 있을 만큼 은폐와 왜곡이 심한데, 논제의 범위가 한정된 이 글에서는 한미관계가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관계의 불평등성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번에 드러난 것처럼, 광우병 위험에 노출된 저질쇠고기를 사고팔기로 쌍방이 합의해놓고도 쌍방이 그런 합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변태적 관계, 그래서 주한미국군이라는 물리력에 의존해서 유지할 수밖에 없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형적 관계, 이것이 한미관계의 실상이다.

미결의 양자현안을 푸는 방식

2.13 초기조치에는 이런 공약이 들어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미결의 양자현안(pending bilateral issues)을 해결하고 전면적 외교관계(full diplomatic relations)로 나아가기 위한 양자회담(bilateral talks)을 개시한다." 그에 비해, 9.19 공동성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은 주권을 상호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정책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기로 약속하였다"고 규정하였다. 9.19 공동성명에 비해 2.13 초기조치가 훨씬 더 구체적인 공약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13 초기조치에서 개시하기로 공약한 조미양자회담은 전면적 외교관계를 맺는 수교회담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조미수교회담은 2.13 초기조치에서 지적한 대로 '미결의 양자현안'을 해결하는 정치회담이다.

2.13 초기조치에서 언급한 '미결의 양자현안'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쌍방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그래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양자현안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양자현안이란 쌍방이 수교회담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와 조선인민군 장거리미사일 폐기문제이다.

북측 최고수뇌부는 조미수교회담이 열리면 그 회담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우려'하는 북측의 장거리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용의가 있음을 이미 오래 전에 밝힌 바 있으므로, 당면문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가 아니면 계속 주둔시키는가 하는 결정에 걸려있다. 그들이 철군결정을 내리면 철군문제에 연계된 장거리미사일 폐기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주한미국군 철군결정은 북측 최고지도부의 조선인민군 장거리미사일 폐기결정과 맞물려 있다.

그런데 '젤리코우 보고서'는 조미관계정상화에 대해서는 언급하면서도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에 관한 언급을 배제하였다. 또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주한미국군 철군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동안 해마다 조금씩 진행해오던 주한미국군 감축조치마저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자 중단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조미수교회담에서 미결의 양자현안을 해결하지 않으려는 쪽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중요한 것은, 조미수교회담에서 미결의 양자현안을 해결하여야, 또는 적어도 해결하기로 합의하여야 전면적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조미수교회담이 부쉬 임기 중에 시작될 가능성은 없지만, 혹시 그의 임기 중에 시작된다 해도, 미결의 양자현안이 그의 임기 중에 해결되지 못할 것으로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북측이 보유한 핵무기는 히로시마와 나가사끼를 파괴한 원시적인 핵폭탄이 아니라 장거리미사일에 장착하는 핵탄두이므로, 핵탄두를 해체하여 비핵화를 완결하는 문제는 핵탄두를 장착한 장거리미사일을 폐기하는 미사일문제와 맞물려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조선인민군 장거리미사일 폐기문제는 비핵화를 완결하는 문제를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와 맞물려놓은 연결고리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 추진 중인 비핵화가 완결단계에 접어들수록 장거리미사일 폐기문제를 연결고리로 하여 맞물린 주한미국군 철군문제가 양자현안으로 제기되는 것이다. 만일 북측 최고수뇌부가 장차 열리게 될 조미수교회담에서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해결할 전망을 갖지 못하였다면, 지금 추진되는 중인 비핵화를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미수교회담에서는 철군협상과 미사일협상이 진행될 것이다.

비핵화문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주장하였던 대로 6자회담 구도를 통해 협상의 접점을 찾았다가 결국 북측이 강하게 압박하여 바꿔놓은 대로 지금은 조미양자회담 구도를 통해 해결되는 중이지만, 비핵화문제와 달리 장거리미사일 폐기문제는 다자회담 구도에서 협상의 접점을 찾을 수 없다. 만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의 미사일문제를 6자회담에서 꺼내놓으면, 북측의 미사일문제만이 아니라 나머지 5자의 미사일문제가 걸려있는 동북아시아 군축문제가 튀어나와버린다. 북측의 미사일문제를 조미수교회담에서 풀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조미 쌍방은 이미 1990년대 후반에 다섯 해 동안 미사일협상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그 협상은 1996년 4월 20-21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1차 조미양자회담, 1997년 6월 11-13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2차 회담, 1998년 10월 1-2일 뉴욕에서 열린 제3차 회담, 1999년 3월 29-30일 평양에서 열린 제4차 회담, 2000년 11월 1-3일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제5차 회담에서 각각 진행되었으나 협상성과는 없었다. 일련의 회담에서 북측 최고수뇌부는 미사일협상과 철군협상을 함께 진행할 것을 요구하였던 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철군협상을 거부하고 미사일협상에만 집착하는 바람에, 회담을 다섯 차례나 진행하면서도 협상의 접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성과가 있었다면, 그것은 2000년 10월 12일 조미 쌍방이 워싱턴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북측의 미사일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공동성명에서 북측은 조미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부쉬가 집권한 뒤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해외수출용 미사일을 싣고 정상적으로 항해하던 북측의 무역짐배 서산호를 2002년 12월 9일 아라비아해에서 스페인 군함을 동원하여 불법적으로 정선, 검색하였다. 그 사건이 일어나자 클린턴 정부시기에 진행되어오던 미사일협상을 위한 조미양자회담은 중단되었으며, 북측은 조미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비핵화가 실현되고 있는 지금에 와서 이전과 달라진 것은, 장차 미사일협상과 철군협상이 조미수교회담에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이다. 북측은 조미수교회담에서 조선인민군 장거리미사일 폐기문제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맞바꾸기 방식'으로 풀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조미수교회담의 시작은, 북측이 주한미국군을 철군하기 위한 정치협상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조미수교회담을 진전시킬 가장 좋은 방도는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다. 클린턴이 임기 말에 내부논의를 통해 시도하다가 반대의견을 넘지 못해 포기하였던 미국 대통령의 평양방문이 실현되면 국교수립일정이 훨씬 단축될 것이며, 그에 따라 주한미국군 철군문제와 조선인민군 장거리미사일 폐기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시점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쉬가 자신의 남은 임기 중에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양을 방문하기는커녕, 남은 임기 중에 조미수교회담을 시작하기만 해도 커다란 진전이 될 것이다.

2008년 11월 4일에 실시될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는 부쉬와 달리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첫 해인 2009년에 적대국 최고지도자들과 '조건 없이' 만나겠다고 공언하였다. 미국의 역대 대선후보들 가운데 오바마만큼 다른 나라와의 적대관계를 개선하는 외교문제에 적극성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건국 이래 232년 동안 유럽계 백인정치인들이 독점해온 백악관에 최초의 흑인대선후보가 입성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이 땅의 정세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올해 미국의 유권자들은 '미결의 양자현안'을 해결할 미국 대통령을 선택할 것인가? (통일뉴스 2008년 6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