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공방전의 끝으로 가는 길목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근본적 변화의 시작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외교실험의 첫걸음을 내딛는 중이고, 북측 최고수뇌부는 대미압박공세를 중지하고 비핵화를 진전시키는 중이다. 쌍방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매우 조심스럽게 외교실험을 시작하였고, 또한 그래서 그들의 외교실험이 때로 불안정한 기조를 보이는 데 비해, 북측 최고수뇌부는 자신 있게 비핵화를 밀고 나가는 중이다.

중요한 것은, 외교실험과 비핵화가 멈출 수도, 거스를 수도, 되돌릴 수도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고위관리들이 즐겨 썼던 불가역성(irreversibility)이라는 말은, 아무 때나 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럴 때 써야 한다.

되돌아보면, 북측이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선언하고 장거리미사일을 시험발사하였던 1993년부터 15년 동안, 그리고 파키스탄 차가이 핵실험장에서 비공개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고 함경북도 무수단리 발사장에서 우주발사체(SLV)를 쏘아 올린 1998년부터 10년 동안, 그리고 미사일발사훈련과 지하핵실험을 실시한 2006년부터 최근 이태 동안, 북측은 앞길을 가로막는 숱한 도전과 방해를 물리치면서 대미압박공세를 밀고 나갔다.

북측 최고수뇌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사이에서 공방전이 15년 동안 밀고 밀리는 복잡한 양상으로 벌어졌을 뿐 아니라, 내외언론들이 공방전의 실상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바람에 사람들은 왜곡된 정보를 ale고 있거나 무관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역사상 최강국을 세운 대제국 건설자로 자처하고,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로 군림한다고 큰소리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상대로 15년 공방전을 벌여온 북측 최고수뇌부가 기어이 자기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고 마침내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시작하였다는 점, 바로 이것이 15년 공방전을 바라보는 시야에 뚜렷이 맺히는 정세인식의 초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근본적인 변화란, 정치부문과 군사부문에서 일어날 근본적인 변화이다.

그 변화가 왜 근본적인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문헌분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대하는 분석대상은, 2007년 2월 13일 6자회담에서 채택, 발표한 ?.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초기조치(Initial Actions for the Implementation of the Joint Statement)라는 외교문서이다. 이 글에서는 그 문서를 2.13 초기조치라 부른다. 그 외교문서를 중시하는 까닭은, 15년 공방전을 벌여온 쌍방이 현재 이행하는 중이고, 또 앞으로 이행할 모든 공약을 규정한 객관적인 근거가 그 속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2.13 초기조치가 실현되면서 정치, 군사부문에서 일어날 근본적인 변화를 두 마디로 요약하면, 평화체제수립과 조미국교수립이다. 평화체제수립과 조미국교수립이라는 근본적인 변화, 바로 그것이 15년 공방전의 끝이다.

북측 최고수뇌부가 비핵화를 통해서 추구하는 것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도 그에 상응한 외교실험을 하고 있다. 평화협정 체결과 조미관계정상화는 이미 20여 년 전에 북측 최고수뇌부가 제시한 대미전략인데, 3년 전 젤리코우 보고서가 그 전략을 받아들였다. 바로 그 전략이 지금 현실로 바꿔지는 중이다.

현 시기 정세발전의 속도와 방향을 가늠해보면, 15년 공방전의 끝이 멀리서나마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2008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미정상회담을 추진하려는 후보가 당선된다면, 정세발전은 더욱 탄력을 받아 급진전될 것이며, 아마 미국의 차기 대통령 임기 안에 15년 공방전이 끝나고 평화체제수립과 조미국교수립이 완결될 것이다. 15년 공방전이 끝나고 평화체제수립과 조미국교수립이 완결되는 날, 이 나라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새로운 국면에 들어설 것이다.

몇 가지 모호한 개념에 대한 해석

2.13 초기조치는 평화체제수립문제에 관해서 모호하게 규정하였다. 그 문서에 따르면, 직접 관련당사자들(directly related parties)은 적절한 별도 포럼(appropriate separate forum)에서 한(조선)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permanent peace regime)에 관해 협상(negotiate)한다는 것이다. 9.19 공동성명 제4항에도 글자 한 자 다르지 않게 똑같은 문장이 들어있다. 9.19 공동성명과 2.13 초기조치는, 평화체제수립문제에 관해서 똑같이 모호하게 규정한 것이다.

문제는 모호한 규정 자체가 아니라 규정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다. 평화체제를 세우는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는, 일차적으로 그 규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

1. 2.14 초기조치에서는 평화협정(peace agreement)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평화체제(peace regime)라는 개념을 썼고, 평화회담(peace talks)이 아니라 적절한 포럼(appropriate forum)이라는 개념을 썼다.

젤리코우 보고서를 작성하였던 필립 젤리코우(Philip D. Zelikow)는 2007년 10월 6일 중앙일보와 진행한 전자우편대담에서 협상의 목표는 이른바 평화체제(a peace regime)가 아닌 평화조약(a peace treaty)이어야 한다. 평화체제라는 용어는 모호하다. 그건 가끔 신뢰구축조치의 채택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그러나 그런 조치는 정전협정을 현대화하는 것일 뿐, 그걸 대체하는 건 아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가 제대로 짚은 대로, 당면문제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인 조미관계에서는 평화조약(peace treaty)을 체결하는 것이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남북(북남)관계에서는 평화협정(peace agreement)을 체결하는 것이다. 남, 북, 미 3자 또는 남, 북, 미, 중 4자가 체결하는 경우에는 평화조약과 평화협정이 하나의 외교문서에 담기게 되는데, 그 경우에도 평화협정이라 한다.

2. 포럼(forum)이라는 말은, 북측에서 쓰는 연단(演壇)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외국어이다. 그 말은 원래 공개토론회라는 뜻을 가졌는데, 남측에서는 포럼이라는 외국어를 그대로 쓰면서 우리말을 어지럽히고 있다. 평화포럼(평화연단)에서 하는 일은,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의견서나 공동성명 따위를 발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포럼은 협상이 아니라 토론을 위한 자리이므로, 한(조선)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은 평화포럼이 아니라 평화회담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13 초기조치는 평화포럼에서도 협상이 가능한 것으로 규정하였다. 평화포럼에서는 협상이 진행될 수 없는 데도 협상할 것이라고 규정한 것은 모순되는 논리이지만, 서로 합의하기 힘든 현안을 절충하여 담을 수밖에 없는 외교문서에는 그러한 논리적 모순이 섞여 들어가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포럼과 협상의 논리적 모순에서 주목하는 것은, 평화포럼이 평화회담으로 상향발전할 가능성이다. 초기단계에서 평화포럼을 진행하다가, 조건이 무르익어 합의에 이르면 평화회담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직접 관련당사자들이 종전선언을 발표하는 초기단계에서는 평화포럼을 진행하고, 남, 북, 미 3자가 잠정협정을 체결하는 제2단계로 나아가면서 평화포럼을 평화회담으로 전환하는 발전전망을 예상할 수 있다.

3. 평화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우선 직접 관련당사자를 정하는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이 문제도 역동적인 발전과정에서 풀려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서, 평화포럼에 참가하는 당사자와 평화회담에 참가하는 당사자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평화회담 참가자와 평화협정 체결당사자를 구분할 수도 있다.

평화회담에 참가하는 직접 관련당사자는 남, 북, 미, 중 4자로 정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당사자를 누구로 정하는가 하는 것이다. 체결당사자를 남, 북, 미 3자로 정할 것인가 아니면 남, 북, 미, 중 4자로 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북측은 3자 체결방식을 주장하고, 남측, 미국, 중국은 4자 체결방식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북측이 주장하는 체결방식이 3자 체결방식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3자 체결방식과 4자 체결방식을 모두 포괄하는 3단계 체결방안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3단계 평화협정 체결방안에 따르면, 우선 남, 북, 미 3자가 잠정협정을 체결하는 제2단계를 거치고, 주한미국군이 완전히 철군한 뒤에 남측과 북측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국과 중국이 그것을 보장하는 2+2 방식이 적용되는 마지막 단계로 나아간다.

4. 일반적으로, 군사대결이나 군사점령을 끝내는 평화회담에서는 외국군 철군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에서는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결정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까닭은, 평화회담에서 남측이 주한미국군 철군을 완강하게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도 당연히 주한미국군 철군을 반대하겠지만, 북측으로서는 미국과 남측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보다 미국만 따로 상대하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남측이 주한미국군 철군을 완강하게 반대하는 조건에서는 평화협정 체결문제마저도 해결하기 힘들어질 것이므로, 북측과 미국은 평화협정 체결문제와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분리해서 다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한미국군 철군을 결정하는 정치의제는 조미수교회담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은밀한 제안과 확실한 응답

종전선언문제를 가장 먼저 꺼내놓은 사람은 부쉬였다. 그는 2006년 11월 18일 하노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에 진행한 한미정상회담에서 나는 이미 결단을 내렸다. 남북 정상과 함께 한국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에 서명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부쉬는 그때 진행한 중미정상회담에서도 종전선언문제를 언급하였다. 부쉬가 한미정상회담과 중미정상회담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협정을 체결할 용의를 표명하기 직전, 조미관계가 격돌하고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북측은 2006년 7월 5일에 미사일발사훈련을 실시하고 10월 9일에 지하핵실험을 실시하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향해 초강경한 압박공세를 취했고, 그에 맞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유엔안보리를 움직여 10월 23일에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를 공식출범시켰던 것이다.

2007년 9월 7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쉬는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나의 목적은 한국전쟁을 종결시키기 위한 평화협정에 김정일 위원장 등과 서명하는 것이며, 한국전쟁을 종결시켜야 하고, 종결시킬 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의 견해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해달라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요청하였던 것이다. 부쉬가 그처럼 중대한 제안을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직접적,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고 한미정상회담을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은밀하게 북측에 보낸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은밀한 제안이 북측 최고수뇌부가 오래 전부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제기해오던 제안과 상통하였다는 점이다.

2007년 9월 7일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 제임스 제프리(James Jeffrey)는, 당시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쉬가 언급한 평화조약에 관한 통역오류를 해명하면서 한국전쟁에 관련된 4자가 마주앉아 평화조약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청와대를 통해서 북측 최고수뇌부에 전달된 부쉬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북측 최고수뇌부는 그 제안에 확실한 응답을 주었다. 북측 최고수뇌부의 확실한 응답은, 2007년 10월 4일 평양에서 발표된 남북(북남)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선언) 제4항에 들어있다. 그 문항은 남과 북(북과 남)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수뇌)들이 한(조선)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되어있다.

3자 또는 4자 정상(수뇌)들이 한(조선)반도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방안이 10.4 선언에 포함된 것은 북측 최고수뇌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가능하였다. 2007년 10월 5일 청와대 대변인(당시) 천호선은 언론대상설명회에서 당초 3-4자 안은 북측에서 제안한 것이다. 우리 실무진들은 북측안과 직접 관련당사국’ 등까지 포함해 여러 가지 안을 올렸는데 대통령께서 4일 서해갑문 참관차 출발하기 전 북측안을 받으라고 지시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07년 10월 11일 노무현 대통령(당시)은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종전선언 문제는 부시 대통령과 얘기했고,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도 합의했다고 설명했고, 김 위원장은 이에 나도 종전선언 관심 있습니다. 그것 한번 추진해 봅시다라고 해서 간단하게 얘기가 끝났다. 다만 지금 협상에 바로 들어가기는 조금 빠른 것 같고, 선언하고 그 다음 가는 것이 맞지 않겠는냐고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북측 최고수뇌부는 10.4 선언에 종전선언방안을 포함시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이상의 노력을 기울였다. 2007년 11월 27일부터 사흘 동안 평양에서 열린 제2차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 첫날 전체회의 기조연설에서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은 북남 수뇌분들이 밝힌 종전선언을 위한 군사당국간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와 관련해 남측이 교전당사자로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에 주목한다는 내용으로 발언하였다. 11월 29일에 7개조 21개항으로 발표된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 합의서 제4조는 쌍방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 군사적으로 협력하기로 하였다고 하면서 제2항에서 쌍방은 종전을 선언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군사적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하였다.

종전선언방안을 실현하기 위하여 남북(북남)이 군사적 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은, 북측 최고수뇌부가 판문점에서 종전을 선언하는 정상(수뇌)회담을 개최하기로 결정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진전을 보았으나 아직 낙관은 이르다

그 무렵, 북측 최고수뇌부가 풀어야 하였던 과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와 합의하는 것이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직접 북측에게 제안하지 않고 청와대를 통하여 제안하였던 것처럼, 북측 최고수뇌부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직접 상대하지 않고 청와대를 통하여 합의하려고 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7년 11월 30일부터 1일까지 김양건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장을 서울에 급파하였다. 김양건 부장과 비공개회담을 진행한 직후 이재정 통일부장관(당시)은 종전선언에 관해 논의했느냐?연합뉴스’ 기자의 물음을 받고 회담에서 상황에 대한 이해는 있었다. 그 문제는 결국 북측과 미국측 사이에 진전돼 나갈 과제인 만큼 북측은 미국측 입장이 무엇인지, 미국측은 북측 입장이 무엇인지 타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정부 고위관계자는 연합뉴스’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현재 남측을 방문중인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은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 이전이라도 4자 정상선언을 할 수 있다는 우리측 입장에 공감을 표시했다.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은 이런 북한의 입장을 미국측에 전달하고 협의할 것으로 안다. 남북은 북핵페기과정과 이를 추동할 수 있는 4자 정상선언이 병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고 밝혔다.

2007년 12월 3일 워싱턴에 도착한 청와대 안보실장(당시) 백종천은 오후에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븐 해들리(Stephen J. Hadley)를 잇달아 만났다. 이튿날 백종천을 수행 중인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당시) 박선원은 연합뉴스’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북핵 불능화와 북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가 이뤄지면, 북핵폐기과정에서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다는데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등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2007년 11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종식과 평화구축을 위한 정상선언으로 불렀던 종전선언을 위한 정치합의는 남, 북, 미 3자 사이에서 그처럼 상당한 진전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평화협정 체결은 아직 낙관하기에 이르다.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세우는 방식을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 하는 민감한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북측 최고수뇌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한(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세우는 방식에 관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북측 최고수뇌부는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방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평화포럼을 시작하는 방식으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방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쌍방의 방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처럼 상이점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쌍방이 합의점을 찾기 위한 평화회담을 시작한 뒤에 여러 차례의 회담을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세우자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쌍방이 상당한 진전을 보았지만, 아직 낙관하기에는 이르다고 전망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부쉬의 답변 아니오에 담긴 뜻

얼마 전 부쉬는 자신이 한미정상회담에서 언급한 종전선언 구상을 부인하는 듯한 말을 하였다. 2008년 4월 19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빗에서 열린 한미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조선일보’ 워싱턴 주재 특파원이 부쉬에게 임기 중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는가?고 묻자, 부쉬가 아니오(No)라고 짧게 대답하였다. 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지 않겠다고 대답한 것은, 그 자신이 한미정상회담에서 언급하였던 종전선언구상을 부인한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2007년 9월 7일 한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평화협정에 서명하겠다고 말한 부쉬는, 2008년 4월 19일 한미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이전의 자기 발언을 부정한 것이다.

부쉬는 2007년 9월 7일부터 2008년 4월 19일 사이에 생각을 바꾸었을까? 부쉬가 던진 아니오라는 짧은 답변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지만, 두 갈래로 해석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단독으로는 만나지 않고, 4자 정상(수뇌)회담이 열리면 만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어떤 경우에도 만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부쉬가 앞의 뜻으로 답변하였다면 4자 정상(수뇌)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남아있는 것이고, 만일 뒤의 뜻으로 답변하였다면 종전선언방안 자체가 그의 임기 중에는 실현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부쉬는 2008년 7월 7일부터 9일까지 일본 홋까이도 도야꼬에서 열리는 제34차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에 참석하는데, 2008년 4월 19일에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선진 8개국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길에 서울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하였고, 부시는 그 요청을 수락하였다. 그러므로 부쉬는 7월 초순에 서울을 방문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의 서울방문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남측 국민대중의 저항운동에 반미감정을 첨가시킬 수 있는 민감한 시기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남측 국민대중의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를 들어주는 척하는 기만술책으로 저항운동을 약화시키면서 서울방문계획을 추진할 것이다. 부쉬가 서울을 방문하더라도 그 기회를 이용하여 4자 정상(수뇌)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전혀 없다. 또한 부쉬는 2008년 8월 8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하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만, 그 기회를 이용하여 4자 정상(수뇌)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없다. 예상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은, 아직까지 4자 정상(수뇌)회담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황을 살펴보면, 부쉬는 자신이 북측에 제안한 4자 정상(수뇌)회담 개최구상을 접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이 가능하다. 만일 그가 자신의 구상을 접었다면, 그것은 종전을 선언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일련의 정치협상과정에 참가하는 정치적 임무를 미국의 차기 대통령에게 넘긴 것이다. (통일뉴스 2008년 6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