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그 속에 있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현실로 입증된 합법칙성

2008년 5월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1만 여명이 모인 가운데 첫 번째 촛불집회가 열렸을 때만해도, 대중저항운동은 광우병 위험이 도사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건강권 수호운동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이 땅의 대중저항운동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촉구운동으로 발전하다가 어느 사이에 '이명박 퇴진'을 외치는 반정부운동으로 격화되었다. 지금 시위현장에서는 '고시철회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구호와 '이명박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가 한꺼번에 울려나오고 있다. 2008년 6월 6일 저녁에는 세종로 네거리에서 시청까지 거리를 뒤덮은 20만 명에 가까운 대군중이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촛불대행진에 나섰다.

대중저항운동의 격화현상은 이명박 정권과 보수언론이 비방중상하는 것처럼 "순수한 촛불집회가 불법시위로 변질된 것"이 아니라, 대중저항운동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변화현상이다. 그 현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국민건강권 수호운동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촉구운동을 거쳐 결국 반정부운동으로 나아가는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이 작용하는 중이라는 점이다.

대중저항운동이 반정부운동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현상은, '이명박은 물러나라', 또는 '미친 정부 물러나라'고 외치는 여덟 박자 투쟁구호가 등장하고, 남측 전역 방방곡곡에서 군중시위가 일어나고, 특히 서울 도심에서 밤샘시위가 열기를 더하는 것은 물론, 청년선봉대가 시위현장에서 조직되어 청와대 진출을 시도하는 것 등이다. 투쟁이 격렬해지자, 진압경찰은 물대포를 발사하고 체포전담조를 들이밀면서 곤봉과 집단구타가 난무하는 강제연행과 강제해산으로 대응하였으며, 그로써 시위군중 속에서 많은 부상자와 연행자들이 생겨났다.

중요한 것은, 2008년 6월 1일부터 이 나라의 대중저항운동 속에서 '이명박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구호가 울려나오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진 15년 동안에도 대중저항운동이 끊이지 않았건만, 그 시기에 시위군중이 외치지 않았던 반정부구호가 15년만에 다시 등장하여 출범 100일을 맞은 이명박 정권을 정조준하기 시작하였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지난 시기 정권퇴진은, 광주학살의 원죄를 지닌 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하여 이 나라 민중이 13년 동안 최루탄 난사와 고문만행의 장벽을 뚫고 간고한 투쟁으로 밀고 나간 투쟁전략이었다. 만일 서울 도심을 뒤덮은 시위군중이 '이명박 퇴진'을 외치며 청와대로 몰려간다면, 그 투쟁을 더 이상 대중저항운동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것은 명실상부한 반정부운동인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돌아보면, 1960년 4.19혁명 이후 이 땅에서 일어난 모든 반정부운동의 전략은 정권퇴진전략이었으며, 그 전략을 수행하는 공세전술은 예외 없이 청와대 진격전술이었다.

전면폭발을 예고하며 날로 격화되는 반정부운동은, 대중저항운동이 항쟁화, 전국화, 정치화로 요약되는 합법칙적 발전과정을 밟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반정부 민주항쟁의 범주에 든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반정부운동이란 민중이 자신을 배반한 반민주정권을 바꾸려는 그들 자신의 강렬한 정치적 요구 곧 정권교체의 폭발적 요구이다. 대중저항운동이 반정부운동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다종다양한 정치적 요구들은 결국 하나의 최종적 요구로 귀결되나니, 그것이 바로 정권퇴진과 정권교체를 향한 민주적 요구이다.

이 땅의 시위군중 속에서 타오르는 투쟁의 불꽃을 폭력경찰의 물대포로 끌 수 없듯이, 이 나라 민중이 헤쳐나가는 투쟁의 길은 아무도 가로막을 수 없다.

베네주엘라 진보정치운동에서 배울 것들

그런데 대중저항운동이 민중봉기형 반정부운동으로 격화되었다고 해서 정권이 저절로 교체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베네주엘라가 겪은 대중항쟁경험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대선에서 승리한 까를로스 뻬레스(Carlos Andres Perez)가 1989년 2월 2일에 집권하자마자, 국제통화기금(IMF)을 끌어들여 2월 16일부터 강력한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으로 공기업을 민영화하였다. 구조조정 이전에 베네주엘라 경제는 비정규직 노동자 및 비공식부문 근로대중 확대, 물가폭등, 사회안전망 붕괴라는 삼중 치명상을 입고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지금 이 땅의 민생경제가 그러한 것처럼, 당시 베네주엘라 민생경제도 완전한 파탄지경으로 내몰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생경제파탄은 반드시 대중저항운동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뻬레스가 대통령에 취임한 날로부터 불과 25일밖에 되지 않은 1989년 2월 27-28일 베네주엘라에서 마침내 민중봉기(El caracazo)가 일어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대격동이었다. 기겁한 뻬레스 정권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출동시켜 민중봉기를 진압하였고, 진압과정에서 약 5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스티브 엘너(Steve Ellner)가 1995년에 펴낸 책 '1958년부터 1994년까지 민주주의상황에서의 베네주엘라 노동조합운동(El sindicalismo en Venezuela en el contexto democratico: 1958-1994)'에서 밝혔듯이, 1989년 2월 민중봉기가 일어난 때로부터 3년 동안 계엄상황이었는데도 크고 적은 저항과 투쟁이 무려 5천 번이나 일어났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발생적 대중저항운동은 정권교체라는 목표에 다가서지 못하였다.

1992년 2월 4일 베네주엘라군 특전사 소속 중령(당시) 우고 차베스를 중심으로 결집한 진보적 군인들이 군사정변을 일으켜, 부정부패와 양민학살로 민심을 배반한 뻬레스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시도하였으나 그들의 정권교체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1993년 5월 20일 뻬레스는 공금횡령사건으로 탄핵을 받아 결국 대통령직에서 쫓겨났고, 같은 해 11월 4일에 실시된 대선에서 라파엘 깔데라(Rafael Caldera)가 승리하였다. 신임 대통령 깔데라는 사회민주주의정당인 민주행동당(Accion Democratica)과 1958년부터 1993년까지 집권경쟁을 벌여온 사회기독교당(Partido Social Cristiano 또는 COPEI)을 창당한 보수정치인이다. 1993년 대선 직전에 사회기독교당이 분당될 때, 그는 당내보수파를 중심으로 국민통합당(Convergencia Nacional)을 창당하였다. 1990년대 베네주엘라에서는 공기업 민영화와 민생경제파탄, 대중저항운동과 군사정변이 뒤엉키고 있었으나, 그 나라 정치사의 '시계바늘'은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였다.

베네주엘라 민중이 열망한 진보적 정권교체는, 1998년 12월 6일 우고 차베스(Hugo Chavez)가 대선에서 승리함으로써 비로소 실현될 수 있었다. 베네주엘라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난 때로부터 진보적 정권교체가 실현되기까지 근 10년이 걸렸다. 만약 차베스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진보정치세력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10년이 지나도록 대중저항운동만 끊임없이 지속될 뿐 진보적 정권교체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베네주엘라에서 대중저항운동이 격화되고 군사정변이 이어졌는데도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당시 그 나라의 진보정치세력이 너무 무력하였기 때문이다. 민중이 정권교체를 아무리 열망해도, 무력한 진보정치세력에게 정권을 교체할 집권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베네주엘라의 진보정치세력이 걸려있던 무기력증에 관해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당시 베네주엘라에는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이 없었다.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져나간 진보신당처럼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를 정치이념으로 내건 민주행동당이 '강한 야당'으로 존재하였으나, 그 당이 추구한 사회민주주의 정치이념은 베네주엘라 민중이 요구하는 진보적 정권교체에서 너무 빗나간 먼 곳을 헤매고 있었다. 민중의 정치적 요구를 실현할 진보정당이 없었으니 진보적 집권전략도 진보적 정치활동가도 없었고, 따라서 차베스 같은 진보적 군인들이 정권교체임무를 대리할 수밖에 없었다. 차베스를 중심으로 하는 진보정치세력이 '제5공화국운동(Movimiento Quinta Republica)'이라는 진보정당을 창당한 때는, 그 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불과 한 해 전인 1997년 10월 21일이었다.

대중저항운동 실패→진보적 군사정변 실패→진보정당 창당→진보적 정권교체 실현으로 발전되어간 베네주엘라 진보정치운동사는, 반정부운동과 진보정치세력이 결합할 때, 오직 그러할 때에만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둘째, 당시 베네주엘라에서는 민주노총이나 전농 같은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너무 무력하였다. 민중의 저항과 투쟁이 일어난 격동기에 베네주엘라 노동운동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베네주엘라 노동자총연맹(Confederacion de Trabajadores de Venezuela)'은 지금 한국노총이 그러한 것처럼 오래 전에 이미 민주행동당의 '이중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베네주엘라 노동운동의 '비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금 이 나라에서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베네주엘라에서도 강력한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비정규직과 비공식부문(informal sector)이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그런데도 베네주엘라 노총은 비공식부문의 근로대중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지 못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배타적으로 의존하였고, 그에 따라 노동조합 조직율은 절반으로 내려앉고 말았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997년에 작성한 자료는, 베네주엘라 노총의 노조조직율이 1988년에 26.4%이었는데 1995년에는 13.5%로 곤두박질쳤음을 보여준다.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스스로를 정치세력화하여 진보정당을 건설할 때 진보정치세력이 등장하고 진보정치운동이 시작된다.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무력하면, 진보정당이 존재해도 진보정치운동이 시들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베네주엘라 진보정치운동사는, 진보정당과 진보적 대중단체가 진보정치세력이라는 이름으로 일체화될 때만이 진보적 정권교체를 향하여 진보정치운동을 힘있게 떠밀고 나갈 수 있음을 말해준다.

돌파와 집중, 두 가지 전술

대중저항운동이 반정부운동으로 발전할 때, 운동주체에게 요구되는 것은 올바른 전술운용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술적 실패는 전략적 패배를 불러온다. 다시 말해서, 밀고 밀리는 치열한 공방전에서 쟁취한 여러 차례의 전술적 승리를 딛고 나아가야 최후의 전략적 승리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반정부운동에는 다양한 전술이 요구되는데, 특히 두 가지 전술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첫째, 중앙돌파전술(frontal breakthrough tactics)이다. 대중저항운동이 반정부운동으로 발전하면, 이명박 정권의 반격공세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대중저항운동이 반정부운동으로 발전하면서 이명박 정권이 정치적으로 고립되었다 해도, 반정부운동의 전술적 우세를 전략적 우세로 보는 것은 오판 중의 오판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권 배후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버티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아마도 지금쯤 미국산 쇠고기를 이 땅에 팔아 넘기는 수출강행대책 따위를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니라, 반정부운동으로부터 이명박 정권을 지켜줄 비상안전대책을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명박 정권이 반정부운동의 예봉을 꺾기 위하여 관보게재를 연기하고, 고위관리 문책인사를 단행하고, 노태우의 '6.29 선언'과 같은 대국민 기만선언을 발표하는 식의 술책으로 반격공세에 나서면 반정부운동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정권의 반격공세에 대응하려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측면돌파가 아니라 중앙돌파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분출되고 있는 저항력을 그 밑바닥에 흐르는 잠재력까지 끌어내어 투쟁역량을 극대화하려면 위력적인 중앙돌파전술이 필수적이다. 반정부운동의 동력은 전선 중앙부에 뚫린 돌파구를 통하여 폭발적으로 분출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중앙돌파전술을 밀고 나갈 것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중앙돌파전술을 밀고 나가는 임무는 다양한 투쟁세력들 가운데서도 특히 진보정치세력에게 맡겨진다. 그 까닭은, 진보정치세력만큼 반정부운동의 발전방향, 전략목표, 대응전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세력은 없기 때문이며, 진보정치세력만큼 조직화되어 있는 세력은 없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세력의 범주에는 여러 층위의 조직들이 포괄되지만, 그 중심에는 반정부운동을 최종목표인 진보적 정권교체까지 밀고 나갈 임무를 지닌 민주노동당이 있다. 물론 민주노동당이 현재 얻은 정당지지율은 10% 안팎에 머물고 있지만, 노동자, 농민, 서민을 아우르는 각계각층 대중의 진보적 정권교체 요구를 대변하는 정치활동을 벌이는 유일한 정당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하여 투쟁하는 유일한 정당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진보적 정권교체의 미래상을 정강정책으로 설계한 유일한 정당이라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반정부운동의 최종목표인 진보적 정권교체까지 밀고 나갈 임무를 맡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보수언론의 견제와 차단에 가로막혀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민주노동당의 정치활동을 알리는 기회, 그리하여 그 당이 대중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는 기회가 창당 이후 여덟 해 만에 비로소 찾아온 것인지 모른다.

그와 대조적으로, 민심동향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통합민주당은 뒤늦게 장외투쟁에 조심스럽게 한 쪽 발을 들여놓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일간지 '한겨레' 2008년 6월 2일자가 보도한 대로, 통합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서 대중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6.4 보궐선거 결과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나라당 지지율은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추락한 통합민주당 지지율은 좀처럼 반등할 줄 모른다.

최근 일간지 '한겨레'가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국정운영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응답이 45.2%, '경제살리기'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응답이 40.5%나 되었다. 이것은 민심이 이명박 정권에게 등을 돌리기는 하였으나, 아직 대안세력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앞으로 잘 되지 않겠느냐 하는 식의 기대를 막연히 붙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대안세력을 찾지 못한 채 막연한 기대를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각계각층 대중들로부터 민주노동당이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으려면, 당력을 총동원하여 반정부운동에 앞장서는 길밖에 없다. 반정부운동에서 민주노동당이 맡아야 할 중앙돌파전술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 전술을 언제 운용할 것인가 등의 실행과제는 당지도부가 판단하고 결단해야 할 몫이다. 다만 한 가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반정부운동이 고조되어 결정적 시기가 왔을 때, 당지도부가 전원구속을 각오하고 과감하게 중앙돌파전술을 밀고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시기판단은 중앙돌파전술의 성패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1960년 4.19혁명 시기에 무기력하였던 당시 진보정치세력은, 이승만 정권이 반정부 민주항쟁으로 무너진 뒤에 실시한 7.29 총선에서 여러 유형의 혁신정당을 급조하여 정치적 진출을 시도하였으나 참패하고 말았다. 지금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에게서 민심이 떠나버린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면, 민주노동당이 일어설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다시 오지 않을지 모른다.

둘째, 동력집중전술(force-convergent tactics)이다. 반정부 운동에서 중앙돌파전술과 동력집중전술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밀접하게 연관되지만, 이론적으로는 그 두 가지 전술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반정부운동사의 경험이 말해주듯이, 여러 갈래로 분산된 투쟁동력들을 한 갈래의 투쟁방향으로 집중할 때, 산술적으로 계산하기 힘든 엄청난 전술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반정부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 투쟁에 참가한 여러 갈래의 투쟁역량들을 정권퇴진투쟁으로 모아내는 담당자는 진보적 대중단체들이다.

반정부 촛불집회는 지휘체계가 없이 자유분망하고 발랄한 축전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지만, 죽느냐 사느냐 하는 첨예한 정권퇴진투쟁은 축전분위기에 젖을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다. 시위군중이 청와대로 진출하는 길목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반정부 촛불집회와 정권퇴진투쟁은 차원이 다르다.

대중저항운동이 반정부운동으로 발전되어오는 동안 뒤로 물러나 있었던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이제 반정부운동에 앞장서야 하는 까닭은, 분산된 투쟁동력들을 정권퇴진투쟁으로 모으는 동력집중전술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진보적 대중단체들 가운데서도 특히 민주노총과 전농은 오랜 기간 동안 민중생존권투쟁으로 단련되고, 투쟁전술에 관한 전문지식을 가진 노련한 대중단체들이고, 반정부운동에 참가하는 수많은 단체들 가운데서도 총파업이라는 강력한 공세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양대조직이다. 요즈음 농번기라서 전농의 참여가 제한을 받고 있으므로, 민주노총이 더 많은 힘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과 전농이 합세한 노농총파업보다 더 위력적인 동력집중전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적 대중단체의 동력집중전술은, 명백하게도 반정부운동과 노농총파업을 배합하여 정권퇴진투쟁을 밀고 나가는 최강의 공세전술을 말한다. 반정부운동에 50만 명 이상이 참가하여 정권퇴진요구가 최고조에 이를 때 민주노총과 전농이 강력한 총파업공세로 그 운동에 결합하여 반정부운동을 정권퇴진투쟁으로 집중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동력집중전술이 쥐고 있는 승리의 열쇠이다.

1987년 6월에 일어난 반정부 민주항쟁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남측 전역에서 시위군중 100만 명이 결집하고, 서울에서만 25만 명이 결집하여 도심을 완전히 점거하자 경찰 진압력이 마비되었다. 만일 서울 도심에서 50만 명이 궐기하였더라면,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는 경찰의 최후 저지선마저 무너뜨리고 군정종식을 실현하였을 것이다.

거리에 쏟아져 나와 반정부운동구호를 외치는 수많은 시위군중들, 그리고 그들의 투쟁을 지지, 성원하는 절대다수의 각계각층 대중은 지금 스스로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명박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운동은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서울 도심을 뒤덮고 청와대 정문까지 굽이쳐갈 거대한 함성, 바로 그 속에 있다. (통일뉴스 2008년 6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