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상자'를 열지 못했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의혹사건을 끝장낸 싱가포르 합의

녕변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작업은, 몇 달 동안 이어진 정체상태를 벗어나더니 요즈음 급진전되고 있다.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제2단계 조치와 관련한 2007년 10월 3일 6자회담 합의(10.3 합의)'에서 공약한 대로, "녕변의 5-MW(e)원자로와 재처리시설(방사화학실험실) 및 핵연료봉 제조시설 등 3개 주요핵시설"은 이미 상당부분 불능화되었다.

불능화 작업을 정체상태에서 건져낸 결정적인 계기는, 2008년 4월 8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조미양자회담이다. 물론 2008년 2월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그리고 3월 13-1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조미양자회담이 열린 바 있지만, 비핵화를 진전시킬 협상의 돌파구를 뚫어놓은 것은 싱가포르에서 열린 조미양자회담이었다.

싱가포르 회담에 나섰던 미국 협상대표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은 회담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돌아가자마자 2008년 4월 10일 연방하원 외교위원회에서 회담결과를 비공개로 보고하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외교위원회 소속 하원의원들은 힐의 보고를 듣고서 "못마땅하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것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측에게 매우 유리한 회담결과가 나왔음을 뜻한다.

아니나 다를까, 2008년 4월 17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데니스 와일더(Dennis Wilder)는 기자회견에서 북측의 핵확산 의혹과 플루토늄 핵활동을 분리해서 다루겠다고 밝혔다. 양자를 떼어놓겠다는 말은, 북측의 플루토늄 핵활동에 대해서는 검증하지만, 북측이 시리아에게 핵기술을 넘겨준 것으로 의심한 핵확산 의혹에 대해서는 검증(verification)에서 감시(monitoring)로 물러서겠다는 뜻이다. 원래 의혹은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검증하는 것이므로, 핵확산 의혹을 감시하겠다는 말은 사실상 검증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당시 싱가포르 합의를 보도한 미국 언론들이, 미국이 북측에게 또다시 '양보'하였다는 비판논조를 실었던 까닭은 그러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미양자회담에서 합의결과가 나올 때마다 북측의 정치적 승리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정치적 패배를 감춰주려고 애쓰는 보수언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싱가포르 회담에서는 승리도 패배도 아닌 합의만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비핵화 과제를 놓고 조미 두 나라가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온 지난 15년 동안 조미양자회담에서 이끌어낸 합의들이 한결같이 그러했던 것처럼, 싱가포르 합의 역시 조미관계의 변화를 북측에게 유리하고 미국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정치적 결정, 다시 말해서 합의라는 개념으로 포장된 북측의 정치적 승리라고 해석된다. 북측의 정치적 승리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그 동안 비핵화 일정을 정체시키고 혼란을 불러일으켰던 의혹사건을 끝장낸 것이다.

그들은 왜 '유프라테스강의 상자'를 열려고 하였을까?

그리스 신화에는 진흙으로 빚은 첫 여인 판도라가 나온다. 제우스가 지상에 내려보낸 판도라는 신들에게서 받은 선물상자를 가지고 있었다. 궁금증을 못 이긴 판도라가 상자를 열어보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상자뚜껑을 열자 그 속에서 온갖 불행과 재앙이 튀어나와 세상에 퍼졌고, 깜짝 놀라 상자뚜껑을 닫는 바람에 상자 속에는 희망만 남았다고 한다. 판도라의 상자(Pandora's box)에 관한 이야기이다.

미국의 전문가들이 그 이야기를 본떠서 '유프라테스강의 상자(Box on the Euphrates)'라 부른 '의혹시설'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유프라테스강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리아 영토에 있었던, 상자처럼 생긴 사각형 건물이다. 그 건물은 2007년 9월 6일 시리아 영공을 침범한 이스라엘 전폭기들의 기습공격으로 파괴되었다. 2007년에 10.3 합의가 나오기 한 달 전에 터진 그 공습사건은, 2007년 9월 12일 뉴욕타임스가 이스라엘 당국자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스라엘이 '유프라테스강의 상자'를 공습, 파괴하여 일으킨 것이 핵확산 의혹사건이다. 만일 이스라엘이 '유프라테스강의 상자'를 열고 핵확산 의혹은 사실이라는 식으로 여론을 조작하면, 2.13 초기조치 합의와 10.3 합의에 따라 추진되는 비핵화 과정이 중지되고 대파국이 일어나는 것은 명백하였다.

'유프라테스강의 상자'를 공습, 파괴한 범행자는 이스라엘 극우정권이다. 2006년 5월 4일 에훗 올머트(Ehud Olmert)가 총리에 취임하고 나자, 그를 우두머리로 하는 극우정권은 2006년 6월 28일 팔레스타인 영토인 가자지구를 침공하였고, 7월 12일 레바논을 침공하였으며, 9월 6일에는 시리아의 '의혹시설'을 공습, 파괴하였다. 미국 언론은, 올머트가 '유프라테스강의 상자'를 파괴하라는 공습작전명령을 이스라엘 공군사령부에 내리기 얼마 전에 이스라엘과 미국의 고위정부당국자들 사이에서 "격한 토론이 있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것은 올머트 극우정권이 미국 고위당국자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시리아 '의혹시설' 공습작전을 강행하였음을 말해준다. 물론 올머트 극우정권이 공습사건을 일으키자, 부통령 딕 체니(Dick Cheney)를 우두머리로 하는 미국의 친이스라엘 극우세력은 기다렸다는 듯이 핵확산 의혹사건을 증폭시켰다. 체니-올머트 극우공조가 핵확산 의혹사건을 조작하고 증폭시켰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명백하게도 그들이 노린 목적은, '유프라테스강의 상자'를 열고 핵확산 의혹을 입증할 '증거'를 꺼내놓음으로써 10.3 합의 이행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올머트 극우정권이 왜 10.3 합의 이행을 가로막으려 했는가 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조미관계, 미국-이스라엘 관계, 그리고 아랍-이스라엘 관계가 뒤엉킨 내막이 들어있다.

10.3 합의를 이행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해오던 조치를 해제하여야 한다. 테러지원국 지정조치가 해제되면, 북측이 경제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 보수언론의 대체적인 전망이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이다. 테러지원국 지정조치가 해제되면, 북측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반제군사전선을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할 것이다.

북측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반제군사전선을 지원하는 까닭은, 북측이 대외정책에서 반제투쟁노선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범위에서 반제투쟁을 전진시켜 인류의 자주화 위업을 실현하는 것은, 북측이 스스로 인정하는 국가책무이다. 북측은 우리 민족끼리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민족이기주의를 배격한다. 북측이 추구하는 최종목표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함께 '인류의 자주화'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북측은 미국-이스라엘의 침략적 군사동맹에 맞서 싸우는 중동의 반제군사전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테러지원국 지정이 해제된 뒤에, 북측이 중동의 반제군사전선을 적극 지원하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심각한 위협이 된다. 이스라엘이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를 공약한 10.3 합의 이행을 가로막으려고 애쓴 까닭이 거기에 있다.

1998년 8월 31일 북측이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탑재한 우주발사체(SLV) 백두산 1호를 쏘아 올려 미사일 강국임을 입증하였을 때, 이스라엘 정부당국자가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정부당국자와 만나 중동의 아랍나라들에게 미사일을 수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물론 북측은 그 부탁을 거절하였다. 그때 북측이 이스라엘의 부탁을 거절한 까닭이 아랍나라들에게 미사일을 수출하여 벌어들이는 외화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보수언론에 나돌았지만, 그것은 북측이 중동의 반제군사전선을 지원해왔음을 알지 못한 자의적 해석이었다.

비핵화 이행을 잠시 늦춘 '불협화음'

체니-올머트 극우공조는 결국 '유프라테스강의 상자'를 열지 못했다. 10.3 합의 이행을 가로막으려던 그들의 방해공작은 실패로 끝났다. 그렇게 된 사연은 아래와 같다.

첫째, 10.3 합의에서 "조선은 핵물질, 핵기술 또는 핵정보를 이전하지 않기로 공약"하였는데, 10.3 합의 이전에 설령 북측이 시리아에 핵기술을 넘겨주었다고 해도, 북측은 2003년 1월 10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였으므로, 핵문제와 관련된 그 어떤 국제법도 위반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체니-올머트 극우공조는 핵확산 의혹을 국제법 위반문제가 아니라 국제정치문제로 제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마저도 여론형성이라는 빈약한 수단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급한 김에 핵확산 의혹을 들고 나오기는 하였으나,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였다. 체니-올머트 극우공조는 핵확산 의혹을 들고 나와 국제여론을 불러일으키고 10.3 합의를 백지화하려는 방해공작에 달라붙었으나, 그것은 헛수고였다.

둘째, 이스라엘 전폭기들이 1981년에 이라크 바그다드 부근의 오시락(Osirak) 원자로를 공습으로 파괴하였을 때, 이스라엘 정부는 정찰위성이 찍은 공습현장사진을 공개하고, 공습작전에 참가한 공군조종사들의 언론대담을 허용한 바 있다. 그런데 2007년 9월 6일 시리아의 '의혹시설'을 공습으로 파괴하고서는 언론공개는커녕 보도통제까지 실시하였다. 이것은 그 파괴된 건물이 핵시설이었다는 그들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반증한다.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싸드(Bashar al-Asad)는 2007년 10월 1일 영국 비비씨(BBC) 텔레비전방송과 대담하면서 그것은 "사용하지 않은 군사건물(unused military building)"이라고 밝혔다.

2007년 9월 20일 기자회견에서 부쉬는 "그 문제(이스라엘이 시리아의 '의혹시설'을 공습, 파괴한 문제-옮긴이)에 대해 논평하지 않겠다"고 몸을 사렸지만, 딕 체니를 우두머리로 하는 미국의 극우정치세력은 기다렸다는 듯이 핵확산 의혹을 물고 늘어졌다. 그들을 도와준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 사회의 우호적 감정이다.

얼마 전 실시한 전화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개신교 신자의 84%, 천주교 신자의 76%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유대인 단체들이 연대하여 결성한 '이스라엘 건국 60주년 전국위원회'는, 조지 부쉬(George H. W. Bush)와 빌 클린턴(William J. Clinton) 두 전직 대통령을 공동위원장으로, 대선후보주자들인 힐러리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존 맥케인(John McCain)을 공동부위원장으로,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를 비롯한 역대 국무장관 전원을 위원으로 추대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라, 부쉬는 2008년 5월 15일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경축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미국-이스라엘의 침략적 군사동맹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다. 이것은 미국의 유대인 정치세력이 얼마나 막강한지, 미국-이스라엘 동맹관계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말해주는 사례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미국의 유대인 정치세력은 핵확산 의혹을 물고 늘어진, 딕 체니를 우두머리로 하는 미국의 극우정치세력과 목소리를 합쳤다. 소란스러운 불협화음이 시작된 것이다.

그보다 앞서 이스라엘 총리 에훗 올머트는 2008년 2월 27일 도쿄에서 열린 이스라엘-일본 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리 후꾸다 야스오(福田康夫)에게 북측의 핵확산 의혹에 이스라엘과 일본이 공동으로 대처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들의 소란스러운 불협화음은 10.3 합의 이행을 잠시 늦추고 있었다.

백악관은 발파굉음을 들을 수 있을까?

그러나 소란스러운 불협화음은 10.3 합의를 이행하려는 북측 최고수뇌부의 의지 앞에서 잦아들고 말았다. 10.3 합의 이행을 가로막음으로써 조미관계정상화를 초기에 주저앉히려는 체니-올머트 극우공조가 기도한 방해공작을 파탄시켰다는 것, 바로 이것이 싱가포르 합의가 지닌 커다란 의의이다.

싱가포르 합의에 관해 언론이 보도한 내용은, 10.3 합의에서 공약한 대로 녕변 핵시설을 이미 불능화하기 시작한 북측이 녕변 핵시설의 과거핵활동에 관해서 통보하고 미국은 북측의 통보내용을 검증한다는 것, 그리고 미국은 10.3 합의에서 공약한 대로 북측의 핵시설 불능화와 과거핵활동 통보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북측의 공약이행에 상응하여 미국이 취할 행동은, 북측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고 적성국 교역법(TEA) 적용을 종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10.3 합의에서 공약한 것 이외에 어떤 내용이 싱가포르 합의에 들어있을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였다고 발표하면 24시간 안에 북측이 녕변 핵시설 한 복판에 있는 냉각탑을 폭파해버리겠다고 약속하였다고 한다. 미국 씨엔엔(CNN) 텔레비전 방송은 2008년 5월 10일과 11일 여러 차례 되풀이하여 내보낸 1시간 분량의 현장취재 영상물을 통하여 냉각탑 모습을 세상에 공개하였다.

냉각탑 폭파장면이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되면, 북측 최고수뇌부의 10.3 합의 이행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를 입증할 것이고, 비핵화 과정에 장애를 일으키는 온갖 억측과 의심을 날려버리게 될 것이다. 냉각탑을 폭파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10.3 합의 이행의지를 전세계에 입증하고 조미관계정상화의 돌파구를 뚫어내는 놀라운 씨나리오는 차라리 예술적 구상에 가깝다.

10.3 합의이행은 녕변 핵시설 불능화로 족한데, 북측이 구태여 냉각탑 폭파라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냉각탑을 폭파하려는 북측 최고수뇌부는, 그 행동에 상응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도 극적인 전환행동을 취해주기를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북측 최고수뇌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미국과 북측이 관계정상화를 실현하기 시작하였음을 전세계에 보여주는 극적인 전환행동을 취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의 평양방문은 오래 전부터 그 가능성이 거론되어왔고, 클린턴 집권말기인 2000년 10월에 당시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가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으므로, 국무장관의 평양방문은 역사적 방문이라는 수식어를 달기에 어색하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취할 극적인 전환행동으로는 미흡하다. 그들이 취할 극적인 전환행동은 라이스의 평양방문 중에 조미 두 나라가 내올 정치적 합의가 되지 않을까? 올브라이트가 평양을 방문하기 직전에 조명록 특사가 워싱턴을 방문하여 조미공동성명을 발표하였으므로 올브라이트의 평양방문 중에는 공동성명을 내지 않았으나, 라이스의 평양방문 중에는 공동성명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조미 두 나라가 국가관계를 정상화하였음을 선언하는 역사적인 공동성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냉각탑을 날려버리는 발파굉음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과감한 결단을 촉구하는 북측 최고수뇌부의 강력한 신호이다.

국가관계 정상화에서 최고강령 실현으로

일반적으로, 국가관계 정상화란 두 나라 수도에 상설외교거점을 개설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구상하는 상설외교거점은, 북측과 국가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평양과 워싱턴에 각각 개설하는 이익대표부(interests section)일 것이다.

그런데 꾸바-미국 관계나 이란-미국 관계를 살펴보면, 이익대표부를 설치하였다고 해서 국가관계가 정상화된 것은 아니다. 꾸바는 워싱턴 주재 스위스대사관에, 그리고 미국은 아바나 주재 스위스대사관에 각각 이익대표부를 설치하였다. 이란은 워싱턴 주재 파키스탄대사관에, 그리고 미국은 테헤란 주재 스위스대사관에 각각 이익대표부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꾸바와 이란을 여전히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하면서 적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이익대표부 설치는 의미가 없다.

중국과 미국이 국가관계를 정상화한 경험을 살펴보면, 1972년 2월 미국 대통령 닉슨(Richard M. Nixon)이 중국을 방문하였고, 1973년 5월 베이징과 워싱턴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개설하였고, 1978년 12월 16일 '외교관계수립에 관한 중화인민공화국과 아메리카합중국 사이의 공동성명'을 발표하였고, 1979년 1월 1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었다. 7년이 걸렸다.

베트남과 미국이 국가관계를 정상화한 경험을 살펴보면, 1994년 2월 클린턴 정부가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조치를 완전히 해제하였고, 1995년 1월 연락사무소 개설을 합의하였고, 같은 해 7월 관계정상화를 선언하고 8월에 하노이와 워싱턴에 각각 대사관을 개설하였다. 관계정상화를 선언한 때로부터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기까지 두 달도 걸리지 않았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면, 조미 두 나라도 얼마든지 그처럼 짧은 기간에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관계를 정상화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정상화를 이끌어 가는가 하는 문제이다. 중국-미국 수교과정이나 베트남-미국 수교과정은 모두 미국이 주도하였다. 그렇게 된 까닭은, 중국과 베트남이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점차적으로 포기하면서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각각 자국의 정치노선을 바꾸자, 미국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수교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과 국가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을 절실히 요구하는 쪽은 북측이다. 북측 최고수뇌부는 이른 시일 안에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으려 한다. 이익대표부를 개설하는 중간단계를 거치며 시간을 끌지 말고, 베트남-미국 수교과정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국가관계를 정상화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곧바로 대사관을 개설하자는 것이다.

북측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정치노선을 바꾸지 않았는데, 왜 대사급 외교관계를 그토록 절실히 요구하는 것일까? 분석가들은, 북측이 미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으면 미국의 전쟁위협과 경제제재에서 벗어나게 되므로 그 관계를 절실히 요구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대사급 외교관계의 한 측면만 바라보는 협소한 관점이다.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으면 북측이 미국의 전쟁위협과 경제제재에서 벗어나지만, 북측 최고수뇌부가 단지 그것만을 위하여 그 관계를 절실히 요구한다고 보는 것은 단견이다. 북측 최고수뇌부가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을 통하여 추구하는 목적은, 미국의 전쟁위협과 경제제재에서 벗어나는 최저강령(minimum program)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는 최고강령(maximum program)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 최고수뇌부의 생각과 어긋나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대사급 외교관계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그 까닭은, 북측 최고수뇌부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고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려 하는 반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는다 해도 주한미국군은 철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주한미국군을 철군하기는커녕 그 동안 진행해온 병력감축마저 중단하였을 뿐 아니라, 2008년 8월에 을지-프리덤 가디언(Ulchi-Freedom Guardian)이라는 이름으로 한미합동전쟁연습을 또다시 강행할 준비를 다그치는 중이다. 조미 두 나라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는 것과 더불어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놓고 격돌할 가능성이 보인다. (통일뉴스 2008년 5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