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직면한 위협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미국군은 육탄공격을 각오할 만큼 사상적으로 무장한 이념형 군대가 아니라, 사상교육이라는 말조차 모르고 무기성능에만 의존하는 심약한 실무형 군대이다. 자본주의나라들이 보유한 실무형 군대들은 사상정신적으로 허약하기 때문에 자기들이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작전평가(operational estimate)가 나와야 출전하는 경향이 있는데, 핵교전에 관련해서는 그런 작전평가가 나올 수 없다. 미국군은 소련의 전략거점을 겨냥하여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잔뜩 쌓아놓고서도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의 공포에 가위눌렸던 냉전시기의 '잔인한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재래식전쟁에 대해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국군 지휘부는 한 차례 실시하는데 100만 달러씩 들어가는 작전계획 컴퓨터 모의실험에서 자기들이 이길 수 있다는 결과를 보고 나서야 출전을 결심한다. 그러나 미국군이 재래식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판단은 주관적이어서, 출전결정에서 오판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를테면, 미국군이 이기지 못한 한국(조선)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이 그러한 오판의 사례이다.

중요한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핵전쟁(nuclear war) 보다 핵확산(nuclear proliferation)을 더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조선)이 핵무기로 보복공격을 가해오는 것보다 북(조선)의 무기급 핵물질 또는 핵무기가 제3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 2008년 2월 5일 미국 국가정보국장(DNI) 마이클 맥코넬(J. Michael McConnell)은 연방상원 정보위원회에서 "북(조선)이 핵무기를 해외로 확산시켰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우려한다는 말로 표현강도를 낮추었지만, 북(조선)의 핵무기가 해외로 확산되는 것은 미국에게 우려가 아니라 두려움이다. 핵확산에 대한 두려움을 솔직하게 표현한 사람은 클린턴 정부시기에 국방장관과 대북(조선)정책조정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William J. Perry)이다. 그는 2007년 1월 18일 연방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북(조선)이 핵무기나 핵물질을 제3국이나 테러단체에게 팔아 넘기는 것이 무엇보다 심각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 대북(조선)협상특사 조셉 디트러니(Joseph E. Ditrani)는 2005년 5월 3일 워싱턴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북(조선)이 핵물질을 제3국이나 국제테러조직에 넘기려 한다면 악몽의 씨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들이 이처럼 핵확산을 두려워하는 것은, 오늘날 핵기술을 개발하려는 나라가 하나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핵기술을 개발하려는 나라들 가운데서도 특히 반미노선을 견지하는 시리아와 베네주엘라가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밀착감시를 받고 있다. 2007년 11월 15일 우고 차베스(Hugo Chavez) 대통령은 핵기술을 개발하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처럼 베네주엘라도 핵기술을 개발하겠노라고 공언한 바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자극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스라엘과 미국 내 유태인 정치세력이 조미관계정상화를 저지하기 위해서 제기한, 북(조선) 핵기술의 시리아 이전 의혹사건에 말려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그에 대한 해명을 북(조선)에게 요구하는 것 역시 핵확산에 대한 극도의 불안한 심리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핵전쟁보다 핵확산을 더 두려워하는 까닭은, 핵확산이 핵테러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핵확산금지체제를 고수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는 까닭은, 핵확산을 차단함으로써 핵테러를 예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가 미국 공군으로부터 용역을 받아 국방부 차관보 출신으로 랜드연구소 부소장인 앤드류 혼(Adrew R. Hoehn)과 4명의 연구원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2007년도 보고서 '새로운 역할분담: 미국이 이라크 이후에 직면한 안보도전(A New Division of Labour: Meeting America's Security Challenges Beyond Iraq)'에서 엿보인다. 그 보고서는 국제테러조직들, 핵무기를 보유한 지역강국(regional power)인 북(조선), 그리고 아시아에서 미국과 군비경쟁에 나선 중국이 미국에게 위협적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들의 시각에서 보면, 국제테러조직이 북(조선)으로부터 무기급 핵물질을 넘겨받을 가능성은 미국에 대한 핵테러의 가능성과 일치하는 것이다.

북(조선)이 국제테러활동을 금지하는 국제협약에 서명하고 국제테러활동을 반대하는데도, 미국 국무부가 해마다 북(조선)에게 '테러지원국'이라는 누명을 씌우는 까닭은, 북(조선)의 무기급 핵물질이 국제테러조직의 손에 들어가지나 않을까 하고 지레 식겁하기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에 4억6천만 달러를 쏟아 부어야 하는 까닭은, 북(조선)이 핵활동을 중단해야 핵확산에 대한 자기들의 두려움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전세계를 감시하는 거대한 첩보망을 깔아놓았다고 큰 소리 치지만, 그들의 첩보망이 지구의 어느 한 구석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핵확산을 막을 도리는 없다. 무기급 핵물질이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감시와 통제를 따돌리고 국경을 넘어 이동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사람들이 먹는 자몽(grapefruit)만한 크기로 만들 수 있는 무기급 핵물질은, 감시체계를 뚫고 무기를 숨겨놓거나 운반해야 하는 국제테러분자들에게 안성맞춤의 테러무기로 될 수 있다. 원래 무기급 핵물질은 고성능 폭약을 정밀회로를 정교하게 연결하는 고난도 기술로 제조한 기폭장치가 있어야 핵폭발을 일으키지만, 그러한 기폭장치가 없이 무기급 핵물질만으로도 핵테러를 저지를 수 있다는데 공포의 원인이 있다.

핵무기는 국제암시장에 나도는 상품이 될 수 없지만, 놀랍게도 핵물질은 국제암거래를 통해 나돌고 있다. 국제테러분자들에게 달러나 유로만 있으면, 그들은 국제암거래를 통해서 핵물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미국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의 발표에 따르면, 핵물질이나 방사능물질을 불법적으로 거래하거나 도난 또는 분실하였다가 적발된 사례는 해마다 평균 200-250건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 본토에 드리운 기나긴 국경선과 해안선의 경비망을 뚫고 국제테러분자들이 미국 대도시에 숨어 들어가는 것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오는 소설적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9.11 테러참사는 국제테러분자들의 미국 본토 잠입위험을 일깨워준 충격사건이었다. 9.11 테러참사 직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정부에게 반테러전쟁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면서 여섯 해 동안 100억 달러를 지원해주고, 그 가운데 약 1억 달러를 파키스탄 군부의 핵무기 안전관리를 위해 사용하였다. (뉴욕타임스 2007년 1월 18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파키스탄의 무기급 핵물질이 국제테러조직에게 넘어가 자기 숨통을 조이는 핵테러 수단으로 둔갑할까봐 두려워한 것이다.

국제테러조직이 무기급 핵물질을 손에 넣었다는 정보를 미국 국가정보기관이 파악하는 경우, 미국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핵참화를 막아내려는 전국적 핵테러예방작전에 천문학적인 비용과 인력을 쏟아 붓고 행정력을 집중시키는 미증유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명백하게도, 미국은 끔찍스러운 핵테러 악몽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2001년에 일어났던 9.11 테러참사를 넘어서는 충격과 공포 속으로 미국 전체를 몰아넣는 악몽 중의 악몽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20만 명이 넘는 방대한 인원을 배치한 국토안보부를 2002년 11월 25일에 창설하고, 미국을 드나드는 모든 공항과 국경통과소에서 검색과 출입국관리를 강화하고, 심지어 미국에 머무는 다른 나라 유학생들까지 감시하는 신경과민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국제테러분자들의 미국 본토 잠입위험에 신경이 바짝 곤두섰기 때문이다. 9.11 테러참사 직후 당시 국방장관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는 미국 본토를 겨냥한 테러를 예방하기 위해 국방부 산하에 방첩활동국(CIFA)을 신설하였고, 1천 명의 핵과학자들과 1천 명의 연방수사국(FBI) 폭발물 전문요원으로 구성된 26개의 핵물질 탐지대책반이 미국 대도시들에서 운영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2008년 1월 6일)

그러나 북(조선)이 핵기술을 제3국에 넘겨주고, 핵기술을 넘겨받은 그 나라가 국제원자력기구 규정에 따라 사찰을 받는다면, 그러한 합법적인 핵기술 이전은 누구도 문제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러시아로부터 핵기술을 수입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아온 이란의 부셰르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합법적이다. 그런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조선)으로부터 핵기술을 넘겨받지나 않을까 하고 경계의 눈초리를 떼지 못하는 감시대상국은 반미노선을 추구하는 나라들이고, 더욱이 국제테러조직들은 그러한 나라들의 영토에 구축한 비밀활동거점에서 암약하는 중이라는 사실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신경을 끝없이 자극하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친미동맹국의 핵기술 해외이전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북(조선)이 핵기술을 제3국에 이전할까봐 노심초사하는 까닭은, 핵기술 이전이 불법적인가 아니면 합법적인가 하는 법적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반미적인가 아니면 친미적인가 하는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한 것은 핵확산 위험을 높인 것이고, 핵확산 위험이 높아졌다는 말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핵테러 공포를 감지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가장 철저한 반미노선을 견지하는 핵보유국 북(조선)이 핵확산금지체제를 핵확산 위험으로 뒤흔드는 것은 미국에게 핵테러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충격적인 정치공세로 된다. 다시 말해서, 핵확산 위험은 미국에게 핵테러 공포로 전화되는 것이며, 핵테러 공포는 곧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직면한 심각한 위협인 것이다. 누구나 급소를 얻어맞으면 혼절하거나 심한 경우에 목숨까지 잃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핵테러 공포에 사로잡히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급소를 얻어맞은 것처럼 꼼짝하지 못하게 된다.

핵야망을 품은 '악의 축'은 절대로 상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걸고 그토록 기세가 등등하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조선)이 2005년 2월 10일에 핵무기 보유를 선언한 이후 그 원칙을 슬그머니 포기한 까닭은, 북(조선)을 상대하지 않는 경우 핵확산 파국을 겪을 수 있음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어쩔 수 없이 북(조선)을 상대하면서도 북(조선)의 핵포기를 강요하는 '선포기 후대화 원칙'을 완강히 고수하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결국 핵포기와 조미관계정상화를 동시에 행동에 옮기자는 북(조선)의 요구를 담은 2005년 9.19 공동성명에 서명한 까닭도 핵확산 위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2006년 10월 9일 북(조선)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다는 보고를 받고 경악한 부쉬는 텔레비전 연설에서 "북(조선)이 국가나 비국가단체에게 핵무기나 핵물질을 이전하는 것은 미국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되며, 북(조선)은 그러한 행위의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말하며 즉각적으로 반응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험담과 욕설이나 내뱉던 부쉬가 북(조선)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뒤에 잠잠해지더니 2007년 12월 5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대통령 친서까지 보내는 공손한 친서외교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던 까닭도 핵확산 위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기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말해서 비핵화의 진전속도가 느려질수록 핵확산 위험은 그만큼 더 높아진다. 지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그들이 비핵화와 조미관계정상화의 동시행동공약을 서둘러 이행하지 않고 우물쭈물하다가 핵확산 위험에 가위눌릴 수밖에 없는 핵수렁에 빠져있는 것은 분명하다.

돌이켜보면, 평안북도 영변에 있는 5MW 흑연감속로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한 연구시설이 아니었다. 북(조선)에게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조선인민군이 미국군기지를 타격할 미사일을 실전배치하지 못하였던 지난 시기에 미국군의 일방적인 미사일 위협을 받고 있었던 북측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미국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체르노빌형 방사능 유출참사가 일어날 위험을 지니는 것이기에 그러하였다.

영변 핵시설을 기술혁신으로 보강하면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아니라 핵무기 생산을 앞당긴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적이고 정열적인 지휘가 없었으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국력을 집중하여 마침내 독자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국군 철군을 요구하는 마지막 담판으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끌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핵확산을 두려워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급소'를 일찌감치 파악하였던 것이다. (통일뉴스 2008년 4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