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조한관계를 부정하는 사연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축구애호가들이 열광하는 월드컵 축구경기가 2010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데, 남측과 북측의 축구단이 그 경기의 아시아지역 3차 예선 3조 2차전에 출전하였다. 북측과 남측의 축구단이 국제축구경기에서 맞붙은 것은 1993년 10월 28일 카타르 도하에서 1994년도 미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전 이후 14년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원래 2008년 3월 26일 평양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남북(북남) 축구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이 닥쳤다. 국기게양과 국가연주에 대한 남측과 북측의 의견이 충돌한 것이다.

조선축구협회는 처음부터 국기게양과 국가연주를 반대하면서 단일기를 게양하고 아리랑을 연주하자고 주장한 반면, 대한축구협회는 국기게양과 국가연주를 주장하였다. 논쟁이 이어졌으나 합의도출에 실패하여 국제축구연맹(FIFA)이 내놓은 중재결정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중재결정은 남북(북남) 축구경기를 중국 상하이에서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상하이 홍커우 경기장에서는 국기를 게양하였고 국가가 연주되었으며, 경기는 득점 없이 무승부로 끝났다.

축구경기 개최지를 평양에서 상하이로 옮기는 국제축구연맹의 중재결정으로 결렬위기가 어렵사리 수습되기까지, 조선축구협회는 세 가지 난제를 풀어야 하였다.

첫째, 국제축구연맹 경기규정 제22조의 적용을 거부하는 난제이다. 조선축구협회는 국제축구연맹 역사상 처음으로 경기규정의 적용을 거부한 기록을 갖게 되었다. 경기규정 제22조는 경기기간 동안 경기장에 두 나라 국기를 게양하고, 선수단이 입장하면 두 나라 국가를 연주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둘째, 국기게양과 국가연주를 요구한 대한축구협회의 주장을 물리치는 난제이다. 남북(북남)관계에서 무조건 남측의 견해와 주장만을 대변하는 남측언론으로부터 일방적인 여론공세를 받으면서도 조선축구협회는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셋째, 자기 지역에서 경기를 벌이는 유리한 조건을 포기하고, 홍커우 축구경기장 사용료를 조선축구협회가 부담하는 손실이었다.

주목해야 할 문제는, 그러한 어려움이 앞을 가로막았는데도 조선축구협회가 왜 자기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제3국에서 남북(북남)경기를 진행할 때는 국기게양과 국가연주를 피할 수 없지만, 평양에서 남북(북남)경기를 진행할 때는 반드시 단일기를 게양하고 아리랑을 연주해야 한다는 것이 북측의 일관된 주장이다. 북측이 왜 그러한 주장을 관철하려 하는지를 이해하려면, 남북(북남)관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요구된다. 조선축구협회가 국기게양과 국가연주를 거부하고 단일기 게양과 아리랑 연주를 주장한 까닭은 두 갈래로 설명할 수 있다.

1) 국기게양과 국가연주는 정치활동이다. 운동경기 자체는 비정치적일 수 있지만, 운동경기에서 진행하는 국기게양과 국가연주는 명백한 정치활동이다. 평양에서 태극기와 공화국기('인공기'라는 표현은 오류이다)를 게양하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되는 남측 애국가와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으로 시작되는 북측 애국가(북측도 애국가라고 부른다)를 연주하는 것은 남북(북남)관계를 국가관계로 공식인정하는 정치활동이다.

그러나 북측은 절대로 남북(북남)관계를 국가관계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북측의 관점에서 보면, '남조선'은 나라가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 안에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 안에 나라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남조선'이라는 특수지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가 아닌 '남조선'이 나라의 수도인 평양에서, 다른 곳도 아닌 김일성 경기장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연주하는 것은 북측이 절대로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조선축구협회가 국기게양과 국가연주를 거부하였던 2월 26일, 평양을 찾아간 뉴욕 필하모닉 교향악단 공연장에서는 조미 두 나라 국기가 나란히 걸리고 두 나라 국가가 연주되었다. 조미관계는 국가관계이므로 국기게양과 국가연주가 당연하지만, 남북(북남)관계는 국가관계가 아니므로 국기게양과 국가연주가 금지되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관계에 적용되는 일반원칙이 남북(북남)관계에 적용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북측은 왜 남북(북남)관계를 국가관계로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남북(북남)관계를 국가관계로 전환하는 경우에 일어날 상상할 수 없는 파국을 예상하면 자명해진다. 만일 남북(북남)관계를 국가관계로 전환하면, 대한민국에서 '북한'이라고 부르는 특수지역이 분리독립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신생국이 출현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된 이후 60년 동안 이어져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사는 불법화될 것이다. 이것은 북측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다른 한편, 만일 남북(북남)관계를 국가관계로 전환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남조선'이라고 부르는 특수지역이 분리독립하여 대한민국이라는 신생국이 출현하게 된다. 이것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60년 동안 이어져온 대한민국 역사가 불법화되는 것이다. 남측이 이러한 사태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나라 안의 특수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가관계로 바꾸는 국가연합기구 창설방안이 실현될 수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남북(북남)관계가 국가관계가 아니라 나라 안의 특수관계라는 말은, 한(조선)반도에 두 나라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한 나라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유일합법정부를 각기 주장하는 두 개의 정치적 실체만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명백하게도, 나라의 분단이란 한 나라가 두 나라로 갈라진 것이 아니라, 나라 안에 유일합법정부를 각기 주장하는 두 개의 정치적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차 통일된 나라의 역사가들이 오늘 분단시대를 기록할 때, 과거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나라가 존재한 적이 있었다고 기록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한(조선)반도에 두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데도, 두 개의 국기를 게양하고 두 개의 국가를 연주하는 것은 위법행위이다. 조선축구협회는 그러한 정치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였으므로 위법행위를 저지르지 말자고 주장하였고, 대한축구협회는 국기게양과 국가연주가 위법적인지 모른 채 위법행위를 강행하자고 주장하였다. 2005년 8월 4일 전라북도 전주에서 진행된 제2차 동아시아 축구대회에서 남북(북남) 축구경기가 열렸을 때, 대한축구협회는 두 개의 국기를 게양하고 두 개의 국가를 연주하였는데, 그것은 남측의 최고법(헌법) 제3조와 제4조를 정면으로 거스른 위법행위였다.

2) 국기게양과 국가연주는 역사계승활동이다. 남북(북남)관계가 국가관계가 아니라 나라 안의 특수관계라는 말은, 한(조선)민족이 자기의 국가적 정체성을 아직 확립하지 못하였다는 뜻이다. 한(조선)민족이 자기의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문제는, 나라의 법통을 계승하는 문제이자, 나라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갖는 문제이다.

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고려와 태봉의 상호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궁예는 고구려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하면서 905년에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911년에 나라이름을 태봉으로 정하였다. 그런데 왕건은 918년에 태봉의 정권을 교체하여 고려를 세웠고, 고려는 936년에 한(조선)반도를 통일하였다. 나라의 통일위업을 완성함으로써 고려는 나라의 법통을 계승하고 민족사적 정통성을 가질 수 있었다.

고려와 태봉의 상호관계에서 나타난 것처럼, 나라의 법통을 계승하고 민족사적 정통성을 갖는 역사계승문제와 관련해서는 절충이나 타협이 불가능하다. 역사의 심판은 엄정하다. 남북(북남)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나라의 통일을 실현한 정치적 실체만이 나라의 법통을 계승하고 민족사적 정통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라의 통일을 반대한 정치적 실체가 태봉의 전철을 밟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다.

그렇다면 남북(북남)관계에 대한 역사적 심판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 기준은 남북(북남)관계가 국가관계임을 부정하고 나라의 불가분리성을 계승하는 유일국가원칙이다. 유일국가원칙이란 남측과 북측의 정치적 실체가 각각 대외적으로 다른 나라와 국가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서로에 대해서는 국가관계를 맺지 않는 대원칙이다.

주목하는 것은, 남북(북남)관계에서 유일국가원칙을 지키는 쪽이 북측이라는 점이다. 조선축구협회가 국기게양과 국가연주를 끝까지 거부한 것만 보아도 북측이 유일국가원칙을 얼마나 철저하게 고수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데, 북측은 유일국가원칙을 '조선은 하나다'라는 구호에 집약적으로 표현하였다. 1972년에 7.4 공동성명이 발표되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측 인민에게 제시한 그 구호는 남북(북남)관계가 국가관계임을 부정하고 나라의 불가분리성을 계승하는 유일국가원칙을 표현한다.

그에 반하여, 노태우 정권 이후 남측의 역대집권세력은 남북(북남)관계를 국가관계로 전환하여 국가연합기구를 창설하자는 주장을 내오고 유일국가원칙을 반대하여왔다.

국기게양과 국가연주에 관한 남북(북남)의 논쟁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남측언론의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행동이다. 남북(북남)관계를 보도할 때 언제나 편파적인 태도를 보이는 남측언론은, 조선축구협회가 "과거의 편협하고 경직된 사고에 집착하면서" 국기게양과 국가연주를 거부하는 억지를 부렸다고 비판함으로써 남북(북남)관계에 걸려있는 정치문제와 역사문제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

남측언론은 국기게양과 국가연주에 관한 논쟁에서만 무지한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그러하다. 남측언론은 평소에도 아무 생각 없이 북미관계'라는 말을 쓰는데, 친미적인 일부언론은 한 술 더 떠서 미북관계라는 해괴한 말도 만들어냈다.

그러나 북(조선)과 미국의 국가관계를 북미관계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다. 조미관계라고 해야 옳다. 한미관계는 남미관계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조미관계를 북미관계라고 부르는 것은 무지가 빚어낸 그릇된 말버릇이다. 남(한국)이나 북(조선)이 각각 제3국과 맺은 관계를 표현할 때는 한국이나 조선이라는 나라이름을 쓰는 것이 불가피하다. 남(한국)과 북(조선)이 각각 제3국과 맺는 관계는 국가관계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남북(북남)관계는 국가관계가 아니라 나라 안의 특수관계이므로, 남측은 한조관계라는 말을 쓸 수 없고 북측은 조한관계라는 말을 쓸 수 없다. 한북관계나 조남관계라는 말 역시 성립될 수 없다. 반드시 남북관계 또는 북남관계라는 말을 써야 한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서 그러한 원칙이 지켜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북측이 남북관계라 하지 않고 북남관계라 하는 것을 두고 이상하다고 느끼는데, 그것은 그 관계의 정치적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동서남북이라는 방위개념을 쓸 때는 남북이라고 써야 옳지만, 남(한국)과 북(조선)의 관계를 가리키는 정치개념을 쓸 때는 방위개념을 버리고, 두 정치적 실체를 가리키는 특수개념을 써야 한다. 따라서 남측에서는 남북관계라 하고, 북측에서는 북남관계라 하는 것이 옳다.

군사분계선은 국경선으로 바뀔 수 없다. 삼천리 강산에 존재하는 나라는, 군사분계선으로 갈라지지 않은 나라이며, 머지 않은 장래에 반드시 통일될 나라이다.

분단시대가 60년을 넘다보니 조상 대대로 물려온 이 땅에 그어진 군사분계선이 격폐상태로 굳어지는 바람에 마치 국경선처럼 보이는 착각이 일어나 나라의 불가분리성 계승과업이 흔들리고 있다. 이 강산에 통일정부를 세우는 날까지 남북(북남)관계에서 단일기와 아리랑을 지켜 가는 것은, 나라의 불가분리성을 계승하고 통일정부 수립을 촉진하는 임무 가운데 하나이다. (통일뉴스 2008년 3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