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계 평화협정, 어떻게 체결할 것인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당연한 말이지만, 한(조선)반도에서 비핵화는 곧 평화체제 수립이며, 한(조선)반도의 평화체제 수립은 평화협정 체결로 가능한 것이다. 그런 뜻을 생각하면, 비핵화강령은 곧 평화강령이라 말할 수 있다. 만일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위험을 제거하고 평화강령을 실현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언제가도 비핵화는 실현될 수 없을 것이고, 북(조선)은 계속 핵보유국으로 남게 될 것이며,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애써 유지해온 핵확산금지체제에는 붕괴의 파열구가 뚫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맥락을 다르게 표현하면, 미국이 한(조선)반도의 평화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북(조선)의 포괄적 제안에 합의하는 경우, 북(조선)은 주저 없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비핵국으로 복귀할 것이라는 말이 된다.

비핵화가 확정적인 것만큼, 평화실현도 확정적이다. 세상 사람들이 미국 편만 들어주는 편파적 언론보도에 눈을 팔고 있는 사이에, 현 정세는 어느덧 평화협정을 어떻게 체결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단계로까지 소리 없이 진전되었다. 비핵화를 추동하는 거대한 힘의 보이지 않는 작용은, 믿기 힘들 정도로 나라의 정세를 바꿔놓고 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가지이다. 평화협정을 어떻게 체결할 것인가 하는 체결의 방식과 경로, 그리고 평화협정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하는 협정의 정치적 내용이다. 이 두 문제는 한(조선)반도에서 공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방향과 속도를 좌우할 결정적인 문제이다.

평화협정은 어떤 방식과 절차로 체결될 수 있을까? 평화협정 체결이 일차방정식으로 한 번에 풀기 힘든 고난도 정치문제이므로, 단계적으로 체결될 것이 분명하다. 정치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방식과 경로를 예상하면 이렇다.

1) 한(조선)반도에서 평화체제를 세우는 첫 단계는 정전을 종전으로 전환하는 단계가 될 것이다. 종전이란 한국(조선)전쟁이 끝났음을 정치적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비핵화의 진전에 속도가 붙으면, 곧바로 종전선언을 발표하는 단계에 이를 것이다. 종전선언 발표는 사실상 사문화되어버린, 그리하여 한(조선)반도의 전쟁위험을 조금도 완화시켜주지 못하는 정전협정을 공식적으로 폐기하는 것이다. 정전협정이 사실상 사문화되었으므로, 그 협정을 폐기하더라도 전쟁위험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종전단계는, 10.4 선언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단계이다.

2007년 11월 29일 평양에서 발표된 '남북(북남)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북남) 국방장관-인민무력부장 회담 합의서' 제4조 2항은 "쌍방은 종전을 선언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군사적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이 조항은 북측의 요구로 합의서에 들어간 것이다. 북측이 종전에 대해서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제법상 당사자 원칙에 따르면, 정전협정 폐기권한을 행사하는 법적 주체는 당연히 정전협정을 체결하였던 당사자들이다. 2007년 10월 평양에서 채택한 10.4 선언에 북측의 요구로 들어간, "직접관련된 3자 정상(수뇌)들(남측이 주장한 4자도 병기되었음-옮긴이)이 한(조선)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한다는 합의에 따르면,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종전을 선언하는 법적 주체는 당연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 미합중국 조지 부쉬 대통령, 중화인민공화국 후진타오 주석으로 정해진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하였던 역사적인 장소에서 세 나라 정상(수뇌)이 종전선언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조선)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1950년 7월 14일 리승만은 대통령 자격으로 한국군 지휘권(나중에 작전통제권으로 개칭)을 당시 유엔군총사령관을 겸직한 미국군사령관에게 넘겨준 '대전협정'에 서명하였으므로 남(한국)은 국제법상 교전주체로 될 수 없었고, 따라서 정전회담과정에 교전주체로 참가하지 못하였고, 정전협정의 조인주체로도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남(한국)이 비록 교전주체도 아니고 정전협정 조인주체도 아니었으나 정전회담에 대표를 보냈던 것처럼, 한국(조선)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종전회담에도 대표를 참가시킬 수 있을 것이며, 판문점에서 종전선언을 발표하는 역사적인 자리에는 남측 대통령도 참석할 것이다. 1953년 이후 한(조선)민족에게 전쟁위험을 강요해왔던 전쟁체제는 종전선언으로 그렇게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2) 한(조선)반도에서 평화체제를 세우는 두 번째 단계는 전쟁체제를 허문 자리에 평화체제를 세우는 단계이다. 10.4 선언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단계이다. 평화체제는 평화회담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여야 세워질 수 있다. 판문점에서 세 나라 정상(수뇌)이 종전선언을 발표하는 역사적인 자리는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이 열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평화회담의 역사적 임무는, 두말할 나위 없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국제법상 당사자 원칙에 따라서, 한(조선)반도에서 무력을 대치한 당사자들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권한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현 시기 한(조선)반도에서 무력을 대치한 당사자는 남측(한국군), 북측(조선인민군), 미국(주한미국군)이다. 한(조선)반도에는 중국인민해방군이 없으므로 중화인민공화국은 무력을 대치한 당사자가 아니며, 따라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주목할 것은, 남, 북, 미 3자가 체결하는 평화합의가 조약(treaty)이 아니라 잠정협정(modus vivendi)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2008년 1월 26일 '로동신문' 논평기사는 "지금이야말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여야 할 때"라고 전제하고, 북측이 지금까지 3백 수십 차에 걸쳐 각종 평화실현방안을 내놓았으나 미국이 모두 거부하였음을 상기시키면서, "완전한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정전협정을 대신하는 잠정협정을 체결할 데 대한 제안도 미국이 거부하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평화합의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강화조약으로 체결하지 않고 잠정협정으로 체결하는 까닭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동시에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가관계가 아닌 남북(북남)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 3자 잠정협정 체결은 조미관계 정상화와 동반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조미관계 정상화란, 북(조선)이 비핵화강령에 따라 자국의 핵무기를 자진하여 폐기하고, 미국은 북(조선)의 폐기행동에 상응하여 대북적대정책을 폐기하는 행동을 취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두 나라의 비정상적인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것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는 국교수립으로 결말을 짓게 될 것이다. 조미 두 나라가 핵무기와 적대정책을 각각 폐기하고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대한 변화는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것이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국군 철군은 필연적이다. 주한미국군이 남아있는 조건에서는 비핵화도, 평화협정 체결도, 조미관계 정상화도 모두 불가능하기에 그러하다. 주한미국군이 주둔하기 때문에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할 수밖에 없었고, 정전체제가 유지될 수밖에 없었고, 조미 두 나라가 적대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 신속기동군으로 재편된 주한미국군은 미국 대통령이 철군명령만 내리면 언제라도 급속히 철군할 수 있지만, 평화체제 수립과정에서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것은 미국군기지를 내버리고 훌쩍 떠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에 상응하여 단계적으로 철군하는 것이다.

둘째, 철군과정에서 한미관계의 근본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철군과정에서 주한미국군사령부와 주한유엔군사령부는 해체되고, 주한미국군사령관은 한국군 합참의장에게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반환할 것이다. 전작권 반환과 철군은 한미동맹관계가 적어도 군사부문에서 무력화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나서는 문제는 남측 정부가 그러한 한미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에게 위협적인 안보위기로 인식할 것이라는 점이다. 남측 정부는 수립 이후 한미동맹관계에 전적으로 의존해왔으므로, 주한미국군이 철군하여 한미동맹관계가 무력화되는 경우, 안보위기에 대처한다는 구실로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 특히 주한미국군이 철군하여 주한미국군사령부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된 남측 군부가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이를테면, 미국의 전미아시아연구소(National Bureau of Asian Research)가 2008년 2월에 내놓은 정책보고서 '미한동맹 이후의 세계: '대안적 미래'를 생각한다(A World without the U.S.-ROK Alliance: Thinking about 'Alternative Futures')'에서 주한미국군이 철군하는 경우 남측이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라고 지적한 것은 억측이 아니다. 실제로, 1970년대 말에 카터 정부가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려고 하였을 때, 철군을 안보위기로 인식한 박정희 정부가 미국의 감시망을 피해 핵무기 개발사업을 추진하다가 미국의 저지공작에 걸려 중단한 사례가 있다. 그것만이 아니라, 2008년 2월에 언론이 폭로한 바에 따르면, 전두환 정부는 1982년 4-5월에, 그리고 김대중 정부는 2000년 1-2월에 각각 미국의 감시망을 피해 핵물질 추출실험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과거가 있는 남측 정부가 주한미국군이 철군하는 경우 핵무기 개발사업을 재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만일 조미 두 나라가 남(한국)을 배제한 채 양자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주한미국군을 철군한다면, 남측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다. 남측이 핵무기 개발사업을 재개하는 경우, 어렵사리 실현한 비핵화강령과 평화강령이 모두 파탄되는 대파국이 일어날 것이다.

남측과 북측이 평화협정을 맺으면 남측 정부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는 있으나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킬 수 없으며, 북(조선)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으면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킬 수는 있으나 남측 정부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주한미국군 철군이 남측 정부의 핵무기 개발사업 재개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도는, 남, 북, 미 3자가 잠정협정을 맺음으로써 주한미국군도 철군시키고 남측 정부의 핵무기 개발도 막는 것이다. 3) 한(조선)반도에서 공고한 평화체제를 세우는 세 번째 단계이자 마지막 단계는, 3자 잠정협정을 완전한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단계이다. 완전한 평화협정은 주한미국군이 철군한 뒤에 체결될 것이므로, 무력을 대치한 당사자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당사자 원칙에 따라서 남측과 북측이 평화체제 수립을 합의하고 미국과 중국이 그 체제의 유지를 보장하는 2+2 방식으로 체결될 것이다.

남측과 북측이 체결하는 평화협정의 내용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가관계가 아니라 민족내부의 특수관계를 반영하면서 무력불사용 원칙,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 그리고 재래식 군비상호감축을 합의하는 것으로 될 것이다. 또한 미국과 중국은 한(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실현하여 주한미국군 철군 이후 일본이 핵무기 개발에 나설 가능성을 제거함으로써 한(조선)반도 평화체제의 유지를 보장하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설명한 내용은, 1997년 3월과 4월 두 차례 워싱턴을 방문한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당시 직책)이 미국 정부에 제안한 3단계 평화협정 체결방안과 일맥상통한 것이다. 당시 북(조선)이 미국 정부에게 제안한 3단계 평화협정 체결방안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아서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으나, 정치적 맥락을 살펴보면 위와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나라를 세운 뒤로 수수천년 주변강국의 침략전쟁과 무력점령에 맞서 싸워온 한(조선)민족은 반만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평화강령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으므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통일뉴스 2008년 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