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가 '내 고향 갈색 잔디'를 부른 대통령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아메리카합중국의 도읍지에서 해마다 한 차례씩 흥미롭고 유별난 연례만찬(annual dinner)을 벌이는 사교모임이 있다. 미국 여론을 쥐락펴락하는 언론계 대표자 65명이 참여한 그릿아이언 클럽(Gridiron Club)이다. 그 사교모임은 1885년에 결성되었는데, 해마다 이맘때쯤 행정부 고위관리들, 대법관, 연방의회 상하양원 지도자들, 주지사들을 비롯하여 지도급 인사 약 600명을 초청하여 성대한 만찬을 벌이는 것으로 이름이 났다. 그 연례만찬이 흥미롭고 유별난 까닭은, 당파를 초월하여 정치인들, 고위관리들, 언론인들이 한데 어울려 노래와 춤을 즐기며 웃고 떠드는 전통을 123년 동안이나 이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2008년 3월 8일에 열린 그릿아이언 클럽 연례만찬에서 미국 제43대 대통령 부쉬가 뜻밖에도 노래공연을 펼쳤다. 그는 '내 고향 갈색 잔디(Brown Brown Grass of Home)'라는 제목의 노래 한 곡조를 불러 참석자들을 크게 웃겼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부쉬가 '깜짝쑈' 같은 노래공연을 마치자 참석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고 한다.

부쉬가 부른 노래의 원곡은 영국인 대중가수 탐 존스가 1966년에 발표하여 인기절정에 올랐던 '내 고향 푸른 잔디(Green Green Grass of Home)'이다. 부쉬는 그 원곡의 제목과 노랫말을 재치 있게 바꾸어 개사곡을 불렀다. 부쉬가 태어난 해가 1946년이니, 스무 살에 나던 해에 미국의 여느 대학생들처럼 그도 탐 존스가 부른 노래 '내 고향 푸른 잔디'를 흥얼흥얼 따라 불렀을 것이다. 탐 존스가 부른 노래 '내 고향 푸른 잔디'는, 처형을 앞둔 어느 사형수가 마지막으로 다시 가고픈 고향마을을 그리는 구슬픈 망향가이다.

부쉬가 돌아가고 싶어 망향가를 부르기까지 한 고향집은 크로우포드 목장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그의 고향집은 미국 텍사스주 맥레넌 카운티 동쪽에 있는 웨이코(Waco)시의 교외지역 크로우포드(Crawford)에 자리잡은 6.4 평방km의 프레어리 채플 목장(Prairie Chapel Ranch)이다. 서민들이 상상하는 목장은 소똥냄새가 코를 찌르는 방목장이지만, 부쉬가 소유한 목장은 북미대륙 남서부의 풍치 좋은 대평원에 자리잡은 거대한 현대식 별장지대이다. 그 별장지대에는 일곱 개 협곡이 지나가고, 협곡 아래 바스크강이 유유히 흐른다. 부쉬는 텍사스주 주지사로 있었던 1999년에 130만 달러를 주고 그 별장지대를 사들여 저택을 개조하고 경내에 커다란 인공호수까지 파놓았다. 부쉬는 백악관을 찾아간 푸틴, 장쩌민, 벨라루스코니, 빈센떼 폭스, 메르켈 같은 국가수반들을 그곳에 초대하여 별장외교를 벌이기도 하였다.

2001년 1월 20일에 대통령에 취임하여 4년 뒤에 재선되었고, 이제는 2009년 1월에 퇴임을 앞두고 있는 부쉬는 수많은 대중가요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사형수의 망향가를 선곡하였을까? 내외언론은 부쉬가 때이른 작별가를 불러 사람들을 크게 웃겼다고 보도하였지만, 내가 보기에 그가 부른 노래는 사람을 웃긴 희극적인 작별가가 아니라 대통령의 심경이 비낀 비극적인 망향가이다.

1960년대 후반 인기절정에 이른 대중가요 '내 고향 푸른 잔디'를 부른 탐 존스가 고향마을의 푸른 잔디와 떡갈나무 잎새를 그리다가 문득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잿빛 감방벽에 갇혀있더라는 어느 사형수의 고뇌를 슬피 노래했다면, 부쉬는 크로우포드 목장의 갈색 잔디에 뛰노는 애완견 바니를 그리다가 문득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도 복잡한 정세 속에 갇혀있더라는 대통령의 복잡한 심경을 노랫말로 표현하였다.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였던 기간은 그에게 편안한 백악관 생활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내외정세는 부쉬를 정치적 곤경에 빠뜨렸고, 대제국의 수장은 걱정과 근심에 젖어 세월을 보내야 하였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부쉬는 연례만찬장에 앉아있는 딕 체니와 콘돌리자 라이스 같은 측근들에게 눈길을 보내면서, 약간 틀린 음정으로 망향가를 불렀다고 한다. 그가 바꿔 부른 노랫말 일부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옮기면 아래와 같다.

For there's Condi and Dick, my old compadre
Talking to me about some oil-rich Saudi

But soon I'll touch the brown brown grass of home

(내 오랜 단짝동무 칸디와 딕은 내게
사우디에 석유가 넘쳐난다 말하지만
나는야 내 고향 갈색 잔디 어루만질 거라네)

That old White House is behind me
I am once again carefree

Don't have to worry 'bout a crisis in Pyongyang

Down the lane I look

Dick Cheney is strolling with documents he'd been withholding

It's good to touch the brown brown grass of home

(저 오래된 백악관 뒤에 두고
근심거리 모두 날려버릴 거야
평양의 위기 따위 걱정하지 않을 거야
길 아래쪽 굽어보니
서류 들고 거니는 딕 체니가 보이는군

내 고향 갈색 잔디 어루만져 좋으리)

부쉬의 노랫가락을 들은 참석자들은 모두 깔깔대고 웃어버렸지만, 그 노랫말에서는 그가 대제국의 수장으로서 지닌 솔직한 심경이 엿보인다. 그의 노랫말에는 '사우디의 석유'와 '평양의 위기'라는 두 종류의 정치적 표현이 들어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사우디의 석유'는 중동의 석유자원을 뜻하며, '평양의 위기'는 북(조선)의 핵문제를 뜻한다.

세상이 알고 있듯이, 부쉬정부는 이라크의 석유자원을 국유화한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미국의 석유독점자본을 이라크에 들어가게 하려고, 2003년 3월 20일 이라크침략전쟁의 불을 당겼다. 그러나 부쉬가 속전속결로 몇 달 안에 끝나겠지 하고 낙관하였던 그 전쟁은 그의 낙관적 전망을 뒤엎으면서 백악관을 전쟁수렁에 빠뜨리고 말았다. 이라크저항세력은 폭탄테러공격으로 끈질기게 미국군을 괴롭혔고,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자 중동정세의 주도권은 이란에게 넘어갔다.

2007년 11월 13일 미국 연방의회 합동경제위원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이 이라크전쟁에서 입은 경제적 손실은 1조3천억 달러이며,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입은 손실은 3천억 달러이다. 부쉬정부가 15만9천 명이나 되는 대병력을 들이밀고, 매달 16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전비를 쏟아 붓는데도. 2008년 3월 11일까지 이라크전쟁에서 죽은 미국군 전사자는 3천982명이며, 미국군 부상자는 7만 명에 이른다. 2007년 한 해 동안 목숨을 잃은 이라크 민간인은 2만4천 명으로 추산된다. 명백하게도, 부쉬는 전쟁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부쉬는 '바그다드의 위기'를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뜻밖에도 그의 노랫말에서는 '평양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그가 이라크전쟁보다 더 큰 정치적 위기를 북(조선)의 핵문제에서 느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부쉬가 말한 '평양의 위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쉬를 핵수렁에 빠뜨린 위기이다. 부쉬가 혼쭐이 난 북(조선)의 핵문제는, 대제국의 위신과 자존심이 구겨질 것을 염려한 백악관이 도저히 밖으로 드러낼 수는 없어서 내내 덮어두고 있지만, 부쉬의 재임기간을 곤경의 연속으로 만들어놓은 최대의 위기요인으로 되었다.

부쉬가 핵수렁에 빠져 혼쭐이 났다는 말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그런 표현을 쓰는 까닭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극도의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던 부쉬의 충동적 행동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개심과 증오심의 강도는 언제나 위기와 곤경의 심도에 정비례하는 법이다.

부쉬는 적대국 수반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비난과 욕설을 공개적으로 내뱉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진기한 기록을 갖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압제자, '폭군', '피그미', '버릇없는 아이' 따위의 비난과 욕설을 서슴지 않은 부쉬의 충동적 행동은 자신을 '평양의 위기'에 빠뜨린 적대자에게 미칠 것 같은 적개심을 토해낸 것이었다. 미국에게 정면도전을 불사한 강경한 반미성향의 정치지도자들인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베네주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 그리고 꾸바의 피델 까스뜨로 전 의장에게 대해서 부쉬는 그처럼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부쉬가 적개심을 드러내 보인 유일한 강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다. 2008년 2월 28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부쉬는 자기의 재임기간에 "비록 그들과 의견을 같이하지는 않는다 해도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개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말하면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서는 개인적 유대관계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대결적 조미관계에서 무조건 미국 편만 들어주는 내외언론들은 미국 대통령이 왜 그토록 적개심을 느꼈는지 설명하지 못하지만, 조미대결경험을 돌아보면 그 까닭이 뚜렷이 보인다. 부쉬는 북(조선)이 미국의 압박공세에 굴복하리라고 자신만만하게 여겼으나, 미사일 발사훈련이나 지하핵실험 실시에서 보여주었듯이, 북(조선)은 미국의 압박공세를 압도하는 초강경한 역습으로 치고 나오면서 되레 미국에게 정치적 굴복을 강요하였던 것이다. 2002년 1월 국정연설에서 북(조선)을 '악의 축'으로 낙인찍는 비타협적 공격심리를 드러내면서 북(조선)에게서 반드시 정치적 굴복을 받아내겠노라고 미국 인민에게 공약하였던 부쉬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다섯 해 동안 동방의 '악의 축'과 격렬하게 맞붙은 정치대결에서 대제국에게는 더 이상 승산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비난과 욕설을 멈추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핵문제 해결을 간청하는 친서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파놓은 핵수렁은 너무도 깊어서 심약한 부쉬로서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며, 미국은 건국이래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승산 없는 정치대결에 얽매여 곤경을 겪고 있다. 고립된 나라, 가난한 나라라고 얕잡아 본 북(조선)과 맞붙은 정치대결에서 번번이 전술적 패배의 쓴잔을 맛보며 핵수렁에 빠져든 부쉬는 자존심이 짓밟힌 울분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드러낸 적개심으로 보상받으려 하였다. 부쉬의 노랫말에 나오는 '평양의 위기'는, 세계를 지배하는 대제국이 동방의 작은 사회주의나라와 맞붙은 격렬한 정치대결에서 뒤로 밀리면서 빠져버린 핵수렁이며, 동시에 대제국의 수장인 부쉬 자신이 겪은 정치적 위기인 것이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부쉬가 고향의 갈색 잔디를 어루만질 날은 멀지 않았다. 2009년 1월이 오면, 부쉬는 재임기간 여덟 해 내내 자신을 괴롭혀온 북(조선)의 핵수렁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이 될 것이다. 골치 아팠던 백악관 생활을 마감한 그는 돌아가고 싶어서 망향가까지 불렀던 크로우포드 목장의 한적한 고향집에서 애완견 바니를 쓰다듬으며 밋밋하기 그지없는 여생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파놓은 핵수렁은 부쉬의 퇴임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2008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선출될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부쉬 대신에 핵수렁에 빠져 얼마나 더 혼쭐이 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메리카합중국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이 맞붙은 세기의 정치대결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은 과연 핵수렁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까? 차기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기 직전, 그릿아이언 클럽 연례만찬에서 어떤 노래를 부를 것인가? (통일뉴스 2008년 3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