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의 뒷면은 어떻게 생겼을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달은 자전주기와 공전주기가 같은 위성이어서 지구에서는 달의 뒷면을 볼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이 상상력으로 계수나무와 옥토끼를 그려놓았던 달표면은 달의 앞면이다.

달의 뒷면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 궁금증은 1959년 10월 4일에 풀렸다. 소련이 쏘아올린 우주선 루릭 3호가 달을 한바퀴 돌면서 뒷면을 촬영하였던 것이다.

달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물체에는 앞면과 뒷면이 있는데, 사람들의 눈에 쉽게 들어오는 것은 언제나 물체의 앞면이다. 그 뒷면까지 보려면 물체를 반바퀴 돌려놓거나, 물체의 뒤쪽으로 돌아 가야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고정된 시각은 언제나 물체의 앞면만 보고 있다. 더 그릇된 것은, 물체의 뒷면을 못 보았으면서도 그 물체를 총체적으로 본 것처럼 착각하는 일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물체의 앞면만 바라보는 것은 반쪽짜리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앞면과 뒷면을 모두 보아야 총체적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뒤바꾸고 있는 가장 커다란 요인인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할까? 앞면만 바라보는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쪽짜리 인식의 한계가 가로막혀 있는 것은 아닐까? 한(조선)반도의 비핵화와 관련하여 무지, 오해, 편견이 들쭉날쭉 생겨나는 까닭은, 비핵화의 앞면만 바라보는 반쪽짜리 인식에 묶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한(조선)반도 비핵화의 앞면은 핵보유국인 북(조선)을 비핵화하는 일련의 핵포기 과정을 보여준다. 북(조선)의 비핵화는 세 단계로 실현되는 것이다. 제1단계는 북(조선)이 운영해온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것이고, 제2단계는 북(조선)이 생산한 핵물질을 폐기하는 것이고, 제3단계는 북(조선)이 보유한 핵무기를 해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핵화의 앞면은 핵시설 불능화, 핵물질 폐기, 핵무기 해체로 이어지는 3단계의 핵포기 과정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에도 평안북도 영변의 핵시설에서는 불능화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영변핵단지의 3대 주요시설인 재처리시설, 핵연료 가공시설, 흑연감속로를 각각 불능화하는 방대한 작업이 그것이다. 2007년 11월부터 북(조선)의 핵기술자 400명이 흑연감속로에 장착되어 있던 연료봉 8천여 개를 점차적으로 제거하는 중이다. 2008년 2월 22일 미국의 3대 공중파 텔레비전방송인 에이비씨(ABC)가, 그리고 2월 25일에는 미국의 뉴스전문 텔레비전방송 씨엔엔(CNN)이 각각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작업을 현장에서 취재하여 방영하였다. 얼마 전, 영변 핵시설을 둘러보았던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동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조엘 위트가 "규모가 크고 내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되어 있다"고 묘사한 영변 핵시설은, 그 핵시설을 건설하고 운영해온 북(조선) 핵과학자들의 손으로 하나씩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첩보위성이 꿰뚫어보지 못한 까닭에 오랜 세월 비밀에 쌓여있었던 영변 핵시설을 이제 세상에 공개하고, 점차적으로 불능화하는 북(조선)의 의무이행은, 앞으로 핵무기를 해체하는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에까지 이어질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예상하기 힘든, 참으로 엄청난 변화가 비핵화라는 이름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북(조선)의 대미공세에 주눅이 들어 소심증에 빠진 부쉬정부는 북(조선)이 과연 핵무기까지 해체할까 의심하고 있지만,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북(조선)이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주목하는 것은, 북(조선)이 세 단계에 걸쳐 밀고 나가기 시작한 핵포기 과정이 한(조선)반도 비핵화의 앞면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부쉬정부의 일방적 선전공세에 휘말린 사람들은 북(조선)의 3단계 핵포기가 한(조선)반도의 비핵화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그러한 생각은 앞면만 바라보는 반쪽짜리 인식이다.

한(조선)반도 비핵화에는 앞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뒷면도 있으며, 사실상 가장 중요한 정세변화는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비핵화의 뒷면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조선)반도 비핵화의 뒷면을 바라보면, 미국이 자기 의무를 이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눈에 들어온다. 따라서 비핵화를 바라보는 총체적 인식은, 북(조선)이 세 단계에 걸쳐 수행하는 핵포기와 더불어,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서 미국이 수행해야 할 의무이행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북(조선)의 핵포기 의무이행에 상응하여 미국이 수행해야 할 의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미국이 북(조선)에 대한 적대정책을 단계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다. 북(조선)은 자국에 대한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를 조미관계 정상화라고 부른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포기의무는 북(조선)의 핵포기 의무에 상응하는 것이므로, 세 단계에 걸쳐서 이행되는 것이 당연하다. 북(조선)의 3단계 핵포기가 비핵화의 앞면이라면, 미국의 3단계 적대정책 포기는 비핵화의 뒷면이다.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 또는 조미관계 정상화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하면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평화협정 체결, 조미국교 수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논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는 미국의 경제제재조치가 중지되는 경제적 변화와 함께 조미 두 나라가 비정상적인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맺는 관계정상화의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이 북(조선)에게 반세기 이상 가해온 경제제재조치를 중지하면, 북(조선)의 경제는 발전동력을 하나 더 갖게 된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경제제재조치가 중지되는 경우, 그 조치에 묶여있었던 남북(북남) 경제협력사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남북(북남) 경제협력의 비약적 발전이란, 통일지향세력에게는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경제적 기초를 마련하는 기회로 되지만, 반통일세력은 북측의 사회주의계획경제를 자본주의시장경제로 변질시키려는 기회로 삼을 것이다. 남북(북남) 경제협력에서 드러나는 그러한 양면성 가운데서 어느 쪽이 실현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통일지향세력과 반통일세력 사이에 조성된 세력관계에서 그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를 단행하여 경제제재조치가 중지되는 경우, 남북(북남) 경제협력에서 가장 중대한 사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북측의 유전개발사업을 남북(북남)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세상에는 자세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석유 이외의 새로운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기까지 남북(북남)이 오래도록 쓸 수 있는 막대한 원유가 북측에 매장되어 있다. 우리 나라가 통일되면, 동아시아 최대의 산유국으로 급부상하면서 동아시아 정세를 뒤바꾸어놓게 될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논한다.

어느 나라든지 테러지원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는 없으므로, 미국이 북(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면 먼저 테러지원국 지정부터 해제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는 평화협정 체결의 선결조건으로 된다. 미국이 북(조선)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지 않는 경우, 곧바로 한(조선)반도 평회회담이 열리게 될 것이다.

둘째, 한(조선)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문제가 간단하지 않으므로,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은 단계적으로 수위를 높여나가면서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먼저 개최될 평화회담은 10.4 평양선언에서 언급한 것처럼,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수뇌)들이 한(조선)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종전회담이 될 것이다. 종전회담은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준비회담이다. 종전회담이 열릴 장소는 판문점이 유력하다.

종전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된 다음에는, 10.4 평양선언에서 언급한 것처럼,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평화회담이 열리게 될 것이다. 평화회담 개최는, 북(조선)이 생산한 핵물질을 폐기하는 비핵화 제2단계에 들어서는 것을 뜻한다.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회담은, 오래 전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바람에, 그리고 북측과 중국측이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철수하고, 북측이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함으로써 사실상 사문화되어 버린 정전협정을 새로운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한 고위급 정치회담이다.

그 정치회담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한(조선)반도에서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 조미 두 나라의 고위외교관리들이 평양과 워싱턴을 오가면서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기 위한 정치일정을 급진전시킬 것이 분명하다. 관계정상화는 급물살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

평화협정 체결이 일으킬 변화는 조미 관계정상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변화는 주한미국군 철군을 촉발시킬 것이다. 어떤 사람은 평화협정이 체결되어도 미국은 절대로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그것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정세의 변화방향을 잘못 짚은 것이다.

한(조선)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이전에, 그리고 조미 관계정상화가 실현되기 이전에는 미국이 자기 마음대로 주한미국군 문제를 결정할 수 있지만, 한(조선)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조미관계정상화가 실현되는 것은, 미국이 주한미국군 문제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났음을 뜻한다.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 주한미국군을 철군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주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는 북(조선)과 미국 사이에서 진행될 고위급 정치회담에서 결정될 것이다.

북측이 핵포기를 단행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고,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실현하는 근본목적은 주한미국군 철군이다. 만일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킬 수 없게 된다면, 북측은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측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비핵화의 최종목표가 주한미국군 철군이라는 점이 돋보인다. 북측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막대한 자금을 들여 핵무기를 개발, 보유한 까닭은, 핵보유국으로 되어야 미국과 대등한 지위를 갖고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키기 위한 조미정치회담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북측이 보유한 핵무기는 주한미국군 철군용 핵무기이다.

주목하는 것은, 미국이 북측의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할 수밖에 없으며, 북측은 비핵화의 완결과 주한미국군의 완전철군을 서로 떼어놓을 수 없게 결부시켜놓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기 위해서 북측의 비핵화를 중단할 수 없게 되었고, 북측 역시 비핵화를 중단할 수 없게 되었다. 비핵화의 불가역성은 주한미국군 철군의 불가피성과 일치한다.

한(조선)반도에서 비핵화는 10년 이상 질질 시간을 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핵화를 실현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아무리 길게 잡는다 해도 다섯 해 정도일 것이다. 비핵화속도가 빨라지면 철군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차기 정부가 적어도 임기 안에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한(조선)반도의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 대통령이 될 것이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70년 가까이 한(조선)반도에 장기주둔해온 외국군을 정치회담으로 철군시킨 전략가가 될 것이다. (통일뉴스 2008년 3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