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화된 세계금융문명과 한국의 진보정치운동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전자화된 금융문명과 새로운 유형의 시장독재
2. 시장독재에 저항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정치운동
     2-1) 진보정치운동은 시장독재 이후의 사회정치적 대안을 제시한다
     2-2) 진보정치운동은 국제진보정치기구 창설을 요구한다
     2-3) 한국 진보정치운동의 두 가지 구성부분
             2-3)-(1) 3자 정치연합
             2-3)-(2) 국제민주노동운동과의 정치적 연대

1. 전자화된 금융문명과 새로운 유형의 시장독재

미국 국방부가 1958년에 산하 연구기관으로 설립한 고등연구기획국(DARPA)이 인터넷 기반기술을 개발한 때는 1967년이었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 기술이 장차 인류의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 인류는 새로운 문명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터넷이 다종다양한 전자공학기술과 결합하여 인류의 생활을 바꿔놓은 것이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컴퓨터를 처음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이래, 미국은 전세계를 전자통신망으로 연결한 인터넷의 정보소통체계를 장악하였다. 미국의 금융권력과 금융자본은 처음부터 인터넷의 무한정한 잠재력에 눈독을 들였다. 금융권력이란 금융자본과 결탁한 지배권력을 뜻하며, 금융자본이란 산업자본과 은행자본을 통합함으로써 자본주의시장을 지배하는 최강의 자본을 뜻한다.

미국의 금융자본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여 무한정하게 발달하는 전자통신기술과 결합하여 세계시장에 대한 금융적 지배를 실현하였고, 미국의 금융권력은 시장자유주의와 결합하여 신자유주의시장독재를 폭력적으로 실현하였다. 금융자본과 지배권력의 단순한 유착이 아니라, 신자유주의금융권력과 전자화된 금융자본이 결합하여 ‘문명’을 건설한 것이다. 그것을 전자화된 금융문명이라 부를 수 있다.

전자화된 금융문명의 특징은 ‘상호접속(interconnection)’이다. 상호접속이란 자본의 유동성과 생활의 유동성을 세계적 범위에서 일치시켰다는 뜻이다. 자본의 힘이 인터넷과 휴대전화 같은 세계전자통신망을 타고 흐르며 인류의 일상생활을 통제하고, 사회적 관계를 지배하며, 마음 속의 은밀한 심리회로까지 엿보고 조작하고, 심지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복제해주는, 숨막힐 정도로 기괴한 신자유주의시장독재, 바로 이것이 21세기에 만나는 전자화된 금융문명의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쓰는 시장경제(market economy)라는 개념 대신에 시장독재(market dictatorship)라는 개념을 이 글에서 쓰는 까닭은, 소수 자본가들이 시장을 배타적으로 장악함으로써 절대다수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사회계급적으로 지배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 시기에 시장독재와 결합한 것은 자유주의였고, 오늘날 시장독재와 결합한 것은 신자유주의이다. 신자유주의시장독재는 소수 자본가들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가장 혹독하게, 그리고 가장 넓은 범위에서 착취, 수탈, 지배하는 시장독재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말엽 영국에서 증기기관이 발명되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일국적 범위에서 산업자본주의시장독재를 실현하였던 것처럼, 20세기에 미국에서 인터넷이 발명되자 ‘전자통신혁명’이 일어나면서 세계적 범위에서 신자유주의시장독재를 실현하였다. 현 시기 제국주의세계체제는 도시화된 산업자본주의시장독재를 넘어, 전자화된 새로운 유형의 신자유주의시장독재에 의해 완성되었다. 신자유주의시장독재가 추구하는 세계화란 생산노동 착취의 세계화이자 자원독점의 세계화이다.

신자유주의시장독재의 중심은 신자유주의금융권력이 장악하였다. 신자유주의시장독재는 세계금융시장을 단일시장으로 통합한 여세를 몰아 세계상품시장도 단일시장으로 통합하는 중이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은 세계적 범위에서 진행되는 금융시장 및 상품시장의 통합촉진장치들이다.

전자화된 금융문명이 신자유주의시장독재를 실현하는 조건에서, 자본주의생산력이 끊임없이 발전하는 것은 투자와 신용이 끝없이 팽창하는 것이다. 투자와 신용이 팽창하면서 세계금융시장에는 천문학적인 금융자본을 빨아들인 ‘초대형 거품(super bubble)’이 형성되었다. 이를테면, 전세계 은행자산은 63조5천억달러, 투자펀드는 21조달러, 연기금은 17조9천억달러, 보험자산은 16조달러, 국부펀드는 3조달러, 사모펀드는 2조달러, 헤지펀드는 1조4천억달러이다.

경기순환론자들은 시장이 팽창하면 수축이 찾아오고 수축이 일정기간 진행되면 다시 팽창하기 시작한다는 주기순환론을 말하지만, 그것은 시장의 운동에 내재된 자기파멸적 모순을 은폐한 기만선전이다. 자유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시장의 팽창운동과 수축운동을 주기적으로 순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유시장이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면서 통제불능의 위기를 거쳐 차츰 파국적 붕괴로 다가서는 것이다.

시장의 팽창운동이 상대적으로 장기화되거나 시장 수축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해지자 시장예찬론자들은 ‘자유시장은 영원하다’는 영구번영설까지 들고 나왔지만, 그것은 ‘초대형 거품’을 빨아들이는 시장의 운동이 차츰 파국적 붕괴로 다가서고 있음을 은폐한 신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자본의 과잉유동을 감독하고 조절하여, 공황에 빠질 위험을 원천적으로 제거할 능력은 자유시장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2007년부터 미국 금융시장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급격한 수축운동은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에 시장 전반을 파산위기에 몰아넣었다. 2007년은 미국에서 자본의 과잉유동이 역사상 최초의 금융공황을 일으킨 1907년으로부터 100년이 되는 해였다.

미국 금융시장의 파산에 따라 신자유주의세계금융시장에 닥쳐온 붕괴위기는 시장경제의 경기순환이라는 허구적 관념을 허물었고, 신자유주의의 파국적 종말을 예고하였다. 금융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스스로 자유시장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 것이다.

2007년부터 미국이 겪고 있는 금융시장의 파산은 주택대출시장에서 멈추지 않고, 불과 1년만에 보험시장과 증권시장으로 빠르게 옮겨가더니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을 초토화하였다. 세계금융시장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월가는 투자은행의 공동묘지로 변하였다.

투자은행이 파산되면 금융시장 전반이 신용경색이라는 위기에 휘말려 상업은행(commercial bank)도 치명상을 입는다. 상업은행이 문을 닫는 날에는, 모든 기업과 공장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미증유의 대파국이 일어날 것이다. 2007년부터 미국에서 자본의 과잉유동으로 주택대출시장의 부실대출이 극대화되어 결국 주택소유자들의 대출상환금 집단체납사태가 일어났고, 그에 따라 금융기관이 연쇄파산한 것은 자본의 과잉유동→주택소유자 평균소득 감소→주택대출시장 붕괴→신용시장 붕괴→세계금융시장 파산→세계대공황으로 이어질 대파국을 예고하였다.

자유시장의 붕괴위기는 이번에 처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자유시장경제는 여러 차례 붕괴위기를 겪으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런데도 자유시장경제가 사멸하지 않고 굴곡이 심한 성장기조를 유지해온 까닭은, 시장독재가 위기관리정책을 가동하였기 때문이다. 시장독재의 위기관리정책이란 민생보장을 위해 지출해야 할 정부재정지출을 축소시키고, 그 대신 파산위기에 빠진 자본을 회생시키기 위해 정부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금융구제계획(financial rescue plan)이다.

그러나 금융구제계획은 두 가지 실패요인을 안고 있다.

1-1) 자본회생을 위한 시장독재의 재정지출증대는 극소수 대자본가들을 일차적 수혜자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도시중산층을 이차적으로 수혜자로 만들어주었지만, 통화팽창을 촉진함으로써 물가를 가파르게 끌어올리고 말았다.

물가급등이 실질임금을 떨어뜨리면서 민생경제를 위협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이것은 대자본가들과 도시중산층을 위협하던 파산위기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로 떠넘겨지면서 민생경제를 파탄위기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시장독재의 위기관리는 민생경제의 파탄요인이다.

민생경제의 파탄은 빈곤율로 나타난다. 한국 인구 가운데 최저생계비 이하의 생활을 하는 빈곤인구는 2006년 현재 536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1.1%이다. 최저생계비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자의적으로 정하는 것이므로, 실제 빈곤인구비율은 11.1%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2008년에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7.8%까지 치솟았는데, 보건복지가족부가 8월에 발표한 4인 가구 최저생계비 인상율은 4.8%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만 보더라도 정부기관이 내놓는 빈곤인구비율이 크게 축소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나마,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올해 빈곤인구 가운데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받는 인구는 154만명으로 3.2%밖에 되지 않는다. 한편, 미국 인구조사국이 발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빈곤인구는 해마다 늘어나서 2007년에는 전체 인구의 12.5%에 이르는 3천730만명이다.

시장독재의 금융구제는 파산위기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파산위기를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민생파탄위기에 처한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이 절망과 분노를 느낄 때, 시장독재에 대한 그들의 관계는 악화된다.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이 시장독재에 대해 악화된 감정을 가지는 경우, 저항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예컨대, 2008년도 라틴아메리카 사회상황은 파산위기와 저항운동의 상관관계를 말해준다. 빈곤인구비율이 44%나 되는 페루에서는 올해 10월 다섯 개 주에서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일어났다. 빈곤인구비율이 32%가 되는 파라과이에서는 올해 10월 빈농단체들의 농장점거투쟁이 일어났다. 빈곤인구비율이 30%가 되는 브라질에서는 올해 4월 ‘토지 없는 농민운동(MST)’이 주도하는 ‘붉은 4월’ 농장점거투쟁이 일어났다. 빈곤인구비율이 27%가 되는 우루과이에서는 올해 8월 총파업투쟁이 전개되었다. 빈곤인구비율이 23%가 되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올해 농민파업이 여러 달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정부가 공식발표한 빈곤인구비율이 11.1%가 되는 한국에서는,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촛불시위’라고 부르는 온건한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저항운동의 확산은 자본회생을 위해 재정지출을 증대하고 있는 시장독재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된다.  

주목하는 것은, 이처럼 파산위기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형태의 저항운동들이 진보정치운동과 결합하지 못하고, 저항운동과 진보정치운동이 결합하는 경우에도 진보정치운동이 저항운동의 요구를 대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실적 한계이다. 그 한계는 시장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의 위협을 감소시킨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정치운동은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의 저항운동과 자신을 결합하는 새로운 전략개발을 요청받고 있다.

1-2) 시장독재가 자본회생을 위한 재정지출을 무한정으로 증대할 수 없다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시장독재의 재정지출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 규모는 2008 회계연도(2007년 10월부터 2008년 9월까지)에 4천548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였다. 2007년 회계연도에 생겨난 재정적자는 1천615억달러였는데, 한 해 사이에 약 세 배나 불어났다. 2008 회계연도의 재정적자 규모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2%에 이르는 규모이다. 또한 2008년 8월 현재 미국 연방정부의 누적부채규모는 9조6천340억달러(1경1천16조원)에 이르렀는데, 2008년 한 해 동안 부채이자를 갚기 위해 2천300억달러를 지출해야 한다.

조세제도개혁이나 국채발행증대는 재정파탄의 지름길일 뿐, 더 이상 위기해소책으로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미국 연방정부는 금융구제계획을 추진하기 위하여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게 되겠지만, 거둬들인 세금은 정부재정적자를 메우는 데 탕진될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재정파탄을 피하기 위해 달러화를 더 많이 발행하는데, 달러화를 많이 찍어낼수록 달러화 가치가 뗠어져 결국 종이조각으로 될 것이며 초인플레이션이라는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2008년 3월 국제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가치가 폭락할 위험이 임박하자,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통화관리당국이 유로화와 엔화를 팔아 달러화를 많이 사들임으로써 달러화 가치폭락을 막는 기축통화방어대책을 비밀리에 합의한 적이 있다. 18세기에는 오스트리아 화폐가 국제무역에서 통용되었고, 19세기에는 영국 화폐가 기축통화로 통용되었고, 20세기에는 미국 화폐가 기축통화로 되었으나, 미국 달러화는 차츰 기축통화의 지위를 잃어버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구제금융계획은 시장독재가 취하는 마지막 단계의 위기관리조치이므로, 그 조치가 실패할 경우 그 이상의 구제책은 없다. 그렇지만 시장독재의 위기관리정책이 마비되어 세계대공황이 일어난다고 해도 전자화된 금융문명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은 아니며, 시장독재가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생산량은 전세계 생산량의 20%에 이르고, 미국의 군사비지출은 전세계 군사비지출의 50%에 이르며, 미국의 연구개발비 투자는 최고 수준에 있으며, 미국 인구는 3억명을 넘어섰고, 미국의 국토면적은 인구 대비로 가장 넓은 나라에 속한다.

이처럼 상당한 내구력을 가진 시장독재는 매우 오랜 기간 동안 차츰 쇠퇴하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고통을 가중시키고, 사회계급관계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다만 국제관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빠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 변화는 미국의 시장독재가 세계를 지배해온 낡은 단극체제(unipolar system)가 신흥세력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새로운 다극체제(multipolar system)로 뒤바뀌는 국제정세의 변화이다. 미국 국가정보실(Office of the 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국장 존 마이크 맥코넬(John M. McConnell)은 2008년 11월 30일 미국 테네시주 내쉬빌에 모인 정보전문가들 앞에서 행한 연설에서 중국, 인도, 브라질 같은 신흥국가들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2025년쯤에는 세계정세가 다극체제로 뒤바뀌게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새로운 다극체제가 출현하는 과정은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정세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세계 진보정치운동은 다극체제 출현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개발을 요청받고 있다.   

2. 시장독재에 저항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진보정치운동

2-1) 진보정치운동은 시장독재 이후의 사회정치적 대안을 제시한다

미국 금융시장의 파산과 그것의 세계적 파장은, 자유시장이 지금껏 누려온 ‘자유’가 자본가들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야만적으로 착취하고 수탈하는 약육강식의 자유이며 동시에 자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한경쟁과 과당경쟁이 가져올 파산과 몰락의 자유라는 사실을 현실로 입증한 것이다. 그러한 현실은 진보정치운동이 시장독재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유리한 투쟁근거를 마련해주었다.

진보정치운동은 신자유주의금융권력의 시장독재를 부정한다.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진보정치운동이 시장독재를 부정한다는 말은, 반동적 금권정치(reactionary plutocracy)를 무너뜨리고, 진보적 민주정치(progressive democracy)를 실현한다는 뜻이다. 진보적 민주정치는 반동적 금권정치의 대립항이며, 시장독재 이후의 사회정치적 대안이다. 진보정치운동은 시장독재 이후의 대안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제시하고, 그들의 힘으로 그 대안을 현실화하는 운동이다.

진보정치운동에게 제기되는 중요한 과제는, 진보적 민주정치의 의미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전파하여 진보적 민주정치가 그들 자신의 것으로 되게 하는 일이다. 진보적 민주정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태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저항운동 속에서 획득하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저항운동은 그 자체가 진보적 민주정치를 실현하는 운동은 아니지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진보적 민주정치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현장은 저항운동밖에 없다.

그러므로 진보정치운동은 저항운동현장을 따라다니며 대변인 역할만 수행하는 데 자족할 것이 아니라, 그 운동에 진보적 민주정치의 구체적 전망을 비춰주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오늘의 저항을 넘어 내일의 진보정치로 나아가는 전망이다. 그러한 전망은 진보적 민주정치의 의미를 선명하게 담아낸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진보정치운동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진보적 민주정치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결국 진보적 민주정치의 의미는 민생파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생존문제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주권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 하는 정치문제에서 밝혀지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민생파탄을 극복하는 것도, 누구에게 자기들의 민생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주권이 없으면 민생도 없으며, 주권은 곧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권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행사해야 할, 그러나 지금은 시장독재 아래서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주권은 인민주권(people's sovereignty)과 국가주권(state sovereignty)으로 구분된다. 진보정치운동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정치의 목적은 인민주권과 국가주권의 실현이다.

한국의 현행헌법 제1조는 인민주권사상에 근거한 조항이다. 인민주권사상이란, 주권이 국민(인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이 국민(인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사상이다.

주권이 인민에게 있다는 말은 인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주체라는 뜻이고, 모든 권력이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인민이 자기의 정치적 대표를 민주적으로 선출하여 민주정권을 세운다는 뜻이다. 현행헌법 제1조에 담긴 인민주권사상에 따르면, 인민주권의 의미는 인민이 자기의 정권을 세움으로써 실현하는 자주권을 뜻한다. 인민주권은 자연상태의 인민이 행사하는 자연권이 아니라 민주정권을 세움으로써 실현하는 자주권이다. 인민주권을 실현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정권이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적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정권을 가진 인민(국민)민주주의(people's democracy)이다. 인민주권은 인민과 정권 사이에 성립된 민주주의적 관계를 통해서 실현된다.

인민과 정권 사이의 민주주의적 관계를 논할 때, 인민이 정권을 통제하고 권력을 분점해야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는데, 그러한 견해는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오류이다.

인민이 정권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이 자기의 주권을 실현한 민주정권을 세우는 것이다. 또한 인민주권은 인민이 다른 누구와 나눠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인민만이 갖는 것이므로, 인민에게 속한 권력을 다른 누구와 분점한다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주권의 정치적 기능은 분립하거나 분점할 수 있지만, 주권 그 자체는 단일성으로 존재한다.

인민이 자기의 정치적 대표를 선출하여 민주정권을 세우지 못하면, 인민이 주권을 훼손하고 짓누르는 시장독재 아래서 살아가는 것이다. 시장독재 아래서 실시되는 국민투표는 민주주의적 형식을 갖춘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의 정치적 대표를 선출하는 선거로 될 수 없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기의 정치적 대표를 선출하려면, 그들의 정당이 선거를 주도해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로 시장독재를 옹호하고 고수하는 정당이 선거를 주도하는 것이다. 선거법이 시장독재를 옹호하고 고수하는 정당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인민이 자기의 대표를 선출하여 민주정권을 세우려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인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하여 결성한 진보정당이 집권하여야 한다.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려면, 진보정치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진보정치운동은 정파들끼리 벌이는 정파활동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 서민(소기업 자영업자)의 이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여러 대중조직들이 밀고 나가는 정치운동이다. 그러므로 진보정치운동을 대중운동으로 전개하려면, 노동자, 농민, 서민의 이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여러 대중조직들을 정치적으로 연합시키는 정치연합전략을 밀고 나가야 한다. 오늘 한국에서 그러한 것처럼 진보정치운동이 분열과 침체를 겪고 있는 시기에는 대중조직들이 정치적으로 연합하는 전략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된다.

진보적 정권교체에 성공하여 인민이 민주정권을 세울 때, 인민주권은 국가주권으로 전화된다. 인민이 민주정권을 세우지 못하면, 인민주권도 실현할 수 없고 국가주권도 행사할 수 없다.

인민주권과 국가주권을 단일한 자주권으로 통합한 민주주의를 인민(국민)민주주의 또는 진보적 민주주의라 한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금융권력의 시장독재가 무너진 이후에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실현할 사회정치적 대안이다.

인민주권과 국가주권을 단일한 자주권으로 통합한 사회체제를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민주주의체제 곧 인민(국민)민주주의체제라 한다.

인민주권과 국가주권을 단일한 자주권으로 통합하여 인민(국민)주권국가를 세우게 되는데, 그러한 국가체제를 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이라 한다.

진보적 정권교체를 통하여 인민주권과 국가주권을 단일한 자주권으로 통합한 인민(국민)주권국가를 완성하는 것, 다시 말해서 진보적 정권교체와 민주공화국의 완성, 바로 이것이 진보정치운동의 전략목표이다.

2-2) 진보정치운동은 국제진보정치기구 창설을 요구한다

냉전시기의 양극체제와 달리, 다극체제는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립구도 위에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다극체제는 국제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각국의 시장독재권력이 이합집산하는 변덕스럽고 혼란스러운 갈등구도 위에 성립될 것이다.

일극체제가 차츰 사라지고 다극체제가 형성되는 국제사회의 전략환경 변화는, 진보정치운동에게 국제정치활동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제기한다.

진보정치운동의 국제정치활동은, 일국적 범위를 넘어서 세계적 범위에서 정치연합전략을 수행하는 고도의 정치활동이다.

진보정치운동이 세계적 범위에서 정치연합전략을 수행하려면, 전략근거지를 마련하여야 한다. 전략근거지를 마련하는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대변할 독자적인 국제기구를 창설하는 것이다. 현 시기 진보정치운동의 당면임무는 그 운동이 각국에서 벌이는 개별적 대응과 분산된 활동을 넘어서 새로운 국제진보정치기구를 창설하는 과제를 푸는 것이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ocialist International)’은 1951년 7월 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국제사민주의강령을 선포하고 결성되었고, 현재는 전세계 170여 개의 정당, 정치조직들이 참가하고 있다. 원래 프랑스의 사회당, 독일의 사민당, 영국의 노동당이 주도하여 결성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은,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립관계가 양대 진영의 국제적 대립구도로 표출되었던 지난 냉전시기에 중도우파성향의 정당, 정치조직들이 결집한 이른바 ‘제3의 길’의 낡은 유산이다. 중도우파성향의 정당, 정치조직들이 추구한 ‘제3의 길’은 새로운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변형시킨 반공주의적 사회민주주의이며, 그것의 사회계급적 기반은 노동계급도 아니고 자본가도 아닌 도시중산층이다. 정치이념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에 근거하고, 사회계급적으로는 도시중산층에 근거한 중도우파성향의 정당, 정치조직들이 결집한 국제정치기구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이익을 옹호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다.

그와 다르게, 오늘의 국제정치정세가 진보정치운동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치이념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진보적 민주주의에 근거하고, 사회계급적으로는 도시중산층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 근거한 중도좌파성향의 정당, 정치조직들이 결집하여 새로운 국제진보정치기구를 창설하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양극체제로 갈라졌던 냉전시기에 중도우파성향의 정당, 정치조직들이 내걸었던 국제사민주의강령은, 도시중산층의 정치세력화가 가능하였던 서유럽의 특정한 정치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 강령은 도시중산층이 발달하지 못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빈곤율이 매우 높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정치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더욱이 국제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각국의 시장독재권력이 이합집산하는 변덕스럽고 혼란스러운 갈등구도 위에 세워질 다극체제에서 국제사민주의강령으로 전세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이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극체제로 재편되고 있는 현 시기에 국제사민주의강령을 내세우는 것은 국제정치현실의 변화에 맞지 않는 것이다.

전세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이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새로운 국제진보정치기구의 창설은, 진보정치운동이 세계적 범위에서 수행하는 정치연합전략의 당면과제이다.  

2-3) 한국 진보정치운동의 두 가지 구성부분

2-3)-(1) 3자 정치연합

한국에서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사회계급구성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고도로 산업화된 한국에서 사회계급구성이 달라진 것이다. 농업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공업인구는 산업화 과정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정체되거나 되레 줄어들며, 그 대신 서비스업인구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2007년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부문별 구성비율을 보면, 농업부문이 3%, 공업부문이 39.4%, 서비스업부문이 57.6%를 차지한다.

공업부문에 속한 근로자도 노동계급이고, 서비스업부문에 속한 근로자도 노동계급이다. 한국의 노동계급이 이처럼 공업부문과 서비스업부문에 걸쳐 두루 확산된 것은, 노동계급 안에서 내부분화가 일어나 사회계급적 구성성분이 복잡해졌음을 말해준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계급은 19세기 후반 산업화가 진행 중이던 서유럽에서 자본가들이 채워놓은 착취의 족쇄를 끊으려고 투쟁하던, 그리하여 “혁명에서 잃을 것은 족쇄밖에 없는” 단일한 구성의 공장노동자들이 아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노동계급의 내부분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흔히 기업간부라 부르는 관리직 노동자, 회사원이라 부르는 사무직 노동자, 전문직 종사자라 부르는 전문직 노동자가 노동계급구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노동계급이라 부르는 생산직 노동자는 제조업 노동자와 서비스업노동자로,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나뉘었다. 노동계급 내부에서도 상층 노동자와 하층 노동자의 소득수준은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주목하는 것은, 관리직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전문직 노동자, 그리고 서비스업 노동자 상층이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자인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중산층화된 노동자들은 공업 및 서비스업부문에서 구성비율이 높아진 자영업자와 결합하여 거대한 도시중산층을 형성하였다. 도시중산층이란 중산층화된 노동자들과 자영업자(중소상공인)가 결합한 사회계층이다. 소득분포를 살펴보면, 한국의 도시중산층은 2007년에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월간 가처분소득이 291만원이 되는 소득중위층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한국사회의 소득분포는 소득상위층 20%, 소득중위층 60%, 소득하위층 20%로 나타난다.  

주목하는 것은, 한국에서 도시중산층이 줄어드는 감소추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6년 현재 한국의 도시중산층은 전체 가구의 55.5%였는데, 2006년에는 43.7%로 줄어들었다. 가처분소득의 분산지수가 클수록 중산층이 감소한다고 보는 울프슨 지수(Wolfson Index)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울프슨 지수가 1996년에 0.2388, 2000년에 0.2799, 2006년에 0.2941로 높아져왔다.

중소기업부문의 자영업자는 중기업 자영업자와 소기업 자영업자로 나뉘는데, 전자는 도시중산층에 속하고 후자는 서민층에 속한다. 서민층에 속하는 소기업 자영업자는 주로 도소매업, 숙박업, 요식업 등에 종사한다. 2007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자영업자는 604만9천명이고, 영업이익총액은 83조2천700억원이다.

생산직 노동자들 가운데 대기업과 중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 일부만이 노동조합을 결성하였고, 소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거의 미조직상태에 있다.

2007년 8월 현재, 한국의 노동계급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는 862만명으로 구성비율은 54.2%에 이른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의 비정규직 노동자 구성비율은 10%선이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비정규직 노동자 구성비율은 70%선이다.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구성비율은 제3세계 형으로 분류된다.

남성 정규직 노동자는 503만명(54.5%),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421만명(45.5%)이고, 여성 정규직 노동자는 224만명(33.7%),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441만명(66.3%)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 서비스업 종사자는 39.5%, 제조업 종사자는 14.5%, 건설업 종사자는 11.5%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50.1%밖에 되지 않으며 월평균급여는 120만원이다.

노동조합을 결성한 생산직 노동자들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분열되어 있다. 2008년 1월부터 8월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노조투쟁은 교섭단체를 기준으로 모두 80건이었는데, 그 가운데서 민주노총의 투쟁은 76건(95%)이고, 한국노총의 투쟁은 4건(5%)이다. 이것은 민주노총이 노동계급의 생존권투쟁을 거의 전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양대노총을 비교할 때, 생존권투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적 입장인데, 민주노총은 농민과 서민을 아우르는 각계층 근로대중단체들과의 정치적 연대를 추구하고 있는 반면, 한국노총은 이명박 정권을 지지하면서 전국경제인총연합회와 타협하고 있다.

명백하게도, 한국의 진보정치운동에 주체적으로 참가하는 노동계급은, 민주노총에 소속한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의식화된 선진적 노동자들이다. 문제는 선진적 노동자들의 구성비율이 매우 낮다는 데 있다.

노동계급구성의 분화와 노동계급 상층부의 중산층화, 그리고 노동운동의 양극분열과 선진적 노동자의 소수화는,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 및 정치세력화, 그리고 노동계급의 진보정치운동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장애요인으로 되었다. 민주노조운동에게 그 장애요인은 거의 불가항력적으로 보인다. 현 시기 한국의 사회계급관계와 노동계급 내부현실을 살펴보면, 솔직하게 말해서, 민주노조운동이 그 장애요인을 짧은 기간 안에 뛰어넘을 가능성은 없다. 민주노조운동의 구조적 취약성은 비단 한국사회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진보정치운동, 더 나아가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정치운동이 주시해야 할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강화와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요인이다. 한국에서 진보정치운동의 전략은 장애요인을 뛰어넘지 못하는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에 의해서 규정된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진보정치운동과 민주노조운동을 등치시키는 공식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  

현실은 진보정치운동이 민주노조운동에만 배타적으로,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정치운동은 노동자, 농민, 서민이 결집하는 3자 정치연합을 형성하여야 신자유주의세계화를 반대하고 자본주의단일시장 통합을 저지하는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진보정치운동의 동력범위는 기존의 노농동맹노선을 확장하여 소기업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서민층까지 포괄하여야 할 것이다.

한국의 진보정치운동은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동자, 농민, 서민이 결집한 3자 정치연합이 추진하는 새로운 유형의 민중운동이다. 농민과 서민은 근로대중의 범주에 속하므로, 3자 정치연합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연합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진보정치운동은 진보정당을 통해서 추진된다. 진보정당이 없는 진보정치운동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보정치운동은 출발단계에서부터 새로운 유형의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새로운 유형의 진보정당은 노동자, 농민, 서민이 결집한 3자 정치연합의 기반 위에 세워진다는 뜻에서 대중정당이다. 민주노동당의 역량한계는, 노동자, 농민, 서민이 결집한 3자 정치연합의 기반이 매우 약하다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노동자, 농민, 서민이 결집한 3자 정치연합이 추진하는 진보정치운동은 넓은 의미의 통일전선운동에 들어있는데, 진보정치운동과 통일전선운동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진보정치운동은 노동자, 농민, 서민이 결집한 기층민중의 3자 정치연합에 의거하는 진보적 대중정치운동이며, 통일전선운동은 사회계급적으로 노동자, 농민, 서민만이 아니라 도시중산층까지 포괄하고, 정치이념적으로는 진보적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까지 포괄하며, 정치지형으로는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가장 폭넓은 대중정치운동이다. 그러므로 통일전선조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진보정치강령보다 수준이 낮은 공동의 정치강령을 제시하고 그 강령에 동의하는 각당각파 각계각층을 결집시켜야 한다.

노동자, 농민, 서민의 3자 정치연합이 실현되어 진보정치운동이 자기 역량을 강화할 때, 그때 비로소 3자 정치연합을 중심으로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결집하는 폭넓은 통일전선운동을 전개할 수 있다. 진보정치운동이 없는 통일전선운동은 존재할 수 없다. 한국의 진보정치운동이 직면한 당면과제는 3자 정치연합의 조직적 실현이고, 그것을 구심으로 한 폭넓은 통일전선운동의 전개이다.

2008년 6월과 7월에 걸쳐 한국에서 일어난 촛불시위는 3자 정치연합이 형성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08년 10월 25일 촛불시위의 성과를 계승, 발전시켜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출범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노동자, 농민, 서민이 정치적으로 연합한 조직적 구심력이 아직 형성되지 못한 현재 조건에서, 민생민주국민회의가 전개할 대중정치운동이 중도좌파에서 중도우파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전선으로 확대되기는 힘들 것이다. ‘운동권’이라 부르는 진보성향의 몇몇 대중단체들을 중심으로 하여 소규모 통일전선을 형성하려는 낡은 생각을 내려놓고, 중도좌파에서 중도우파까지 폭넓게 결집하는 대규모 통일전선을 형성하려는 새로운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중도좌파에서 중도우파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전선을 형성하려면, 중도좌파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중도우파정당인 민주당이 중심을 잡고, 거기에 각계각층 대중단체들이 결집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도좌파정당과 중도우파정당이 전선의 중심에 서는 정당구도를 사회계급관계로 표현하면, 노동자, 농민, 서민의 3자 정치연합과 도시중산층 정치세력이 연대하는 것이다. 3자 정치연합과 도시중산층이 정치적으로 연대하는 가장 폭넓은 전선을 형성할 때, 그때 비로소 이명박 정권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고, 그 정권을 압도할 수 있는 위력적인 투쟁구도가 성립되는 것이다.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현 시기 진보정치운동의 발전수준으로 보나 내외정세의 요구로 보나 미룰 수 없는 절실한 과제이다.

세계통일전선운동사의 역사적 교훈은 1930년대 프랑스 인민전선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1934년 2월 6일 프랑스 극우파와 왕당파가 정정불안을 틈타 반정부 무장폭동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려고 하자, 노동자 2만5천명이 극우파 시위대와 맞서 싸웠다. 2월 12일 단일노동총동맹(CGTU)과 노동총동맹(CGT)이 행동을 통일하여 벌인 전국적 총파업에 프랑스 노동자 450만명이 참가하였다. 프랑스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발적으로 반파시스트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군중시위를 벌이면서 공산당과 사회당에게 반파시스트 인민전선을 형성하라고 촉구하였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요구에 따라 공산당과 사회당은 1934년 7월 27일 인민전선을 형성하였고, 나중에 중도우파정당인 급진사회당까지 인민전선에 동참함으로써 반파시스트 인민전선이 완성되었다. 1935년 7월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수십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군중시위대오의 맨 앞줄에는 공산당 지도자 모리스 또레스(Maurice Thorez, 1900-1964), 사회당 지도자 레옹 블룸(Leon Blum, 1872-1950), 급진사회당 지도자 에두아르드 달라디에(Edouard Daladier, 1884-1970)가 섰다.

1936년 1월에 3당의 주도로 반전, 반파쇼 인민전선강령이 채택, 발표되었고, 3월에는 단일노동총동맹과 노동총동맹이 통합되어 프랑스 노동계급의 조직적 단결이 실현되었다.

공산당, 사회당, 급진사회당, 노동총동맹이 결집한 인민전선은 1936년 4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367석을 차지하면서 원내 다수파가 되었고, 이어 5월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하였다. 그에 따라, 알베르 싸로(Albert Sarraut, 1872-1962)가 이끌던 내각은 총사퇴하였고, 1936년 6월 4일 사회당 지도자 레온 블룸을 수반으로 하는 연립정부형태의 인민전선정부가 수립되었다. 이것은 1930년대 프랑스의 진보정치운동이 인민전선을 형성하여 파시스트 정권의 출현을 저지하고 인민전선정부를 세우는 데 성공하였음을 말해준다. 그것은 1871년 파리꼬뮌 이후 64년만에 이룩한 승리였다.

세계진보정치사에서 얻는 역사적 교훈은, 우파세력이 발호하는 시기에 진보적 정권교체는 진보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하기 이전에 진보정당과 중도정당이 정치적으로 연합하는 통일전선운동을 밀고 나가 통일전선정부를 세우는 것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프랑스 인민전선정부는 영국 보수당 정부의 협박을 받아 스페인 인민전선을 지원하지 못하였고, 연립정부의 한 축이었던 급진사회당의 반대로 자본의 해외유출을 통제하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였으며, 우파가 장악한 상원의 반대로 물가연동 임금제를 도입하지 못함으로써 결국 진보적 민주정치를 실현하지 못하였다. 인민전선정부는 1937년 6월 22일 블룸이 수상직을 사퇴하자 1년만에 해체되었다.

승리와 좌절이 엇갈린 프랑스 인민전선운동의 역사적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이다.

첫째, 반파시스트 인민전선을 형성하라는 프랑스 노동계급의 요구에 대해 프랑스 공산당이 피동적으로 반응하였다는 점이다. 인민전선을 형성하는 투쟁에서 주동을 놓친 프랑스 공산당의 역량한계는 인민전선의 불안정성을 극복하지 못한 요인으로 되었다.

둘째, 진보정당이 없었다는 점이다. 프랑스 공산당은 좌파정당이었고, 프랑스 사회당과 급진사회당은 중도정당들이었다. 프랑스 노동계급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3당이 정치적으로 연합한 프랑스 인민전선은, 중도정당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가운데 좌파정당이 불안정하게 결합된 상태로 형성된 것이었다. 진보정당이 중심에 서고 좌파정당과 중도정당이 결합하는 3자 정치연합의 인민전선이 형성되었더라면 훨씬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2-3)-(2) 국제민주노동운동과의 정치적 연대

위에서 논한대로, 신자유주의세계화와 자본주의단일시장 통합은 일국적 질서를 재편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질서 전반을 재편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세계화를 반대하고 자본주의단일시장 통합을 저지하는 투쟁이 국제적으로 다자정치연대를 형성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신자유주의세계화 반대와 자본주의단일시장 통합 저지를 위하여 국제적으로 형성하는 다자정치연대를 국제진보정치연대라고 부를 수 있다.

문제는, 국제진보정치연대의 중심역량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련한 교과서적 발상에 따르면, 그 중심역량은 마땅히 국제노동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는 너무 먼곳에서 들려오는 산울림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된 까닭은, ‘노동귀족’이 지도부를 장악한 오늘의 국제노동운동이 조합주의와 사회개량주의에 기울어져서 진보정치운동의 역사적 전망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 시기 국제노동운동의 현실이다.

2006년 11월 1일 국제자유노조연맹(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ICFTU)과 세계노동연맹(World Confederation of Labour/WCL)이 통합하고, 프랑스 노동연맹(CGT) 등이 합류하여 결성된 국제노조연맹(International Trade Union Confederation/ITUC)은 156개 나라의 306개 노조와 노조원 1억6천600만 명이 망라되었다고 하지만, 조합주의와 사회개량주의에 빠지고 진보정치운동과 무관한 우파노조의 결집체이다. 국제노조연맹은 ‘노동귀족’이 운영하는 허술한 이익단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국제노동운동의 현실은, 진보정치운동의 역사적 전망을 공유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유럽, 북미주의 민주노조운동이 새로운 국제민주노동운동을 조직화할 필요를 제기한다.

1990년대 초에 시작된 민주노동조합의 국제적 움직임은 19개 나라 민주노조들이 참가한 ‘세계화와 노조권리를 위한 남부구상(Southern Initiative on Globalization and Trade Union Rights/SIGTUR)’이다. 여기에는 민주노총(KCTU), 남아공노조회의(COSATU), 인도노조중심(CITU), 필리핀의 5월1일노동중심(KMU), 브라질의 중앙노동연맹(CUT)이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화와 노조권리를 위한 남부구상’은 이태에 한 차례 국제회의를 여는 느슨한 회의체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1945년 10월 3-8일까지 파리에서 열렸던 제1차 세계노동조합회의(The 1st World Trade Union Congress)에서 반파시즘, 반전평화, 노동조건 개선을 전략목표로 제시하면서 결성된 세계노조연맹(World Federation of Trade Unions/WFTU)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 세계노조연맹은 개량주의 성향의 우파노조들이 이탈하였고, 지금은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노조들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국제노조연맹의 비대화, 세계노조연맹의 불활성, 국제민주노조운동의 불모성, 이것이 오늘날 국제노동운동의 현실이다. 국제진보정치연대를 형성하려면, 국제노조연맹의 결함과 세계노조연맹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국제민주노조운동의 조직화가 요구된다. 새로운 국제민주노조운동의 조직화는, 세계적 범위에서 민주노조운동의 국제연대를 실현한 조직체를 건설하는 과업이다. 세계적 범위에서 민주노조운동의 국제연대를 실현하는 과업은, 이전의 관행을 따라 민주노조운동의 국제연대만을 추구하는 협소한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게 민주노조운동과 진보정치운동의 전략적 연대를 실현하는 방식에 따라 수행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곳곳에 흩어져있는 민주노조운동은 정치적 연대는 고사하고 정신적 연대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듯하다. 흩어져있는 민주노조운동이 지리적 소원감, 언어장벽, 문화적 차이를 가까운 시일 안에 넘어서기 힘들다. 이런 조건에서,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진보정치운동이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과제부터 먼저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냉전시기 이후 진보정치운동의 국제연대에 관한 경험과 교훈은, 1990년 7월 브라질 노동자당(PT)과 꾸바 공산당의 주도로 시작된 ‘상파울로 포럼(Sao Paulo Forum)’에서 찾을 수 있다. 상파울로 포럼은 사회주의진영이 무너지고 있었던 1990년에 라틴아메리카의 48개 정당, 정치조직 대표들이 모여 시작한 라틴아메리카 역내의 진보정치연대회의이다. 2008년 5월 22일부터 25일까지 우르과이 몬테비데오에서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35개 나라 844명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상파울로 포럼 제14차 회의가 개최되었다. 상파울로 포럼의 목표는 신자유주의세계화 이후의 사회정치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인데, 대안적 공동강령의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민주주의강령을 새로운 대안강령으로 제시하였다. 대안강령은 경제부문에서 사회주의적 국유화와 민주주의적 통제를 실현한 ‘민주주의혼합경제(democratic mixed economy)’를 실시하고 라틴아메리카의 경제통합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둘째, 무장투쟁을 통한 집권전략을 포기하고 선거를 통한 집권전략을 제시하였다.

셋째, 기존의 노농동맹노선을 넘어서 다계급적 통일전선노선을 제시하였다.

상파울로 포럼에서는, 대안적 공동강령을 사회주의적 지향(socialist orientation)으로 해석하는 좌파적 경향과 사회민주적 지향(social-democratic orientation)으로 해석하는 우파적 경향 사이의 강령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상파울로 포럼에서 좌파적 경향은 꾸바공산당이 대표하고, 우파적 경향은 브라질 노동자당이 대표한다. 특히 베네주엘라, 볼리비아, 에꾸아돌, 니까라과에서 사회주의적 지향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진보정치세력이 집권한 최근에는 좌파적 경향에 힘이 더 실리고 있다.

상파울로 포럼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한정된 것인데, 신자유주의세계화 이후의 사회정치적 대안을 모색하는 노력은 라틴아메리카를 넘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과 중동을 포괄하는 세계적 범위에서 진보정치운동과 민주노조운동의 국제정치연대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진보정치운동을 대표하는 민주노동당이 자기의 활동범위를 국제연대사업으로 넓혀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끝)

* 이 글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08 파리 국제정책포럼 첫째날인 2008년 12월 6일 포럼에서 발표한 발제원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