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 50일 동안 뭐했나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북측 언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활동을 오랫동안 보도하지 않는 적이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는데, 그때는 보수언론들이 은둔이니 잠적이니 하는 말을 썼다가 요즈음에는 ‘건강이상’이니, ‘와병’이니 하는 말로 바꿨다. 보수언론들의 말 바꾸기는 단순한 용어선택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북측 언론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활동을 오랫동안 보도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외부의 보수언론들이 괴담 수준의 추측 기사를 남발하는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삼단계 괴담 시나리오

그러한 소동이 일어난 까닭은, 미국 중앙정보국과 한국 국가정보원의 대북첩보담당관리들이 보수언론들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을 흘려주고, 그 뒤로 얼마 지나서 건강회복설까지 흘려주었을 뿐 아니라, ‘익명의 소식통’들이 전하는 ‘첩보’가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북한전문가’로 불리는 대학교수들과 각종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자들이 ‘권위 있는 분석’으로 건강이상설과 건강회복설을 사실로 둔갑시키고 맨 마지막에 병상통치설까지 집어넣어 괴담 시나리오를 완성하였다. 건강이상설→건강회복설→병상통치설로 전개된 삼단계 괴담 시나리오는, 특수목적을 수행하는 한미 정보기관의 대북첩보담당관리들, 비방 수준의 북측 관련 기사를 남발해온 보수언론들, 그리고 북측 관련 허위정보유포에 발 벗고 나선 ‘북한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하여 꾸며낸 합작품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에 관한 괴담 시나리오를 퍼뜨린 것과는 대조적으로, 2008년 9월 10일 백악관 대변인은 “어떤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고, 국무부 대변인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으며, 9월 11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측으로부터 김 위원장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백악관과 국무부, 그리고 중국 외교부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에 관한 정보를 알지 못하면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해야 정상인데, 보수언론들과 ‘북한전문가’들은 모르는 데도 아는 척하면서 이치에 맞지도 않는 괴담 시나리오를 퍼뜨린 것이다.

물론 이 글도 추리력을 동원하여 썼다는 점에서 일종의 시나리오지만, 그동안 언론에 나온 관련 정보들을 정상적인 사리판단에 맞게 해석하여 다시 썼다는 점에서 괴담 시나리오와 질적으로 다르다. 어느 시나리오가 실상에 더 근접한 것인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왜 하필 친선축구경기장이었나?

북측 언론이 오랫동안 보도하지 않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활동을 다시 보도한 것은 2008년 10월 4일이었다. 지난여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인민군 제1319부대 시찰을 북측 언론이 보도한 때는 8월 14일이었으므로, 북측 언론은 8월 15일부터 10월 4일까지 그의 활동을 보도하지 않은 것이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종합대학 창립 62주년을 기념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축구단과 평양철도대학 축구단이 진행한 친선경기를 관람하였다고 한다. 그는 “리재일 조선로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비롯한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 그리고 관계부문 일군들”과 함께 관람하였다고 한다. 축구경기가 김일성종합대학 창립기념일인 10월 1일에 열렸을 것이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개 활동을 재개한 날은 10월 1일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창립을 기념하여 열린 친선축구경기였으므로 그 경기는 당연히 평양직할시 모란봉구역에 있는 그 대학의 운동장에서 열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부대 시찰이나 생산현장 시찰이 아니라 왜 하필 대학생들의 축구경기장을 찾는 것으로 북측 언론에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일까? 자신의 건강문제에 관한 괴담 시나리오가 전 세계에 퍼졌음을 알고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측 언론에 다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우연한 계기는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생 친선축구경기는 관중들의 응원열기가 끓어오르는 가운데 진행되는 활기 넘치는 옥외행사이다. 친선축구경기를 실내에서 소수인원들이 비공개로 조용히 진행하는 경우는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친선축구경기장을 찾은 것은, 두 대학 교직원들과 학생들의 뜨거운 응원열기가 끓어오르는 옥외행사를 찾을 만큼 건강에 문제가 없음을 전 세계에 암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보수언론들과 ‘북한전문가’들은 조선중앙통신이 친선축구경기를 관람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현장사진을 보도하지 않아서 보도내용을 믿지 못하겠다고 트집을 잡으면서 여전히 괴담 시나리오를 고집하였다. 북측이 현장사진을 첨부하지 않은 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개활동을 보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이전에도 있었으므로 이번에 현장사진이 나오지 않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10월 11일 조선중앙텔레비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군 제821부대 산하 여군 포중대를 시찰하였음을 현장사진들과 함께 보도하였다. 그랬더니 보수언론들과 ‘북한전문가’들이 이번에는 사진배경에 찍힌 나뭇잎 색깔이 너무 푸르러서 10월에 찍은 사진으로 보이지 아니하므로 보도내용을 믿지 못하겠다고 또다시 트집을 잡았다. 10월 14일에는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에서 대북정보를 다루는 관리들도 저들의 트집을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사진에 나타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여름철에 입는 반팔소매 ‘야전복’이 아니라 가을철에 입는 긴팔소매 ‘야전복’을 입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북측 언론에 보도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삼복철 강행군’에 관한 사진들에서는 반팔소매 ‘야전복’을 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그 사진이 지난여름에 찍은 것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다.

만일 그 사진이, 보수언론들과 ‘북한전문가’들, 그리고 미국 국방정보국 관리들이 주장한 대로, 지난여름에 찍은 것이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8월 14일 이후에도 여전히 군부대를 시찰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므로 8월 14일 이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괴담은 원천적으로 부정된다. 자기들의 괴담을 부정하는 명백한 사실이 있는데도, 괴담을 끝내 고집하는 것은 정보부족에서 오는 판단실수가 아니라, 괴담 시나리오를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소동인 것이다.

괴담 시나리오를 퍼뜨린 소동에서 드러난 사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 정보기관과 한국 정보기관의 대북첩보력이 영에 가깝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정보기관들에서 일하는 관리들은 첩보력에 의존하여 정보를 판단하는 분석가들이 아니라 추리력에 의존하여 엉터리 공상소설이나 써대는 작가지망생들처럼 보인다.

둘째, 괴담 시나리오를 퍼뜨리는 소동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증폭되는지가 드러났다. 한미 두 정보기관의 대북첩보담당관리들이 맨 처음에 슬쩍 운을 떼면, 선정주의에 몸이 후끈 달아버린 보수언론들과 ‘북한전문가’들이 목청을 높여 확성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셋째, 괴담 시나리오를 퍼뜨리는 소동의 발생 원인이 드러났다. 자기들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끊임없이 트집과 억지를 부리는 것은 일종의 정신착란이다. 그들의 두뇌 속에서 일어난 정신착란의 발병원인은, 북측에서 대혼란이 일어나서 하루빨리 망해주기만을 바라는 극단적인 반북혐오증의 발작이 아닐까?

50일 동안 비공개로 사업을 지도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측 언론이 그의 활동을 보도하지 않았던 50일 동안 무엇을 하였을까?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사실을 논할 필요가 있다.

북측 언론이 50일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공개활동을 보도하지 않은 것은, 그가 언론에 보도할 수 없는 사업을 비공개로, 집중적으로 지도하였다는 뜻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50일 동안 비공개로 사업을 지도해왔던 것이다.

그가 비공개로 지도한 사업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50일 동안 그가 비공개로 지도한 사업이 무엇인지를 밝혀주는 결정적인 단서는 비핵화 추진 일정에서 찾아낼 수 있다.

2008년 8월 11일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북측을 테러지원국 지정명단에서 삭제하겠다고 공약했던 날인데, 그들은 자기들이 내놓은 검증방안을 북측이 거부했다고 트집을 잡으면서 공약을 깨버렸다. 그들의 검증방안이란, 어떤 나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특별사찰 강요방안이었으므로 북측이 그것을 거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공약을 이행하기로 예정했던 날짜를 하루 넘긴 8월 12일에 북측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공약을 깨버렸음을 확인하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약속을 위반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 그들이 저지른 공약 파기는 이전의 약속 위반과는 다른 것이었다. 왜냐하면 비핵화 추진과정에서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 테러지원국 지정해제공약을 깨버린 것은 비핵화 추진과정 자체를 거부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외교성과를 내세워야 할 임기 말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공약을 파기한 것은, 외교성과를 내세우는 것마저 포기하고 비핵화 추진과정 자체를 파탄시킨 실로 엄중한 사태였다.

북측에서 비핵화 문제에 관하여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최고의결단위는 어디일까? 북측은 비핵화 문제를 국가주권문제이자 군사문제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그 문제에 관하여 정치적 결정을 내릴 권한과 책임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나 내각 외무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헌법 제100조에서 “국가주권의 최고군사지도기관”으로 명시한 국방위원회에게 있다. 북측이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한반도의 비핵화를 추진하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국방위원회는 무계획적으로 비핵화를 추진해온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을 세워놓고 추진해왔다. 치밀한 계획이란 비핵화를 실현해가는 시간표까지 마련해두었다는 뜻이다. 북측의 비핵화 시간표가 목표달성 시점을 2012년으로 정해놓았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방위원회가 작성한 비핵화 시간표가 2012년에 끝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북측이 2012년을 강성대국 건설과업을 완성하는 해로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국방위원회가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강성대국 건설과업을 완성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방위원회는 미국의 차기 정부와 치열한 정치공방전을 벌여, 적어도 2012년까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꾼 공고한 평화체제를 세우고,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하겠다는 공약을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북측이 평화체제 수립, 대미관계 정상화, 주한미국군 단계적 철군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2012년까지 풀어가려면, 미국의 차기 대통령을 되도록 이른 시기에 평양으로 초청하여 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문제해결의 돌파구를 열어놓아야 한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이 테러지원국을 방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이전에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관철시키는 것은 북측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과제로 되었다. 국방위원회가 2012년에 완결될 비핵화 시간표를 일정대로 밀고 나가려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차기 정부가 출범한 이후로 미룰 수는 없는 일이고, 미국 대선 날짜인 11월 4일 이전에, 다시 말해서 적어도 10월 중순까지는 반드시 실현하여야 한다.

그런데 지난 8월 11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공약을 파기한 것은, 국방위원회의 비핵화 시간표에 정해놓은 대로 비핵화를 추진하기 힘들어진 정세를 조성한 것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개사업을 지도하는 모든 일정을 중지하고 급히 대응책 마련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가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내린 결정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가장 먼저 관계 기관들에게 내린 지시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공약 파기 사태를 일으킨 원인과 배경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공약 파기 사태를 일으킨 원인과 배경이 무엇인지를 북측이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공약 파기 사태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는 데서 북측은 어려움을 겪었다. 왜냐하면 미국 정부가 북측 정부의 내부사정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는 첩보력을 갖지 못한 것처럼, 북측 정부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내부사정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는 첩보력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저들의 공약 파기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공정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공약 파기 사태를 일으킨 원인과 배경을 파악한 뒤에, 그는 비핵화 문제에 관하여 중대한 정치적 결정을 내릴 국방위원회 회의를 소집하였을 것이다. 그 회의는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보면 아마도 하루 이상 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월 5일 <로동신문>과 <민주조선>에 보낸 장문의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불패의 위력을 지닌 주체의 사회주의국가이다’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9월 초에 국방위원회 회의에서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로 추정된다.

그 회의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그가 내린 결정은 공약을 파기하고 비핵화 추진 일정을 중지시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강력한 압박을 가하는 대응조치였을 것이다. 협상이 중단되면 압박 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에 그러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정한 강력한 대미압박조치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북한전문가’들은 북측이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 작업을 중지한 것을 대미압박조치라고 보았지만 그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공약을 파기할 때, 그들은 북측이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중지하는 보복조치를 취하리라고 이미 예상하였을 것이므로, 불능화 작업 중지는 그들에게 강력한 압박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정한 대미압박조치는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중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경한 조치였을 것이다.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중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경한 대응조치는 제2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는 것밖에 없다. <워싱턴포스트>가 10월 12일자로 보도한 기사에서 북측이 “또 다른 핵실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짤막하게 지적한 것은, 북측과 미국이 협상을 타결하여 북측이 핵실험 준비를 중지한 뒤에 나온 지적인데, 북측이 제2차 지하핵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던 지난 9월의 정세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게 매우 심각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북측의 핵실험 준비는 지상이 아니라 지하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그 준비는 지상에서 벌어지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준비보다 미국의 첩보망과 정찰작전을 따돌리기 쉬운 점은 있지만, 기술적으로는 간단한 문제가 결코 아니다. 우선 지하핵실험을 실시할 안전하고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고, 핵실험장 주변에 보안병력을 배치하고, 지하갱도굴착공사와 방대한 콘크리이트 타설 작업을 벌이고, 방사능 누출을 방지하는 설비를 갖춰야 하며, 핵실험에 관련된 전문 인력과 측정 장비를 배치하고, 핵탄두를 그곳으로 옮겨 정교한 기폭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쌍심지를 켜고 스물네 시간 감시하는 미국의 첩보망과 정찰작전을 완벽하게 따돌리면서 핵실험을 준비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첩보망과 정찰작전을 엉뚱한 곳에 쏠리게 만들어 무력화하는 기만작전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2008년 9월에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 있는 기존의 우주발사체 발사장에서 발사대를 지지하는 탑식 기중기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미사일 지지대를 보강하는 개보수작업을 벌인 것이나, 거의 같은 시기에 서해 상공과 중국 접경지역 상공에서 미그-21기를 동원한 대규모 비행훈련을 실시한 것은, 핵실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미국의 첩보망과 정찰작전을 따돌리기 위한 기만작전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있어서 2008년 9월 한 달은 그가 위와 같은 군사부문사업을 비공개로 지도하면서 매우 분주하고 긴장된 일정을 보낸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급해진 방북협상과 그 결과

2008년 10월 9일은 북측이 지하핵실험을 실시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2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날짜는 당창건 기념일을 하루 앞둔 10월 9일로 잡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태 전에 실시한 제1차 지하핵실험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 준비한 제2차 지하핵실험에서도 북측은 지하핵실험을 실시하기 며칠 전에 핵실험 계획을 발표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이태 전에 북측은 10월 3일 오후 6시에 핵실험 계획을 발표하였고, 엿새 뒤에 실행에 옮겼다. 실행 당일 북측은 두 시간 전에 러시아에 통보했고, 20분 전에 중국에게 통보하였다. 중국은 즉시 그 사실을 미국 대통령 부쉬에게 알려주었다.

북측이 10월 9일에 제2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정보판단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위기의 벼랑끝으로 몰아갔다. 만일 북측이 제2차 지하핵실험을 실시할 경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수습하지 못할 대파국에 빠질 것이라는 점은 누구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북측이 핵실험 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서둘러 검증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어떻게 해서든지 핵실험 계획을 중지시켜야 하였다.

<워싱턴포스트>가 크리스토퍼 힐이 곧 방북협상 길에 나설 것임을 보도한 날은 2008년 9월 28일이었다. 힐이 북측의 핵실험 계획을 중지시키기 위한 급박한 임무를 안고 평양에 나타난 때는 2008년 10월 1일이었다. 힐이 왜 평양에 오는지를 짐작하고 있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바로 그날 대학생 친선축구경기를 관람하였다. 힐이 2박 3일 동안 평양에 머무는 동안 정치협상이 진행되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힐에게 방북협상을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은, 그들이 북측의 핵실험 계획을 예상하고 얼마나 큰 압박을 받고 있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힐의 방북협상을 통하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는 특별사찰을 요구하였던 자기들의 그릇된 검증방안을 포기하고 정상적인 검증방안에 합의하였으며, 그에 따라 북측을 테러지원국 지정명단에서 삭제하는 원래의 공약을 지키겠다고 다시 약속하였다.

그 약속에 따라, 10월 11일 미국 국무부는 북측을 테러지원국 지정명단에서 삭제한다고 발표하였다. 테러지원국 지정조치를 둘러싼 북측과 미국의 날선 공방전은 20년 하고도 아홉 달 만에 이처럼 북측의 승리로 끝났다. 북측의 승리가 확정되던 날, 북측 언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군 제821부대 산하 여군 포중대를 시찰하였음을 보도하였다.

지난 8월 26일 북측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있다. “우리가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려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가해지고 있는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해서이지 결코 우리의 핵억제력을 놓고 흥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핵무기를 개발하지도 못한 리비아는 핵개발문제를 놓고 원칙도 없이 미국과 흥정이나 하다가 정치적으로 완패하였던 것에 비해, 핵보유국인 북측은 미국과 흥정하기를 거부하고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승리하였다. 북측과 리비아는 똑같이 테러지원국 지정명단에서 삭제되었지만, 북측에게 지정 해제는 정치적 승리였고, 리비아에게 그것은 정치적 패배였다. 북측의 논리에 따르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첫 단계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2008년 11월 3일 월간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