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세력이 뇌관역할 했어야 했다

인터뷰 -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 미국 뉴욕에 있는 통일학연구소의 한호석 소장을 만나 간담회 겸 인터뷰가 6월 21일 진행됐다. 표현을 COREA21식으로 간결하게 다듬는 과정에서 축약이 많았음을 양해 바란다. - 편집자 주

이명박 정부는 쇠고기시장을 미국 부시정부에게 조공으로 바치고 한미FTA비준안을 국회에서 밀어붙이려다가 거대한 촛불의 바다 앞에 주춤거리고 있다. 40일 넘게 지속되고 있는 촛불집회의 의의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누리꾼(네티즌)을 비롯한 자발적 참가자들이 결집해 새로운 정보소통체계를 만들어냈고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세계에서 초고속인터넷망이 가장 발달한 이 사회에서 가능한 일이다. 진보정치운동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거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성과다. 그동안 자본과 권력이 독점해왔던 낡은 정보소통체계에 맞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이번에 일어난 대중저항운동은 낡은 체제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 폭발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낡은 체제란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를 실현한 체제를 뜻한다. 그런데 이번에 각계각층 국민대중은 형식적 민주주의가 해결할 수 없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참된 민주주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정치적 각성이 거대한 촛불바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40일 넘게 진행된 촛불집회를 보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미국산 쇠고기수입문제가 대중저항운동의 촉발계기가 됐지만, 국민대중은 한미관계의 변태성과 기형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호주산 쇠고기나 일본산 쇠고기가 아니라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것이 문제가 됐고, 이명박 정부는 부시 정부 앞에서 굴욕협상을 진행하였으므로 반이명박 감정과 함께 당연히 반미감정도 폭발됐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본질이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이 은폐되어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대중저항운동이 아직 넘지 못한 한계선이다. 그 한계선을 넘으려면, 대중저항운동과 진보정치운동이 상호결합하여야 하는데 상호결합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가장 아쉬운 것은, 대중저항운동과 진보정치운동의 미결합상태가 전략방침의 부재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대중저항운동이 40일 넘게 진행됐는데도 정권퇴진운동으로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아직도 토론 중에 있다. 정권퇴진운동은 전략적인 문제인데 40일이 지나고 6.10 대규모 촛불대행진 이후에 와서도 전략문제를 정리하지 못한 것은 진보정치세력이 무기력하다는 뜻이다. 자료에 따르면, 5월 2일 1만명, 12일 3만명, 23일 5만명, 29일 4만명이 모이다가 5월 31일부터 14만명, 6월 6일 20만명, 6월 10일 50만명으로 참가인원이 급증하였다. 참가인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5월 31일부터 6월 10일까지 12일 동안이 대중저항운동의 결정적인 계기이었다. 전략문제는 적어도 5월 31일에 토론에 들어가서 몇 일 안에 정리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어야 6월 10일에 전략적 정치공세를 밀고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정권퇴진운동으로 갈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전략문제를 정리해야 그에 따른 전술이 나온다. 만약 정권퇴진운동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그에 따른 전술을 들고나와 6월 10일에 전략적 정치공세를 가하면서 큰 성과를 내왔을 것인데 너무 아쉽다. 이명박 정부가 반격공세에 나서기전, 그러니까 그들이 정치적으로 고립돼 있고 수세에 몰려있을 때인 5월 31일부터 6월 10일 사이에 진보정치세력이 대중저항운동과 결합하여 정국주도권을 장악했어야 했다.

7월 2일부터 민주노총이 총파업투쟁을 한다고 하는데, 오는 7월에 다시 6월 10일 같은 대규모 대중저항운동이 재현될 수 있을까? 조직화된 진보정치세력은 장기투쟁을 밀고 나갈 수 있지만, 조직화되지 못한 대중은 집중투쟁이 10일 이상 넘어가면 피로감을 느끼거나 흩어지기 쉽다. 폭발적인 상황에서 진보정치세력이 뇌관역할을 했어야 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대중저항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난 시기 역시 6월 10일 전후하여 약 10일 정도였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20, 30대 젊은층의 투표율이 가장 낮아 정치적 무관심이 심각하며 보수화됐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사이 이변이 나타나고 있다. 젊은층의 이런 상반된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쇠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쇠고기문제는 국민대중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최대공약수'이다. 그래서 각계각층 광범위한 대중이 저항운동에 나설 수 있었다. 진보정치세력은 각계각층 국민대중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를 통해서 낡은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런 계기를 만들기 쉽지 않았다. 진보정치세력은 안이하고 관성적인 생각만 하고 있었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사실은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이라는 것, 미국산 쇠고기에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예속적인 대미관계라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주어졌으나 대중저항운동은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둘째, 우리 사회에서 20, 30대는 산업화의 물질적 혜택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은 세대다. 사회정치적으로 군사독재정권과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형식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사회에서 살았던 세대다. 그래서 권위주의를 싫어한다. 중학생들도 '쥐박이'라고 하면서 대통령을 욕한다. 새로운 세대에게 민족주의는 약하고 자유주의는 강하다.

셋째, 이른바 '88만원 세대'인 20, 30대에게는 사회적인 불안과 사회체제에 대한 반감이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거다.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취업할 곳이 없는 절망적인 사회체제에 대한 불만이 깔려있는 거다. 이것이 그 세대를 촛불바다로 이끈 동인이었다.

이전에는 혁명적 민족주의세력을 어떻게 사회변혁운동에 동참시키느냐 하는 고민을 하였다. 만약 미국산 쇠고기문제가 1987년에 터졌다면 당시 20, 30대는 반미구호를 들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미국산 쇠고기문제가 예속과 지배가 뒤엉킨 한미관계에서 발생하였는데도 반미구호는 나오지 않는다. 상황이 달라졌다. 진보정치세력은 자유주의에 기울어진 청년계층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하는 중요한 과제를 마주하게 된 셈이다.

향후 투쟁방향과 관련해 현재 쟁점이 되는 것은 정권퇴진구호냐 아니면 전면재협상 구호냐이다. 광우병대책위 공식입장은 쇠고기문제에 5대 의제를 결합시킨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집중점이 약해진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중요한 지적인데 의제를 확장하면 애초 쇠고기문제에서 충격을 받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각계각층 국민대중이 투쟁목표를 잃어버리고 흩어질 위험이 있다. 그들이 흩어져 일상으로 돌아가면, 조직화된 대중만 남는다. 정권퇴진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전면재협상 요구에 집중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논쟁거리가 못된다. 왜냐하면 대중저항운동은 지금까지 그 두 문제를 모두 제기해왔기 때문이다. 쇠고기 전면재협상을 구호로 외치는 현장에서 이명박 정권퇴진을 외쳤다고 해서 무슨 논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거꾸로 쇠고기 전면재협상 구호를 외쳤다고 해서 싫어하거나 갈라선 것도 아니다. 만일 쇠고기 전면재협상 구호를 내려놓고, 정권퇴진구호만 들게 되면 투쟁동력이 축소된다. 지금껏 자연스럽게 같이 해왔는데 자꾸 구분해서 동력을 분산시키지 말아야 한다.

최근 발표한 글에서 각계각층이 '이명박은 물러가가'고 외치며 청와대 방향으로 진출하는 것이 청와대를 물리적으로 압박하는 유일한 전술이라면,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비상정치회의를 구성하는 것은 청와대를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유일한 전술이라고 말했는데...

비상정치회의는 정권퇴진운동의 전략에서 생각해야 한다. 대중저항운동이 일어났다고 해서 진보적 정권교체가 실현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지금 수준에서 진보정치세력이 추진해야 하는 것은 집권연습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우리 진보정치세력은 한번도 집권연습을 하지 못했다.

또 한 가지 있다. 갑오농민전쟁시기에 전라도에 세워진 집강소, 그리고 해방정국에 세워진 인민위원회를 제외하면, 민중이 자율적으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대표체를 구성한 적은 없었다.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수록 계속 연습을 해야 한다. 이번에 일어난 대중저항운동은 진보정치세력이 집권연습을 진행하기에 참으로 좋은 기회였다.

집권연습의 주체는 당연히 진보정당으로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진보정치세력이 분당사태로 불리한 상황이므로 정치적 대표체에 통합민주당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통합민주당을 제외하고, 지지도가 10% 남짓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만으로 정치적 대표체를 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

정치적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앞으로 임기가 4년 반이나 남은 이명박 정권이 지금 안고 있는 총체적 모순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보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에게는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 이것은 대중저항운동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음을 말해준다. 이번에 드러난 진보정치세력의 한계를 냉철하게 바라보자. 그래야 대중저항운동의 기회가 다시 왔을 때 진보정치세력이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대중저항운동과 관련된 평가나 토론도 민주노동당 안에서만 하지 말고 폭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자꾸 시도해야 한다.

'40일 간의 저항운동'이 민주노동당 재창당에 주는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재창당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나는 분당의 근본원인을 제거하는 것과 당내부의 제약조건을 돌파하는 것, 이 두 가지라고 본다.

우선, 민주노동당 재창당은 분당사태의 근본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분당사태의 원인은 정치노선싸움에 있지 않았다. 만일 당 안에서 정치노선이 갈등을 일으켰다면 1차적으로 강령논쟁이 나왔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이 '종북주의' 소동을 일으켜 갈라섰다. 강령논쟁이 벌어지고, 서로 생각이 달라서 도저히 같이 못하겠다고 하면서 갈라선 것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여러 인맥들 사이에서 갈등이 불거지면서 갈라섰다.

정파란 정치노선에 따라 움직이는 당내 집단을 말하는데, 분당사태는 정치노선싸움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파가 아니라 인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당권장악을 위한 인맥들 간의 갈등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완화시키며 당의 통합력을 유지강화시켜 나갈 것이냐, 이것이 재창당의 기본방향이 돼야 한다.

다음으로, 민주노동당 재창당은 당내 제약조건을 돌파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2003년과 2004년을 기점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하다가 정체된 상태다. 대중의 지지역량을 끌어모으는 정치활동이 거의 정체돼 있다. 진보정치세력의 밑천이 드러났다고 해야 할까? 민주노동당 안에 결집돼 있는 진보정치세력이 이제는 대중정당으로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내야 한다.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당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를 바꾸고, 현장정치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정보에는 지식정보와 감성정보 두 종류가 있다, 지식인계층을 움직이는 것이 지식정보라면, 일반대중을 움직이는 건 감성정보다. 이 감성정보를 대중에게 지금까지 주입시킨 것은 '조중동'이다. 보수정치세력이 감성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조건에서, 진보정치세력이 새로운 감성정보를 만들어내어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진보정치운동이 힘을 집중해야 하는 것은, 감성정보사업이 아니라 현장조직사업이다. 인터넷공간은 자유주의자들이 이미 선점해버렸다. 저들이 하는 것을 같이 해보자고 하면 항상 아류밖에 안 된다. 우리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바로 현장정치활동이다. 이것은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전략이고 강점이다. 그 길만이 민주노동당이 강화발전되는 길이고, 당면한 재창당의 유일한 활로라고 본다.

민주노동당 재창당은 정치노선 재정립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보는데, 당의 노선 재정립에 있어 사회민주주의도 다른 노선과 함께 포함될 수 있다고 보는가?

먼저 사회민주주의정치노선에 대한 세 가지 점을 명확히 지적해야 한다.

첫째, 반제노선의 포기와 반공노선의 채택이다. 이것이 사회민주주의를 스스로 제약하는 최대결점인데, 만약 민주노동당 내에서 강령논쟁이 붙었으면 이것이 쟁점이 됐어야 한다. 왜 반제노선을 이 사회에서 포기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내놔야 한다. 그러나 내놓을 수 없다. 사회민주주의가 꽃폈다고 하는 스웨덴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굴욕협상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저항하는 이 사회의 대중에게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를 제시하는 것은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

서유럽의 선진국가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노동자, 농민들을 수탈한 물적 기반 위에서 자기 나라의 도시중산층을 육성하고 그들과 노동계급이 타협하게 만듦으로서 사회민주주의체제를 유지했다. 20세기초 공업화된 스웨덴은 아시아, 아프리카 노동자와 농민들을 착취해서 사회민주주의가 가능했다. 자신들도 아류제국주의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반제노선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거다.

둘째,사회민주주의정치세력은 자본주의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을 포기하고 체제안정적 개선만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세력 스스로를 제약하는 지점이다.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은 계급타협에서 온다. 계급타협이 없다면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런 발상을 사회민주주의체제에서 할 수 있는 건 계급타협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셋째, 노동계급 중심성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도시중산층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노동과 자본의 타협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민주주의노선이 가진 한계다.

왼쪽으로는 전통적 사회주의자들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있고, 그 가운데 중도세력이 있다. 중도세력이 없는 나라에서는 민주노동당 같은 진보정당이 나올 수 없다. 한국에서 민주노동당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진보정당이 가능했던 것은 당내 '중도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는 민주노동당 강령에 이미 포함돼 있다. 이 세 정파들이 하나의 진보정당으로 묶여질 수 있는 정치적 '최대공약수'를 찾아내야 한다. 자꾸 갈라놓지 말고 융합하게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강점이 융합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꾸 사회민주주의냐 아니냐 갈라보려고 한다. 민주노동당은 단일정파가 모여서 세운 것이 아닌 만큼 진보대연합정당 같은 그런 개념으로 여러 정파들을 아우르자는 거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통치자로서 능력이 뛰어난 게 아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정권을 잡으니까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권력을 빼버리면 똑같다. 진보정치세력은, 의식은 진보적이지만 집권준비가 안 돼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집권능력이 있어서 집권했을까? 이를테면 고위급정부관료는 교수, 관료출신, 정치인 이 세 부류에서 주로 나오는데 이들이 집권준비가 잘 돼 있어서 고위급정부관료가 되는 게 아니다. 진보정치세력이 고위급정부관료들보다 더 노련한 정치활동능력을 갖추려면, 지금부터 집권연습을 자꾸 해야 한다.

정치나 종교에 관한 사람들의 의식은 하나의 신념체계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바꾸려면 힘이 든다. 보수세력이 감성정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의 의식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지 않으면 그 의식이 새로운 내용으로 바뀌지 않는다. 이번에 일어난 대중저항운동이 입증하는 것처럼, 각계각층 국민대중은 촛불을 들고 저항운동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잘못 생각했던 것을 바꿨다. 그래서 저항운동이 정치교육의 산 현장이라고 말한다. 국민대중의 사상의식은 자연발생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진보정치세력이 방향을 정하고 촉진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COREA21 제15호 2008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