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쉬의 친서외교와 제2단계 조치의 이행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친서외교와 강공외교
2. 사회주의선군정치와 제국주의유화정책의 대결
3. 제2단계 조치의 이행과 지체

1. 친서외교와 강공외교

2007년 12월 2일 늦은 밤 어둠에 잠긴 경기도 오산의 미국 공군기지에 착륙한 특별기에서 미국 합동참모본부 소속 육군대령 한 사람이 내렸다. 그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중국정책보좌관 폴 핸리(Paul Haenle)이다. 그의 서류가방 속에는 몇 시간 전에 백악관 집무실에서 부쉬가 서명한 친서가 들어있었다. 2007년 12월 1일 아침에 친서를 쓴 부쉬는 서울에서 대기하던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에게 자신의 친서를 황급히 전하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12월 5일 크리스토퍼 힐은 평양방문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떠나기 직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쓴 부쉬의 친서를 박의춘 외무상에게 전달하였다.

2007년 12월초 남(한국)사회가 검찰의 김경준 수사에 온통 정신이 팔렸을 때, 서울, 평양, 워싱턴을 잇는 삼각구도의 한 복판에서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그리고 매우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 변화는 부쉬의 친서외교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워싱턴의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에서 동북아시아문제를 연구하는 선임연구원 부르스 클링너(Bruce Klingner)는 2007년 12월 6일 '연합뉴스'와 전화대담을 하면서 부쉬의 친서외교는 "분명히 놀라운 일"이라고 지적하고, "6자회담에서의 진전을 지속하려는 부쉬행정부의 점증하는 우려와 어쩌면 필사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2007년 12월 7일)

비단 클링너만이 아니라 조미관계의 변화동향을 주시하는 모든 분석가들은, 부쉬의 친서외교가 전파를 타고 세상에 알려지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부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쓴 친서는 대통령 문양이 인쇄된 백악관 공식편지지에 적힌 몇 줄의 문장이 전부이지만, 부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쓰기까지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변화를 거듭해왔고, 친서외교 이후에 한(조선)반도의 정세변화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되돌아보면, 부쉬는 2001년 3월 7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당시)에게 "북(조선)이 핵개발과 미사일개발, 무기 밀수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중지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확인하기 전에는 북(조선)의 지도자와 대화할 생각이 없다. 북(조선)은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 핵을 개발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지금도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클린턴정부는 지난 여섯 해 동안 속아왔으나 우리는 절대로 속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비비씨[BBC] 방송 2001년 3월 7일) 부쉬는 그날 한미정상회담에서 내뱉은 자신의 말대로, 조미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버리면서 조미정치회담을 중단하더니, 야만적인 폭언과 독설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조선)에게 퍼붓는 난폭한 행동을 보였다. 그러한 폭언과 독설은 그의 난폭한 성질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야만적인 제국주의적대정책에 따른 정치적 행동이었다.

그런데 지난 여섯 해 동안 그처럼 난폭하게 굴었던 부쉬가 지금은 지난날의 폭언과 독설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친서외교에 나선 것이다. 부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쓴 것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제국주의적대정책이 바뀌고 있음을 드러낸 외교행위이다.

조미관계의 변화동향을 주시하는 분석가들이 한 목소리로 말한 것처럼, 부쉬의 친서외교는 한(조선)반도의 정세에서 하나의 전환적 계기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부쉬의 친서외교를 통해서 드러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변화된 외교행위를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변화시키는 요인이라고 보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것이다. 부쉬의 난폭한 행동을 제어하면서 그의 태도를 바꾸도록 강제한 요인,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제국주의적대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 요인은 따로 있다.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고 있는 변화요인은 부쉬의 친서외교가 아니라, 그를 친서외교의 장으로 끌어내는데 성공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공외교이다. 부쉬를 친서외교의 장으로 끌어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외교를 강공외교라고 표현하는 까닭은, 부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강경한 압박공세에 떠밀려 하는 수 없이 친서를 보냈기 때문이다.

부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강경한 압박공세에 떠밀려 친서외교의 장으로 끌려갔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사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외교담당특파원 글렌 케슬러(Glen Kessler)가 쓴 책 '측근: 콘돌리자 라이스와 부쉬 유산의 조성(The Confidante: Condoleezza Rice and the Creation of the Bush Legacy, 2007년 발간)'에 따르면, 라이스와 그의 보좌관들은 2005년 9월에 열린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선언이 채택된 때로부터 몇 달 동안 북(조선)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포함하는 새로운 대북(조선)정책을 세웠으며 부쉬도 그 정책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케슬러의 지적에서 알 수 있듯이, 부쉬는 9.19 공동선언이 채택된 뒤에도 국무부가 작성한 새로운 대북(조선)정책에 관심이나 보였을 뿐 여전히 제국주의적대정책에 집착하였다. 제국주의적대정책에 대한 집착은 부쉬가 고집쟁이이기 때문이 아니라, "악마와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목청을 높인 부통령 체니(Dick Cheney)와 그의 비서실장 리비(I. Lewis "Scooter" Libby), 국방장관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와 국방차관 월포위츠(Paul Wolfowitz)를 중심으로 결탁한 극우반동관리들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장악하고 제국주의적대정책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부쉬가 제국주의적대정책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제국주의유화정책으로 돌아서기까지에는 9.19 공동선언이 채택된 뒤에도 2007년 9월 1일과 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조미관계정상화를 위한 제2차 실무회담이 열리기까지 일 년이 지나야 하였다. 그 기간 동안 북(조선)이 첨단순항미사일 발사훈련과 비재래식무기 폭발실험을 실시하였던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미국 사회과학연구협의회(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 동북아시아안보협력사업(Northeast Asia Cooperative Security Project) 책임자(Director)인 리언 씨걸(Leon Sigal)이 일본의 월간지 '쥬오고론(中央公論)'과 대담한 2007년 8월 호 기사내용은 주목할 만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2006년 10월 북(조선)이 비재래식무기 폭발실험을 실시한 직후 은밀히 베이징을 찾아간 노회한 외교수완가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가 중국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를 만난 자리에서 부쉬의 친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해달라고 요청하였고, 후진타오는 국무위원 탕자쉬안(唐家璇)을 주석의 특사로 평양에 보내어 부쉬의 친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했는데, 부쉬는 친서에서 핵포기와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비공개로 진행된 것이지만, 부쉬의 친서외교는 2006년 10월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부쉬의 비공개 친서외교가 2006년 10월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북(조선)이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을 경악과 충격으로 몰아넣은 비장의 무기를 폭발한 실험이 부쉬를 친서외교로 끌어낸 결정적인 요인이었음을 입증한다.

나는 지하핵실험으로 세상에 알려진 그 사변에 관한 정보들을 분석하고, 그것이 핵무기보다 차원이 높은 비재래식무기인 고방사능무기(HRW)를 실험한 것이라고 보았는데(통일뉴스 2007년 8월 13일), 북(조선)이 땅속에서 폭발실험을 실시한 고방사능무기는 2002년 10월 4일 평양에서 열린 조미 정치회담에서 조미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버리기 위해서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꺼낸 제임스 켈리(James A. Kelly)에게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말했던 "핵무기보다 더 강력한 무기"이며, 2007년 9월 5일 북(조선)의 유선라디오방송인 제3방송이 언급한 "세계가 깜짝 놀랄 수 있는 무기"(연합뉴스 2007년 10월 12일)이다.

대량파괴무기독점체제를 유지하려는 핵강국들과 이해관계를 같이해온 중국은 북(조선)이 비재래식무기 폭발실험을 실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느낀 나머지 '극악하고 뻔뻔스럽다(flagrant and brazen)'고 비난하였지만(뉴욕타임스 2006년 10월 9일), 북(조선)의 고방사능무기 는 난폭한 부쉬를 제어하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친서외교로 끌어낸 강공외교의 물리력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부쉬의 친서외교에 놀라움을 느낄 것이 아니라,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그를 제어하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친서외교로 끌어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강공외교에 놀라움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2. 사회주의선군정치와 제국주의유화정책의 대결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에 우호적인 내외언론들은 현재 진행 중인 조미관계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북(조선)이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그에 상응하여 미국, 남(한국), 중국, 러시아가 북(조선)에 중유를 제공하는 표피현상을 논한다. 6자회담 합의에 따라 북(조선)에 제공할 중유는 95만 톤인데, 그 가운데서 45만 톤은 국제시가로 2억3천만 달러에 이르는 중유를 매달 5만 톤씩 아홉 달에 걸쳐 제공하고, 나머지 50만 톤은 그에 해당하는 2억 달러 상당의 발전소 설비를 제공하게 된다.

그러나 조미관계의 변화과정에서 핵시설 불능화와 중유제공의 상호교환이라는 표피현상을 논하는 것은, 한(조선)반도 비핵화과정에서 거죽만 바라보고 알맹이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단순무지한 사고의 반영이다. 단순무지한 사고는 북(조선)이 마치 중유나 받아내기 위해서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명백하게도, 북(조선)이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목적은 중유를 받아내는 것이 아니다. 2007년 7월 21일 6자 수석대표회담을 마치고 베이징을 떠나기 직전 기자들의 물음을 받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우리는 중유를 먹는 기생충이 아니다. (미국의 적대)정책을 바꾸자는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그때만이 아니라, 2007년 9월 1일과 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조미관계정상화를 위한 제2차 실무회담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김계관 부상은 "조미관계정상화를 위한 현안들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고 많은 일치를 보았다"고 말하고, 부쉬정부가 제공할 정치적 보상이 무엇인가를 묻는 기자의 물음에 답하면서 "정치적 보상조치란 우리를 적대하는 정책을 바꾼다, 평화공존을 구축하기 위한 제도적, 법률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뜻"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연합뉴스 2007년 9월 3일) 북(조선)의 대미협상단과 언론은 부쉬정부의 적대정책을 바꾸는 것이 북(조선)이 추구하는 목적임을 그처럼 단호한 어조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설명하건만,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에 우호적인 내외언론들은 북(조선)이 추구하는 목적을 명확하게 논하지 않고 있다.

정치적 시야를 넓혀서 조미관계의 변화를 바라보면, 부쉬정부가 제국주의적대정책을 바꾼다는 말은 아래와 같이 여러 각도에서 해석될 수 있다.

2-1) 부쉬정부의 시각에서 보면, 적대정책의 전환은 제국주의적대정책을 제국주의유화정책으로 바꾼다는 뜻이다. 제국주의유화정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평화체제 구축, 조미국교수립이 순차적으로 실현될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이 대북(조선)관계에서 제국주의적대정책을 거두고 제국주의유화정책을 취한다고 해서 한(조선)반도의 정세에서 자주적 사회주의 대 반동적 제국주의의 대결구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오래된 대결구도는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이 존재하는 한, 다시 말해서 제국주의세계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이 대북(조선)관계에서 제국주의유화정책을 취한 뒤에도 여전히 남아있게 될 자주적 사회주의 대 반동적 제국주의의 대결구도는 새로운 대결양상을 띄게 될 것이다.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이 조미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끌려 들어갈 때, 자주적 사회주의 대 반동적 제국주의의 대결구도에서는 사회주의선군정치와 제국주의유화정책이 맞서게 될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비핵화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련의 정세변화들, 다시 말해서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평화체제 구축, 조미국교수립이 순차적으로 실현되는 정세변화는 사회주의선군정치 대 제국주의유화정책의 대결양상을 띄게 될 것이다.

2-2) 부쉬정부가 제국주의적대정책을 제국주의유화정책으로 바꾸는 것은 자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북(조선)의 반제공세에 밀려 강제되는 행동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제국주의적대정책을 제국주의유화정책으로 바꾸도록 강제하는 북(조선)의 반제공세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결집한 진보정치연합(통일전선)에서 전개되는 남(한국)의 반제투쟁과 달리, 북(조선)의 반제공세는 반제군사전선을 앞세운 가운데 전개된다. 북(조선)이 2006년 7월에 실시한 첨단순항미사일 발사훈련이나 10월에 실시한 고방사능무기 폭발실험은, 명백하게도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에 가한 반제군사전선의 압박공세였다.

긴장된 준전시상태에서 제국주의전쟁광들과 대치하는 북(조선)의 반제군사전선은 사회주의선군정치에 의해서 구축된 것이다. 반제군사전선은 사회주의선군정치가 실시되기 전에도 구축되어 있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창시한 사회주의선군정치에 의해서 한층 더 공고화되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반제군사전선이 사회주의선군정치에 의해서 더욱 공고하게 구축된 것은, 북(조선)의 반제역량이 더욱 강화되었음을 뜻한다. 북(조선)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를 압박하여 제국주의적대정책을 제국주의유화정책으로 바꿀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 것은, 사회주의선군정치에 의해서 강화된 반제역량을 발휘하여 반제공세를 가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은 한(조선)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겠으며, 한(조선)반도에서 나라의 통일이 실현되어도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겠다고 공언함으로써 제국주의유화정책의 본질을 드러냈다.

그에 대응하여 북(조선)은 한(조선)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에, 그리고 나라의 통일이 실현된 이후에도 반제군사전선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북(조선)은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수행할 민주주의혁명을 좌절시키려는 제국주의반동정권의 군사적 개입에 대비하여 반제군사전선을 유지할 것이며, 한(조선)반도에 세워질 통일국가 역시 제국주의반동정권의 지속적인 위협으로부터 나라의 자주권을 지키고 나라의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반제군사전선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2-3) 워싱턴의 제국주의정권이 수행할 제국주의유화정책은 한(조선)반도에서 나라의 통일을 방해하거나 저지하려는 정책이지만, 북(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제국주의적대정책이 제국주의유화정책으로 바뀌는 것은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기에 유리하게 조미관계를 바꾸어놓는 것이다.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평화체제 구축, 조미국교수립으로 이어질 순차적 과정, 다시 말해서 조미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관계정상화과정은, 남과 북(북과 남)이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상설협의기구를 창설하고 그 기구에서 합의한 통일방안을 실현해 가는 남북(북남)관계의 정상화과정과 서로 맞물리게 될 것이고, 조미관계와 남북(북남)관계가 서로 맞물려 정상화되면 나라의 통일이 실현될 것이다.

나라의 통일은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실현되는 역사적 위업임이 명백하지만, 나라의 통일문제와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나라의 통일문제와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문제의 상호연결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남북(북남)관계가 비정상화된 원인은 분단체제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분단된 나라의 남측에 나라의 통일을 반대하는 신식민주의정권이 세워지고 분단된 나라의 북측에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려는 사회주의정권이 세워진 것은, 분단체제가 형성되고 유지되어온 근본원인이다.

그러므로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남북(북남)의 정치적 합의에 기초한 통일정부를 세우는 것, 오직 그것을 뜻한다. 새로운 통일정부 수립은 기존의 두 정부를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제를 실현하여 새로운 통일정부를 내오는 것이다.

여기서 나서는 문제는, 남측의 신식민주의정권이 새로운 통일정부의 수립을 전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새로운 통일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신식민주의정권이 존속하는 한, 남북(북남)관계에서 교류협력이 발전하고 정부당국회담을 백년동안 계속 진행해도 새로운 통일정부를 세울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신식민주의정권이 통일정책을 추진하는 자주적 민주정권으로 교체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진보정당이 집권하여 신식민주의정권을 자주적 민주정권으로 교체하는 것은 신식민주의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신식민주의체제의 붕괴는 제국주의점령군과 '국가보안법'에 의해서 유지되어온 기존의 한미관계가 진보정당의 집권에 의해서 완전히 끊어지는 것이다.

물론 신식민주의체제는 제국주의점령군이 철군하고 '국가보안법'이 철폐되는 것만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밀고 나가는 민주주의혁명이 전략적 승리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무너질 것이다. 민주주의혁명의 시각에서 볼 때 제국주의점령군 철군과 '국가보안법' 철폐가 신식민주의체제의 붕괴를 촉진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된다면, 나라의 통일의 시각에서 볼 때는 제국주의점령군 철군과 '국가보안법' 철폐가 새로운 통일정부의 수립을 촉진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된다.

북(조선)이 조미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까닭은, 조미관계 정상화야말로 북측이 자기 영토의 절반으로 인정하는 남측을 강점한 제국주의점령군을 철군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조건으로 되기 때문이다. 만일 조미관계를 정상화하여도 제국주의점령군을 철군시킬 수 없다면, 북(조선)이 조미관계를 정상화할 아무런 요구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조미관계 정상화의 정치적 의미 자체만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국제정치학의 비좁은 시야에서 벗어나서, 제국주의점령군 철군, 신식민주의체제 붕괴, 진보정당 집권, 새로운 통일정부 수립, 나라의 통일 실현으로 이어지는 한(조선)반도 정세변화의 과정 속에서 조미관계 정상화의 의미를 인식하는 통일학의 관점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또한 북측이 남측에게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는 까닭은, 그 법을 철폐하는 것이야말로 그 법이 안전을 보장해주는 신식민주의체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조건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측에서 진보정당이 집권하기 전에는 '국가보안법'을 없앨 수 없으므로, 남북(북남)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 철폐문제를 선결해야 한다는 원칙론에 머무르게 되면 진보정당이 집권하기 이전에 남북(북남)관계가 발전될 수 없다는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북측은 남측에서 진보정당이 집권할 때까지 남북(북남)관계의 발전을 무작정 미루는 것이 아니라, 남북(북남)관계의 정치적 발전을 적극적으로 추동함으로써 '국가보안법'을 묶어버리는 무력화전술을 밀고 나가는 중이다.

2-4) 제국주의유화정책은 북(조선)을 개혁개방으로 끌어내어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들여보냄으로써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을 방해하거나 저지하려는 정책이다.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과 그 추종세력들이 북(조선)에게 요구하는 개혁개방이란 과감한 자본주의적 개혁과 급속한 시장경제로의 이행에 나서라는 반사회주의적 요구이다.

기존의 제국주의적대정책을 새로운 제국주의유화정책으로 바꾸는 전환과정에서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과 그 추종세력들이 제국주의인권공세를 준비하기 시작하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7년 12월 12일 세계인권의 날을 맞아 발표한 대통령 성명에서 부쉬는 북(조선)과 다른 여섯 나라를 이른바 '인권탄압국'으로 지목하였다. (연합뉴스 2007년 12월 11일) 부쉬의 성명에서는 유화정책의 간판 아래서 인권공세로 압박하면서 개혁개방요구를 관철해보겠다는 의도가 드러나 보인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제국주의유화정책은 개혁개방요구와 인권공세 위에 성립하는 반사회주의정책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북(조선)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창시한 사회주의선군정치가 실시되고 있으므로, 북(조선)이 제국주의유화정책이 요구하는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사회주의자력갱생을 변함없이 추구할 것이고 인권공세를 차단하고 사회주의강성대국 건설로 나아가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북(조선)은 개혁개방이라는 말 자체를 쓰지 않고 있지만, 만일 북(조선)이 사회주의식 개혁개방을 추구한다면 그 목표는 제국주의유화정책이 요구하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도입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력갱생이 요구하는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완성이다. 또한 제국주의인권공세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북(조선)이 실현하려는 '인간의 권리'는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요구하는 '인권'이 아니라 사회주의강성대국에서 살아갈 인민대중이 요구하는 인권이다.

사회주의선군정치와 제국주의유화정책의 대결에서 후자가 전자를 이길 수 없는 까닭은 사회주의선군정치가 이미 제국주의적대정책을 좌절시킨 강한 힘을 지녔음을 현실로 입증하였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유화정책은 개혁개방요구와 인권공세에 집중하겠지만, 조미관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적대정책을 좌절시킨 사회주의선군정치의 공세에 밀려 결국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다.

3. 제2단계 조치의 이행과 지체

2007년 9월 6일 이스라엘 공군기들이 시리아 북부의 목표물을 폭격하고, 곧이어 북(조선)이 시리아의 핵개발과 미사일개발을 도와주었다는 핵확산의혹이 제기되었으나, 2007년 9월 11일 미국 국무부 코리아과장을 단장으로 한 부쉬정부의 핵시설 불능화 실무단이 판문점을 지나 육로로 방북하여 영변 핵시설을 둘러보았고,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에서는 6자회담이 열렸다. 그 회담에서는 2007년 2월에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초기조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제2단계 조치를 합의하였다.

2007년 10월 3일 부쉬는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제2단계 조치를 반기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10월 22일에는 북(조선)의 핵시설 불능화에 상응하는 경제보상조치를 위하여 연방의회에 정부예산 1억600만 달러를 요청하였다.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제3차 경제 및 에너지협력 실무회의에서 중유 45만 톤과 비중유 50만 톤을 북(조선)에 보내기로 합의하였던 10월 30일, 그리고 국제해사국(IBM)의 긴급구조요청을 받은 미국 해군 제5함대 사령부가 소말리아 연안에 출몰한 무장해적들과 함상격투를 벌이던 북(조선) 화물선 대홍단호를 도와주기 위해서 구축함 제임스 이(E) 윌리엄스호를 급파하였던 10월 30일, 중유를 실은 유조선이 북(조선) 항구에 들어섰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부쉬정부가 2002년에 고농축우라늄 의혹을 제기하면서 조미기본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뜨리고 중유공급을 끊었던 때로부터 다섯 해만에 일어난 것이다. 2007년 11월 3일 부쉬정부의 실무단은 영변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작업을 개시하였다.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제2단계 조치를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제국주의유화정책의 첫 공정은 테러지원국 지정해제이다. 부쉬정부가 북(조선)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하면 무기수출통제법, 수출관리법, 국제금융기관법, 대외원조법, 적성국교역법을 북(조선)에게 들이대며 가해왔던 제국주의경제제재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부쉬정부가 북(조선)에 대한 제국주의경제제재를 포기해도, 북(조선)은 제국주의금융자본으로부터 차관을 받지 않을 것이다. 북(조선)이 제국주의금융자본으로부터 차관을 받으려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과 경제정책을 협의하고 빈곤감소전략보고서, 국가지원전략보고서를 공동으로 작성하고 1년에서 3년에 이르는 기간 안에 그 전략보고서를 실행에 옮긴 뒤에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으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북(조선)이 사회주의자력갱생노선을 접어두고 제국주의금융자본의 그러한 요구를 받아들일 리는 없다.

관심을 끈 것은,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제2단계 조치를 합의하였던 6자회담 중에 조미 두 나라가 따로 양자회담을 갖고 '일련의 별도 양해사항(series of side understandings)'을 합의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양해사항은 비공개로 합의한 것이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크리스토퍼 힐이 6자회담 결과와 이행사항을 미국 연방의회에 보고하였던 2007년 10월 4일에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아주 분명한 이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빠르게 움직이려고 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면 분명한 내용이 담겨진 양해사항인 것으로 보인다. 나는 조미 두 나라가 합의한 양해사항이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논한 대로, 북(조선)은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는 문제보다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는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부쉬가 독일 텔레비전방송(RTL)과 대담하면서 임기의 마지막 일년 동안 세 가지 중요한 임무가 무엇이냐고 묻는 물음을 받자 "남(한국), 중국, 일본과 공동으로 북(조선)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극동에서 건설적인 선린관계를 확고히 유지할 수 있도록 외교정책에 집중할 것"이라고 대답하였던 2007년 11월 7일, 워싱턴에서는 국무장관 라이스의 요청으로 한미외무장관 단독회담이 40분 동안 진행되었다. 단독회담을 마친 외교통상부장관 송민순은 기자들에게 "현재 진행중인 북한 핵시설 불능화를 촉진시키는데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7년 11월 8일) 송민순이 말한 직접적인 역할이란 남(한국)정부당국이 2007년 11월 29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와 김양건 통일전선부 부장의 동시서울방문을 추진한 것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김양건 부장의 방남일정은 남측의 산업시설을 돌아보는 것으로 짜여졌으나, 통일전선부는 산업시설을 시찰하는 부서가 아니다. 김양건 부장의 방남목적은 산업시설 시찰이 아니라, 청와대 안보실장을 사이에 두고 간접적으로 크리스토퍼 힐과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었다. 김양건 부장은 서울에 도착한 날 밤시간을 이용하여 청와대 안보실장 백종천,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 박선원과 비공개회담을 가졌다. 그 회담에서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을 개최하기 위한 남북(북남)의 의견이 조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쉬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썼던 2007년 12월 1일 김양건 부장은 에스케이 텔레콤(SK Telecom) 사옥을 참관하는 오후 일정을 갑자기 취소하고 통일부장관과 차관, 국정원 원장과 3차장과 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출발예정시간보다 두 시간이 늦은 오후 7시35분께 숙소를 떠나면서 "모든 일이 잘 됐습니다"고 말했다.

김양건 부장이 서울을 떠나 평양으로 돌아간 날 청와대 대변인 천호성은 기자에게 "현재 남측을 방문 중인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은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 이전이라도 4자 정상선언을 할 수 있다는 우리측 입장에 공감을 표시하였다.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은 이런 북한의 입장을 미국 측에 전달하고 협의할 것으로 안다. 남북은 북핵폐기과정과 이를 추동할 수 있는 4자 정상선언이 병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7년 12월 1일)

김양건-백종천 회담에서는 한(조선)반도 평화회담을 북(조선)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늦추지 말고 이른 시일 안에 개시하자고 합의한 것이다. 그 합의사항은 당시 서울에 대기 중이던 힐에게 전달되었고, 힐은 기다렸다는 듯이 백악관에 보고하였다. 힐의 보고를 받은 부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친서를 써서 급히 힐에게 전하였고, 힐은 부쉬의 친서를 들고 방북길에 올랐다. 11월 29일 김양건 부장과 회담하였던 청와대 안보실장 백종천은 2007년 12월 4일 오전 워싱턴으로 날아가서 국무부 청사에서 국무장관 라이스와 회담하였고, 곧이어 백악관으로 이동하여 국가안보보좌관 스티븐 해들리(Stephen J. Hadley)와 회담하였다. 그를 수행한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 박선원은 "북핵폐기과정에서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다는데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등과 합의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7년 12월 4일)

힐이 평양을 떠나던 12월 5일, 비행장에서 그를 전송하였던 외무성 미국국장 리근은 조선신보 기자에게 "(2.13 합의) 2단계 조치를 어떻게 마무리하는가를 구체적으로 합의하였다. 조미 쌍방이 3일 간에 걸쳐 진지하고 깊이있는 의견교환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이 재확인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은 만족했을 것이고 우리측도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신보 2007년 12월 5일)

조미 두 나라가 모두 회담결과를 만족했다는 말처럼 조미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이 북(조선)에게 이른바 '완전한 신고'를 요구하는 바람에 관계개선이 지체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7년 12월 12일 미국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비공개 청문회에서 크리스토퍼 힐이 설명한 바에 따르면, 북(조선)은 무기급 플루토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밝히라는 부쉬정부의 '완전한 신고'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붕 2007년 12월 13일) 부쉬정부가 북(조선)에게 '완전한 신고'를 요구하였으나 북(조선)이 그 요구를 거부한 정황은, 2007년 12월 6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 골든 존드로우(Gordon Johndroe)가 정례언론설명을 통해 부쉬의 친서에 "충분하고 완전한 핵 프로그램 신고를 촉구"하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밝힌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연합뉴스 2007년 12월 6일)

2007년 12월 12일 국무장관 라이스가 자기 집무실에서 에이피(AP)통신과 회견할 때, 지금 조미관계가 개선되는 조짐은 보이지만 미국이 북(조선)과 '폭넓은 관계개선'을 준비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 것은 조미 두 나라가 이른바 '완전한 신고'에 관한 문제를 놓고 맞서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북(조선)이 '완전한 신고'를 지연하기 때문에 '폭넓은 관계개선'이 지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무기급 플루토늄의 용도를 밝히라는 것은 핵탄두 보유량을 밝히라는 요구이므로, 북(조선)이 그러한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고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량만 밝히겠다고 통보한 것은 정당한 것이다. 북(조선)이 자국의 핵탄두 보유량을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므로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이 북(조선)에게 '완전한 신고'를 요구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행동이다.

핵시설 불능화,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한(조선)반도 평화회담 개시가 이루어지지만 조미 두 나라가 아직 적대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2단계에서 북(조선)이 핵탄두 보유량을 밝히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핵탄두 보유량을 밝히는 것은, 북(조선)이 핵탄두를 해체하고 그에 상응하여 미국이 제국주의점령군을 전면적으로 철군함으로써 조미 두 나라가 적대관계에서 벗어나는 한(조선)반도 비핵화의 마지막 단계인 제3단계에 들어가서나 가능할 것이다.

이처럼 워싱턴의 제국주의정권이 가당치 않은 요구를 들이대면서 조미관계의 개선속도를 늦추고 있지만, 난관과 역경의 고비를 수없이 넘어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진해온 북(조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제2단계 조치를 성과적으로 마무리하고 나서 마지막 조치인 제3단계 조치를 향해 나아가는 북(조선)의 발걸음을 가로막을 장애물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07년 12월 16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