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퇴하는 중산층, 보수적인 노동계급, 무기력한 진보정당

한호석
민주노동당 미국동부위원회 위원장

<차례>
1. 복잡해진 사회계급구성과 사회변혁의 새로운 공식
2. 사회가 양극화되고 중산층이 쇠퇴하다
3. 보수적인 노동계급과 무기력한 진보정당

1. 복잡해진 사회계급구성과 사회변혁의 새로운 공식

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을 만큼 당연한 말이지만, 지배와 착취와 소외를 당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일으켜, 그들의 힘을 진보정치활동과 사회변혁운동으로 결집시키는 정치조직을 진보정당이라 한다. 그리하여 진보정당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활과 투쟁 속에서, 오직 그 속에서만 자기의 존재의의를 찾으며 자기의 운명을 개척한다.

진보정당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라는 두 개념이다. 노동계급이라는 개념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명확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급이란 공장과 기업에서 사회적 생산노동의 책임을 떠맡은 유일한, 그리고 단일한 사회집단이다. 그들의 생산노동에 의해서 철강과 시멘트, 전기와 석유가 생겨나고, 반도체와 전자제품, 섬유와 종이가 만들어지며, 자동차와 선박과 항공기가 제조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생산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사회집단을 노동계급이라 한다.

노동계급이 생산직 노동자들의 단일한 사회집단인 것과 대조적으로 근로대중은 여러 부문에서 서로 다른 경제활동을 하는 여러 사회집단들이다. 근로대중은 농민, 도시자영업자, 사무직 노동자, 전문기술직 종사자, 행정관리직 종사자, 각종 서비스업 종사자 등 여러 사회집단들의 총칭이다. 생산부문과 비생산부문에 두루 걸쳐 있어서 아무런 공통성도 갖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여러 사회집단들을 근로대중이라는 개념으로 묶을 수 있는 까닭은, 그 사회집단들이 노동하는 사회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회적 관계가 생산노동이건 비생산노동이건 간에 노동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형성되었으므로 그들을 근로대중이라는 개념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구호에 나오는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개념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모두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인데, 이 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개념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라고 풀어서 쓰는 까닭은, 노동계급도 넓은 의미의 근로대중에 포함되지만, 노동계급을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유일하고 단일한 사회집단으로 구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에게서 노동력을 사들여 생산활동을 지배하고 그들이 생산한 잉여가치를 착취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근로대중이 생산한 이윤을 수탈하는 반동적인 사회집단이 있나니, 그들을 자본계급이라 한다. 오늘의 자본계급은 단일한 사회집단이 아니다. 특히 신식민주의체제의 사회계급구성이 복잡해지면서 자본계급은 일정한 변화를 겪었다. 신식민주의체제에서 자본계급의 변화는 두 갈래 뜻을 지닌다.

첫째, 중소자본이 영세화된다는 뜻이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신식민주의체제의 금융시장을 지배, 장악하면 신식민주의체제의 대자본은 제국주의독점자본에 기생하여 살아남는 반면, 제국주의독점자본에 기생할 자금력과 기술력이 없는 중소자본은 쇠퇴하거나 몰락하게 되나니, 이를 중소자본의 영세화라 한다. 중소자본이 영세화하면, 자본계급에 속한 소자본가들과 중산층에 속한 도시자영업자들의 경계가 무너져 양자의 차이를 거의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도시자영업자가 양적으로 늘어나는 까닭은, 중소자본이 쇠퇴하면서 영세화하기 때문이다.

둘째,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고 자본가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이른바 기능자본가들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시장지배력을 틀어쥔 신식민주의체제에서는 제국주의독점자본과 벌이는 경쟁에서 패하여 제국주의독점자본에게 생산수단을 팔아 넘기고 제국주의독점자본에게 고용된, 그리하여 제국주의독점자본에게 기생하면서 생산활동을 지배하는 기능자본가들이 생겨나는데, 그들을 '최고경영인(CEO)'이라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의 계급관계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있고, 그들을 억압, 착취하는 자본계급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 노동계급도 자본계급도 아니고, 그렇다고 근로대중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또 다른 사회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회집단은 중산층이다.

첫째, 중산층과 근로대중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근로대중의 중심은 농민인데, 농민은 중산층에 들어가지 않는다. 신식민주의체제에서 농민이 중산층에 들어가지 않는 까닭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논한다.

둘째, 중산층에는 노동계급의 일부가 포함된다. 명백하게도, 우리 사회에서 노동계급 상층은 중산층에 속한다. 노동계급 상층은 사무직 노동자, 전문기술직 종사자, 행정관리직 종사자들로 이루어졌고, 그 하층은 생산직 노동자, 단순노무직 종사자들로 이루어졌다. 사무직 노동자, 전문기술직 종사자, 행정관리직 종사자를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계급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노동계급을 상층과 하층으로 갈라놓은 임금격차와 온갖 차별은 심해졌다. 노동계급 상층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였기에 자본계급에게 자기의 노동력을 파는 임금노동자임이 분명하지만, 전통적인 노동계급의 범주에서 벗어나 중산층으로 편입되었다. 사무직 노동자, 전문기술직 종사자, 행정관리직 종사자는 노동계급이 아니라 신흥중산층이다.

셋째, 중산층과 중간계급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지난 시기에는 자본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 존재하는 농민과 소상품생산자를 중간계급이라 하였으나 오늘의 현실은 달라졌다. 제조부문보다 서비스부문이 크게 늘어난 오늘, 전통적인 의미의 소상품생산자는 몰락하여 더 이상 중간계급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새로 생겨난 사회집단은 도소매업, 요식업, 숙박업, 부동산업, 오락문화업, 운수업, 보관업 등 여러 유형의 비생산부문에서 노동하는 도시자영업자들이다. 우리 사회의 도시자영업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도소매업이고, 요식업, 숙박업, 각종 서비스업이 그 뒤를 잇는다. 우리 사회의 도시자영업자 비율은 34.0%(2004년)나 되는데, 일본 15.9%(2002년), 영국 11.3%(2002년), 미국 7.2%(2002년)보다 훨씬 높다. 우리 사회에서 도시자영업자는 농민보다 훨씬 많다. 소상품생산자를 전통중산층이라 한다면, 도시자영업자는 신흥중산층이라 할 수 있다. 도시자영업자들만이 아니라 사무직 노동자, 전문기술직 종사자, 행정관리직 종사자 등 노동계급 상층도 신흥중산층이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그 관계를 유지, 통제하는 국가기구도 비대해졌다. 중앙정부가 확장되고, 지방자치제가 발달하고, 공공부문이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비대해진 국가기구와 공공부문을 유지, 경영하기 위해서 더 많은 인적 자원이 요구되었으니 공무원과 공공부문 종사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가기구와 공공부문에서 요구하는 노동력은 단순노무직 종사자가 아니라 사무직 노동자, 전문기술직 종사자, 행정관리직 종사자이다. 공무원과 공공부문 종사자들 역시 신흥중산층이다.

이처럼 도시자영업자, 사무직 노동자, 전문기술직 종사자, 행정관리직 종사자들이 많아지자, 농민과 소상품생산자를 뜻하는 중간계급이라는 개념은 의미를 잃고 말았다. 그 대신, 소상품생산자를 전통중산층으로, 그리고 도시자영업자, 사무직 노동자, 전문기술직 종사자, 행정관리직 종사자를 신흥중산층으로 각각 구분하는 중산층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겨났다. 오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신식민주의사회계급구성에서 전통중산층은 차츰 줄어들고, 신흥중산층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가 일반적이다. 특히 우리 사회는 전통중산층이 쇠퇴, 몰락하고 신흥중산층이 매우 빠르게 늘어난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이처럼 신식민주의사회계급구성에서 변동이 일어나자, 이전 시기에 중간계급의 중심을 차지하였던 농민의 구성과 지위도 달라졌다. 사회계급의 분화와 변동이 일어나기 이전 시기의 농민은 부농, 중농, 빈농, 소작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부농은 대체로 소작농을 착취하는 봉건지주들이었으나, 오늘 우리 사회에는 봉건적 착취관계를 유지하는 지주와 소작농은 없으며, 중농과 빈농이 남아있다. 중농과 빈농은 자영농이다. 자영농 가운데는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지으면서 부재지주에게 농지임차료를 내는 임차농이 있는데, 부재지주와 임차농의 관계는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가 아니며, 농지임대와 소작제는 전혀 다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자영농은 농산물시장에 농업생산물을 판매하는 것을 목적으로 농업생산활동을 하는 출하농민과 자급을 목적으로 농업생산활동을 하는 자급농민으로 구분된다.

신자유주의세계화의 직격탄을 맞고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의 고통과 불행을 겪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노동계급의 가장 믿음직한 동맹자로 나서는 사회집단은 역시 농민이다. 출하농민이건 자급농민이건 가릴 것 없이 모든 농민은, 신자유주의세계화가 몰고 온 농업시장개방과 농업기반파괴라는 재앙을 겪는 중이다. 신식민주의농정파탄으로 오랫동안 억압과 수탈을 당해오면서 그 체제에 대한 저항의지를 키워왔다는 점에서, 농민은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의 중간지대에서 사회변혁의 전망을 찾지 못해 오락가락하는 중산층이 아니라 사회변혁의 길에서 노동계급과 정치적으로 연합하는 가장 믿음직한 동맹자로 된다. 그러므로 신식민주의사회변혁에서 농민을 종래의 중간계급으로 보거나 중산층에 넣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자료에 따르면, 오늘 우리 사회의 계급구성비는 노동계급 32.5%, 농민 13.7%, 중산층 53.6%, 자본계급 0.18%로 나타난다. 중산층 구성비를 보면, 도시자영업자가 26.1%이고, 사무직 노동자, 전문기술직 종사자, 행정관리직 종사자가 27.5%이다. 이러한 사회계급구성비가 말해주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중산층은 여러 구성인자들로 이루어졌으므로 분산적이며 결합력이 약하다. 분산적 사회집단으로서 결합력이 약하여 정치적 독자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에 집권세력에게 의존하려는 성향이 있다. 집권세력에게 의존하는 중산층은 정세변화에 따라 자본계급과 노동계급 사이를 오가며 동요하기 마련이다. 정치역학관계로 말하자면, 중도개혁세력이 집권하면 중산층은 그 세력의 지지기반으로 행세하고, 수구반동세력이 집권하면 중산층은 중도개혁세력과 헤어져 수구반동세력에게 의존한다.

둘째, 우리 사회에서 노동계급은 중산층보다 훨씬 적으며, 민주노조에 망라되어 진보의식화된 노동계급은 그야말로 소수 중의 소수이다. 농민은 도시자영업자보다 수가 적으며 차츰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에 비해서, 중산층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대한 사회집단이다. 위의 통계를 보면, 중산층의 구성비는 노동계급과 농민을 합친 구성비보다 7.4% 포인트가 더 많다. 1970년대 중반 서독의 사회계급구성비가 자본계급 3.2%, 중산층 24%, 노동계급과 농민 72.8%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중산층이 매우 비대하다는 점을 직감할 수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중산층이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비대해진 경우는 우리 사회가 아니면 찾기 힘들다. 이것은 이 땅의 사회변혁이 세 대륙에 있는 여러 나라들에서 일어나는 사회변혁과는 다른 경로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다.

위에서 지적한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전체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절반을 차지하는 중산층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노동계급과 농민의 힘만 가지고 사회변혁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고 낙관하는 것은 고정관념이 빚어낸 인식착오라고 말할 수 있다.

자본주의산업화가 미진하여 농민이 사회계급구성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였던 지난 시기에, 봉건지주는 제거하고 중농은 중립화하며 빈농과 소작농은 노동계급과 정치적으로 연합하는 노농동맹전략이 사회변혁의 기본공식으로 되었다.

그러나 노농동맹전략이라는 기본공식은 너무 오래되어서 오늘 우리의 사회변혁운동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전략이 아니다. 21세기 민주주의혁명은 노농동맹의 기본역량에 의거하면서 중산층의 지지와 참여까지 이끌어내는 사회변혁의 새로운 공식을 요구한다. 그 새로운 공식을 가리켜 어떤 이는 진보정치연합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통일전선이라고도 하나니, 말이 다를 뿐 뜻은 서로 같다.

사회계급구성이 복잡해진 신식민주의체제에서 진보변혁세력이 동요하는 중산층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은, 진보정당의 집권과 민주주의혁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전략문제이다. 중산층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진보정당은 집권하지 못한다. 진보정당이 집권하고 민주주의혁명이 승리하려면, 계급적 중심성과 대중적 기반을 결합하고 중산층의 지지와 참여까지 이끌어내는 폭넓은 진보정치연합을 반드시 건설해야 한다. 노동계급과 농민이 정치적으로 연합할 뿐 아니라, 중산층의 지지와 참여까지 이끌어내는 폭넓은 진보정치연합을 건설하는 것, 다시 말해서 노동계급과 각계층 근로대중이 결집하는 새로운 유형의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21세기 민주주의혁명의 필수적 요구이다.

진보정당은 중산층을 외면한 채 노동계급과 농민의 힘만으로 사회변혁의 승리를 이루어낼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넘어서야 하거늘, 신식민주의체제를 변혁하려는 진보정당의 집권전략과 정강정책은 중산층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낼 뚜렷한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율이 10%대를 밑도는 정체상태에 빠진 원인은, 여러 갈래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그 정당의 집권전략과 정강정책이 주로 노동계급과 농민에게 집중되고 중산층의 전략적 중요성을 경시하는 데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2. 사회가 양극화되고 중산층이 쇠퇴하다

1997년 11월에 일어난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은 우리 사회에 아물지 않는 치명상을 입혔다. 당시 아슬아슬한 표차로 집권에 성공한 김대중 정부는, 살아날 가망이 보이지 않아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경제를 되살려보려고 제국주의독점자본에게 '구제금융'을 간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국주의독점자본이 빌려준 '구제금융'은 경제파탄을 극복하기는커녕 경제예속을 더욱 심화시키는 반동적인 조치였다.

국제통화기금의 요구에 자발적으로 굴종한 김대중 정부가 그 요구대로 취했던 비상조치는 이른바 '개혁강령'으로 모습을 드러내었으니, 그 강령의 골자는 경제의 안정화와 기업의 구조조정이다. '개혁강령'이 요구한 경제의 안정화란 고금리정책, 자본시장 전면개방, 금융기관 감독기준 강화를 뜻하고, 기업의 구조조정이란 부실금융기관 퇴출, 기업의 부채비율 감소, 기업의 차입의존 감소, 기업의 경영투명성 강화, 상호지급보증제 폐지, 업종의 전문화, 공기업의 민영화, 정리해고제 도입을 뜻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국제통화기금이 김대중 정부에게 요구한 것은 '개혁강령'이라는 간판을 든 제국주의독점자본이 마구 밀고 들어와서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의 위기를 신식민주의경제예속의 심화로 구조조정한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외환위기라고 세상에 알려진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은 신식민주의경제예속을 더욱 심화시킨 결정적인 계기로 되었다.

제국주의독점자본이 국제통화기금을 앞세워 '구제금융'을 빌려준 것이 신식민주의경제예속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말은, 거덜나버린 경제를 살려주는 대가로 제국주의독점자본이 대량수탈을 자행하기 시작하였다는 뜻이다. 국제통화기금의 '개혁강령'에 따라 김대중 정부가 취한 비상조치들이 한결같이 제국주의독점자본에게 대량수탈의 길을 터주는 반동적인 조치였다는 사실은, 그 비상조치가 취해진 이후 10년을 지나오는 사이에 우리 사회가 너무도 뼈아프게 경험해온 그대로이다.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1997년 12월 3일부터 불과 삼 년밖에 되지 않은 2000년 12월 4일, 김대중 정부가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에서 벗어났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한 것은,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의 위기를 신식민주의경제예속의 심화로 구조조정하는 개편작업을 삼 년만에 끝내고 본격적인 대량수탈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음을 뜻한다.

우리 사회가 지난 10년 동안 뼈저리게 겪어온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은 대량실업과 비정규직 확산, 직장폐쇄와 연쇄파산, 물가인상과 투기폭증, 실질임금 하락과 생존권 박탈, 가정해체와 흉악범죄 급증 같은 견디기 힘든 재앙을 들씌웠다. 언론보도에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온갖 사건소식, 사고소식들은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의 고통과 절망에 잠겨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준다. 우리 사회가 잠겨있는 고통과 절망은 세상을 통째로 바꾸는 사회변혁이 아니고서는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너무 오랫동안 이어지고 너무 깊어졌다.

그런데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견디기 힘든 재앙을 들씌운 것과는 정반대로, 제국주의독점자본에 기생함으로써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의 위기를 넘긴 자본계급은 기업확장, 이윤확대, 자산증식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성공신화의 호기를 모조리 거머쥘 수 있었다. 2007년 8월 현재 우리 사회에서 1천억 원 이상 가진 자산가들이 1천500명이 있고, 10억 원 이상 가진 자산가들은 9만9천명이 있는데, 그들의 수는 2006년에 비해 14.1%가 늘어났다.

이처럼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재앙을 들씌우고 자본계급에게 번영을 안겨준 결과,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 일어났으니 그것을 사회의 양극화(bi-polarization)라 한다. 미국사회와 영국사회의 양극화 지수가 15-20년 동안 17-26%로 나타나는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던 것에 비해, 우리 사회의 양극화 지수는 신식민주의경제파탄 6년만에 111%를 기록하는 엄청난 증가세를 보였다. 1987년을 전후하여 신흥공업국의 고속성장을 이루었노라고 자랑삼아 말하였던 우리 사회는 그로부터 불과 10년만에 풍요한 소수와 궁핍한 다수로 갈라진 양극화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으니, 오늘날 근로소득의 불평등구조는 상위 20% 대 나머지 80%로 고착되었으며 빈부격차가 대를 이어 세습되고 있다. 자본주의언론시장을 떠도는 엉터리 지식인들은 사회의 양극화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내뱉고 있지만, 그 신조어가 가리키는 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의 고통과 불행을 마구 들씌우는 야만적인 현실이다. 제국주의독점자본과 신식민주의예속자본의 착취와 수탈이 가중되어 근로소득의 불평등구조가 20 대 80으로 고착되고 빈부격차가 세습되는 신식민주의체제에서는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려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경제회생책으로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으며, 신식민주의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

원래 사회의 양극화는 사회계급의 양극화를 뜻하는 말이었다. 사회계급의 양극화란 자본계급과 노동계급 사이에 있는 중간계급이 분해되어 노동계급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중간계급의 분해라는 말은, 우리 사회의 경우에 중산층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다. 만일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산층이 몰락하여 노동계급으로 편입되면, 사회계급구성은 가운데가 불룩한 형태가 아니라 밑바닥이 넓고 꼭대기가 매우 좁은 형태로 바뀌게 된다. 기하학에서는 밑바닥이 넓고 꼭대기가 매우 좁은 형태의 물체는 안정적이지만, 사회정치적 현실에서는 정반대이다. 중산층이 몰락하여 노동계급이 크게 늘어난 사회는 노동 대 자본의 계급적 대립이 격화되고 체제붕괴의 위험이 감도는 불안정한 사회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중산층의 몰락은 사회정치적 불안지수를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된다.

그렇다면 사회의 양극화가 일어난 우리 사회에서는 중산층이 몰락하여 사회계급구성이 변화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사회의 중산층은 쇠퇴하기는 하였으나 몰락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1997년 이후 10년 동안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을 겪으면서 양극화된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은 여전히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대한 사회집단으로 남아있다.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은 중산층을 해체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중산층이 아무런 변동을 겪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중산층은 1991년에 67.2%까지 늘어났으나,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이 일어난 1998년에는 약 10% 포인트가 급감하여 57.5%로 줄어들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 대략 50%을 차지하는 다수집단의 지위를 유지해오고 있다.

우리 사회의 중산층이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을 겪었는데도 해체되지 않고 다수집단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신흥중산층의 수가 꾸준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1997년 신식민주의경제파탄 직후에 있었던 중산층의 변동을 살펴보면, 중산층의 20.5%가 몰락하여 노동계급에 편입되거나 실업자로 전락하였고, 중산층으로 남아있는 비율은 77.1%이었으며, 자본계급에 편입한 비율은 0.9%이었다. 중산층의 몰락현상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사무직 노동자의 31.4%, 민간부문 종사자의 20.3%, 도시자영업자의 14.2%가 몰락하여 노동계급에 편입되거나 실업자로 전락하였다.

그에 비해, 공공부문 종사자의 93.4%는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하였으며, 특히 전문기술직 종사자는 신식민주의경제파탄 이후에도 1.9%밖에 몰락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공부문 종사자와 전문기술직 종사자는 중산층 가운데서도 가장 안정적인 집단이다. 이 집단은 자본주의언론시장에서 여론을 조성하고 담론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김대중 정권에서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10년 동안 중도개혁세력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집권을 연장할 수 있었던 까닭은,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해온 신흥중산층이 그 세력의 지지기반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이 10년이나 지속되자 중산층은 차츰 쇠퇴하거나 불안정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오늘에는 중산층이 노무현 정권에 등을 돌리는 민심이반현상이 일어났다.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의 고통과 불행을 겪은 사회집단은 중산층이 아니라 노동계급이다. 경제성장률이 -6.7%로 곤두박질쳤던 1998년에 노동계급의 실질임금은 9.3%나 떨어졌고, 실업률은 7.0%로 치솟았다. 노동계급의 38.0%가 실업자로 전락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의 고통과 불행이 노동계급에게 집중되고 있었던 1998년 1월 15일 이른바 '고통분담'이라는 기만적 구호를 내건 노사정위원회가 출현하여, 산업평화 유지, 해외자본 유치, 사회적 대타협 도출이라는 3대 행동강령을 내놓았다. 그러나 산업평화를 유지하고 해외자본을 끌어들이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어 고통을 나누면 경제파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저들의 주장은,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의 고통과 불행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모조리 떠넘기려는 술책이었다.

오늘 현실이 말해주듯, 신식민주의경제파탄으로 일어난 대량실업은, 이전에는 듣지도 못했던 비정규직을 확산시켰다. 대량실업과 비정규직 확산이 끊임없이 악순환하는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은, 일자리에서 쫓겨나 길거리로 내몰린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노숙자로 사느냐 아니면 비정규직 노동자로 재취업하느냐를 선택하라고 강요하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땀을 쥐어짜는 대량착취의 만행은 그렇게 하여 전면화되었다. 대량실업과 비정규직 확산의 악순환이 말해주는 것은, 신식민주의경제파탄으로 생겨난 사회의 양극화라는 재앙이 중산층보다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더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3. 보수적인 노동계급과 무기력한 진보정당

사회의 양극화는 풍요한 소수와 궁핍한 다수를 갈라놓은 양극화이자 노동시장을 갈라놓은 양극화이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단일한 사회집단인 노동계급이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갈라짐을 뜻한다. 85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은 상용직, 임시직, 일용직이라는 노동계약형태의 올가미, 전일제와 시간제라는 취업형태의 올가미, 그리고 직접고용과 파견, 용역, 사내하청 같은 간접고용이라는 고용형태의 올가미에 묶여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였다. 그에 따라 엄청난 임금격차가 생겼는데, 2001년에 상용직 노동자 임금의 42%이었던 일용직 노동자 임금이 2005년에는 36%로 줄어들었고, 전일제 취업자 임금의 35%이었던 시간제 취업자 임금은 같은 기간 30%로 떨어졌다. 이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커지고, 대량착취를 자행하는 노동계약형태, 취업형태, 고용형태가 만연된 것은 노동계급의 생산활동과 생활방식 자체를 바꾸어놓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되었다.

비정규직 확산이 노동계급의 생산활동과 생활방식을 바꾸어놓는다는 말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당부분이 비공식부문 근로대중으로 편입된다는 뜻이다. 신식민주의체제에서 비공식부문 근로대중은 공식부문 노동계급보다 더 심한 착취와 차별을 당하고 있지만, 그들의 현실은 공식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비공식부문 근로대중은 도시빈민계층과 철거민, 여성노동자와 이주노동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 가운데 상당부분은 청소용역, 파출부, 재활폐지수집인 같은 하층서비스업 노동자, 건설노무자로 불리는 일용노동자, 부업에 종사하는 가정주부들, 그리고 노점상과 행상에 종사하는 생계형 영세업자들이다.

우리 사회의 계급구성에서 일어나는 변화동향을 보면,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공식부문 근로대중이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궁핍화가 전례 없이 심해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궁핍화가 곧 진보의식화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본계급이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노동계급이나 간접적으로 수탈하는 근로대중은 생존권사수투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저항을 통해서 진보의식화되어 간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현실은 그러한 일반적인 생각대로 전개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진보적인 사회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오늘 우리 사회의 이념지형을 정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진보정당의 당원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또는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우리 사회에서 소수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적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소수이므로 나머지 절대다수는 보수적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다.

우리 사회에서 형성된 이념지형을 살펴보면, 중도적인 사회정치의식을 가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민주노조나 민주농민회 같은 대중단체들에 속해있으나 그들은 전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가운데서 소수이다. 민주노조에 속한 노동계급 가운데서 진보적인 사회정치의식을 가진 가장 선진적인 노동계급은 민주노조운동의 여러 정파들에 속해 있는 소수 중의 소수이다. 정파활동과 민주노조운동을 혼동하는 것은 인식착오이다. 다른 한편, 민주노조와 거리를 둔 어용노조에 속한 노동계급은 대체로 보수적인 사회정치의식을 가졌다. 민주노조나 어용노조에 속한 노동계급보다 훨씬 더 많은 미조직 노동계급 역시 보수적인 사회정치의식을 가졌다. 그것만이 아니라, 중도적인 사회정치의식을 가진 농민은 민주농민회에 속해있으나 전체 농민 가운데서 소수이며, 중산층에 속한 사무직 노동자들이나 학생들에게서 중도적인 사회정치의식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조금 높게 나타났으나 그 밖의 중산층은 대체로 보수적인 사회정치의식을 가졌다.

2004년 4월에 실시한 의식조사의 결과를 보면, 노동계급의 44.6%가 자신의 성향을 보수적으로, 27.5%가 중도적으로, 27.6%가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농민의 37.1%가 자신의 성향을 보수적으로, 33.8%가 중도적으로, 29.0%가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도시자영업자의 51.7%가 자신의 성향을 보수적으로, 24.3%가 중도적으로, 24.0%가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사무직 노동자의 41.1%가 자신의 성향을 보수적으로, 25.6%가 중도적으로, 33.3%가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학생의 34.2%자 자신의 성향을 보수적으로, 33.2%가 중도적으로, 32.5%가 진보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전체 응답자 가운데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22.7%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사회정치세력들을 세 갈래 이념지형에 따라서 진보변혁세력, 중도개혁세력, 수구반동세력으로 나눈다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가운데 70% 이상이 진보변혁세력에게 거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을 그리워하는 '향수병'이 나돌고, 수구반동정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까닭이 거기에 있으며, 또한 노무현 정권이 한미자유무역 체결을 강행하여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데도 폭발적인 저항이 일어나지 않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전선의 기치 아래 묶어 세우는 진보정치연합 건설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이 생기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전반적인 사회정치의식이 보수화의 질곡에 묶여있는 가운데, 중산층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대 국내지배계급과 제국주의세력 사이에 형성된 적대적 대립관계를 은폐하고 그 양자 사이의 충돌 가능성을 분산, 예방함으로써 중도개혁세력 대 수구반동세력의 상호경쟁구도를 극대화하는 대신, 진보변혁세력 대 수구반동세력의 전면대결을 가로막고 있다. 중산층의 그러한 기능에 의해서 신식민주의체제를 안정화하는 세력관계가 형성, 유지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중도개혁세력과 수구반동세력은 대중언론과 지식정보산업에 대한 통제력을 나눠먹기 식으로 분점하고, 자기들의 요구와 지향이 담긴 사회정치적 담론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기만하는 정치적 환상을 퍼뜨리고 있다. 특히 중산층마저도 이제는 자기를 불신하게 되자, 중도개혁세력은 이런 상황이 더 악화되면 수구반동세력과 맞붙는 집권경쟁에서 패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신식민주의체제의 안정화전략을 밀고 나가는 제국주의세력에게 더욱 아부, 굴종하여 집권을 연장해보려고 애쓰면서 달콤한 소리로 덧칠한 선거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그에 맞서 있는 진보변혁세력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힘을 결집시킨 폭넓은 진보정치연합을 건설하지 못하고 아직 소수정파활동에 머물러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주의혁명을 지향하는 정치적 급진화가 일어나기는커녕 정치적 혼란과 무질서가 끊이지 않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진보의식화하는 속도는 거의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이것이 진보정당이 정치적으로 무기력해진 현실이자, 민주주의혁명이 처한 현실이다. 진보정당이 정치적 무기력을 털어 버리지 못하면 진보정당의 집권은 다가서기 어려운 전략목표로 남아있을 것이고, 민주주의혁명의 앞날은 너무 멀게 보일 것이다.

선진적 정치활동가들은 보수적이고 미조직된 노동계급을 진보적이고 조직된 노동계급으로 일으켜 세우는 민주노조운동을 활성화하는 투쟁을 밀고 나가는 한편, 나태하고 무기력해진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는 투쟁을 밀고 나가야 진보정당의 집권에 다가설 수 있으며 민주주의혁명의 길을 열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활성화투쟁과 혁신투쟁에서 중요한 요인은, 진보정당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사수투쟁에 당의 운명을 거는 전략사업,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전면적으로 결합하는 전략사업을 더욱 힘있게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진보정당은 중산층의 지지와 동조를 이끌어 내거나 또는 적어도 진보정당을 반대하지 않는 중립적 태도를 취할 수 있도록 그들의 정치적 요구를 반영한 전략사업을 내와야 할 것이다. (2007년 8월 31일 작성)

* 이 글은 민주노동당 기관지 '이론과 실천' 2007년 9월호에 실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