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초기조치의 핵심문제, 그 이행과정과 전망

 

<차례>
1. 헥커의 비밀보고서
2. 격변은 2008년에 일어난다
3. 전략적 압박공세, 전략적 태도변화
4. 3단계 관계정상화의 의미
5. 라이스의 평양방문과 푸에블로호 반환

1. 헥커의 비밀보고서

"북(조선)은 50MWe 원자로 건설공사를 재개하였고, 2008년에 완공할 것이다. 그 원자로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경우, 해마다 핵무기 열 개를 제조할 수 있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

이것은 2005년 8월 북(조선)을 방문한 뒤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에게 비밀보고서를 제출하였던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핵연구소 소장 출신의 전문가 씩프릿 헥커(Sigfried S. Hecker)가 2005년 11월 8일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이 워싱턴에서 열었던 핵확산금지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워싱턴포스트』 2005년 11월 9일)

헥커가 라이스에게 건넨 비밀보고서에는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 알 수 없으나, 헥커가 위의 학술회의에서 지적한 대로, 지금 "북(조선)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전속력으로 다그치는 중(North Korea is moving full speed ahead with its nuclear weapons programs)"이라는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쉬정부가 북(조선)의 핵무기 프로그램 가운데서 가장 긴장감을 느끼는 대상은, 2005년 상반기에 건설공사를 재개한 영변 원자로 2호기이다.

미국의 과학 및 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 데이빗 올브라이트(David Albright)는 상업용 인공위성이 찍은 영상자료를 살펴보면서 영변 원자로 2호기 건설공사가 별반 진척되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그 원자로를 완공하려면 몇 해가 걸릴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연합뉴스』 2006년 6월 27일) 그런데 상업용 인공위성 한 기가 한(조선)반도를 촬영하는 기회는 하루에 한 차례가 될까말까 하고, 위성이 이동하는 속도 때문에 촬영시간은 2분을 넘지 못하며, 그나마 구름이 낀 날이나 밤에는 촬영하지 못한다. 전천후 정밀촬영능력을 가지고 저고도를 비행하는 첩보위성이 찍은 영상자료라면 몰라도, 그처럼 허술한 상업용 인공위성이 찍은 영상자료나 들여다봐서는 각종 시설들이 들어찬 거대한 영변 핵단지에서 무슨 작업이 진행되는지를 알 수 없으므로 올브라이트의 추정은 무의미하다.

핵무기 프로그램을 전속력으로 다그치고 있는 북(조선)이 영변 원자로 2호기 건설공사를 재개한 때로부터 3년 뒤에 완공할 것으로 내다본 헥커의 예상은 무리가 아니다. 영변 원자로 2호기 건설공사가 재개된 2005년 상반기부터 3년이 되는 완공예상시점은 2008년 상반기이다.

중요한 것은, 북(조선)이 건설공사를 다그치는 영변 원자로 2호기가 지금 가동 중인 5MWe 원자로보다 용량이 열 배가 큰 50MWe 원자로라는 점이다. 장차 그 원자로가 가동되면 북(조선)은 무기급 플루토늄을 지금보다 열 배나 더 증산하게 될 것이다.

북(조선)이 무기급 플루토늄을 열 배나 더 증산하는 것은 부쉬정부에게 견디기 힘든 악몽이다. 원자로 2호기 건설공사가 예상대로 진척된다면, 미국 대통령선거의 열기가 절정에 오르게 될 2008년 하반기에 부쉬정부는 견디기 힘든 악몽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그것은 북(조선)의 '핵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완전히 실패하고 손발이 묶여버린 부쉬가 대선 직전에 사방에서 그의 정적들이 쏘아대는 집중포화를 맞으며 쓰러지는 악몽이다. 국무부 집무실에서 헥커의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던 라이스의 눈가에는 그러한 악몽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을 것이다.

부쉬정부의 시각에서 보면,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영변 핵시설을 동결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은 북(조선)이 생산한 무기급 플루토늄을 핵탄두로 만드는 것을 중지시키는 일이다. 왜냐하면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재처리 공정은 미국의 첩보위성이 감시하는 영변 핵시설에서 진행되는데 비해서, 무기급 플루토늄을 핵탄두로 제조하는 무기화 공정은 미국의 첩보위성이 전혀 파악할 수 없도록 철저히 은폐된 채 진행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첩보기관들은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영변 핵시설의 가동여부를 파악할 수 있지만, 북(조선)이 영변 핵시설에서 생산한 플루토늄을 가지고 핵탄두를 제조하는지, 금속덩어리처럼 생긴 플루토늄을 안전용기에 담아 외부에 유출하는지, 아니면 비밀지하보관소에 보관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헥커가 지적한 대로, 북(조선)이 이미 생산한, 핵탄두 여덟 기를 만들기에 넉넉한 플루토늄 40kg은 서류가방 한 두 개에 넣어둘 수 있는 부피이므로 그것을 숨겨두면 아무도 찾을 수 없다. (『연합뉴스』 2006년 1월 1일)

그러므로 핵확산을 금지하려고 안달하는 부쉬정부는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핵시설 가동과 핵시설 건설부터 서둘러 중지시킬 수밖에 없다. 다급해질 대로 다급해진 부쉬정부가 기존 원자로 가동과 새로운 원자로 건설을 중지시키려고 자기의 원칙을 황망히 내던지고 북(조선)의 원칙을 따르는 정치적 굴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미국의 첩보기관들은 이란이 핵탄두를 제조하려면 4년이 더 걸린다고 판단하였는 데도, 부쉬정부가 나탄즈의 실험용 원자로 가동과 부셰르의 원자로 건설공사부터 중지시키려고 유엔안보리를 동원한 온갖 압박술책, 페르시아만에서의 무력침공준비, 특수부대와 첩보원들의 침투공작에 광란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부쉬에게는 북(조선)이 보유한 핵탄두도 무섭지만, 기존 원자로 가동과 새로운 원자로 건설도 그것 못지 않게 무서운 것이다.

『교도통신(Kyoto News)』이 2007년 2월 26일 회담소식통의 말을 인용하여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07년 2월 8일부터 13일까지 열린 6자회담에서 작성된 1차 합의문 초안에는 북(조선)의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내용이 들어갔으나 북(조선)이 반대하여 그 내용이 삭제되었는데, 북(조선)의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내용을 삭제하고 새로 2차 합의문 초안은 작성한 것은 미국 대표단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부쉬정부가 북(조선)의 핵탄두를 폐기하는 문제보다 플루토늄 생산을 중지시키는 것을 더 급선무로 여긴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 격변은 2008년에 일어난다

주목하는 것은, 북(조선)의 50MWe 원자로 건설공사가 완공단계에 들어설 2008년 상반기가 9.19 공동성명 이행을 완수하는 시점과 겹쳐지고, 곧 이어 미국의 대통령선거 일정과 맞물리게 된다는 점이다. 서두른다는 느낌을 줄만큼, 9.19 공동성명 이행을 완수하는 시점을 2008년으로 앞당겨 잡아놓은 쪽은, 놀랍게도 북(조선)이 아니라 부쉬정부이다. 이것은 부쉬정부가 다급하게 9.19 공동성명을 이행해야 하는 곤경에 빠져있음을 말해준다. 명백하게도, 시간은 북(조선)의 편이다. 곤경에 빠진 부쉬정부는 북(조선)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기를 감수하더라도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탈출로밖에 다른 길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물론 부쉬정부가 9.19 공동성명 이행하기를 그토록 서두른다는 말은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서두른다는 뜻이고, 그들이 말하는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란 북(조선)의 핵시설을 불능화(disablement)하는 비핵화를 뜻한다. 그러나 2.13 초기조치 합의과정에서 뚜렷이 드러난 것처럼,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기 위한 9.19 공동성명의 이행과정은 부쉬정부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제국주의압박공세의 과정이 아니고, 북(조선)이 우세한 힘으로 자기의 요구를 관철해나가는 사회주의반제투쟁의 과정이다.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북(조선)이 우세한 힘으로 관철해나가는 요구는, 한 마디로 말해서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여 국교를 수립하는 것이다. 부쉬정부도 북(조선)이 요구하는 관계정상화를 거부할 수 없으므로 그 요구를 자기들이 제기한 핵시설 불능화 요구와 결부시켜놓았다. 그리하여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과 북(조선)의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과정이 상응적으로 일치하게 된 것이다. 2.13 초기조치에 나타나있는 대로, 핵시설 가동중지→핵시설 불능화로 이어지는 비핵화 과정은 한(조선)반도 평화체제 수립→조미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으로 이어지는 조미관계의 정상화 과정과 일치하게 될 것이다.

9.19 공동성명과 그것을 이행하기 위한 2.13 초기조치에는 여러 목표들이 들어있지만,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목표를 손꼽는다면 단연 조미관계 정상화를 들 수 있다. 북(조선) 외무성 리근 미국국장이 말한 대로(『한겨레』 2006년 3월 8일), 한(조선)반도 비핵화를 통해서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조미관계 정상화를 통해서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는 것임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북(조선)의 시각으로 보면, 2.13 초기조치를 이행하는 과정은 사실상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부쉬정부는 2007년 초부터 구체적인 실행에 들어가 1년 6개월 뒤인 2008년 중반까지 북(조선)의 핵폐기와 조미관계 정상화를 마무리하자는 구상을 북(조선)에게 전하였다. (『경향신문』 2006년 12월 4일)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R. Hill)은 2006년 11월 28일과 29일에 베이징에서 모두 10시간 동안이나 직접협상을 진행하면서 김계관 부상에게 그 구상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베이징에서 6자회담이 진행되고 있었던 2006년 12월 20일 오전 에 열린 조미직접협상에서 크리스토퍼 힐은 2008년 중반까지 9.19 공동성명 이행을 완수하기 위한 단계적 실행조치의 이행로정(road map)을 담은 문서를 북(조선)에게 건넸다. (『연합뉴스』 2006년 12월 20일) 그 이행로정에 따라 성사된 최초의 성과가 2007년 1월 16일부터 18일까지 열린 베를린회담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부쉬정부가 자기의 이행구상을 문서화하였다는 점이다. 미국이 이행로정을 문서로 작성하여 건넨 것은 조미관계사에서 미국이 처음으로 취한 의미 있는 행동이다.

2007년 2월 5일 미국 국무부가 공개한 「2008 회계연도 업무계획 보고서」에 따르면, 국무부는 올해 내내 북(조선)과 협상을 지속하여 2008년 초에는 협상을 마무리하고 북(조선)의 핵시설을 불능화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북(조선)의 중거리, 장거리 미사일 생산을 제한하고 수출을 금지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미사일협상도 2008년에 시작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국무부의 계획은 부쉬정부가 2008년을 시한목표로 정하고 조미직접협상을 부쩍 서두르고 있음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부쉬정부에게 북(조선)의 '핵문제'와 미사일문제의 해결은 북(조선)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므로 2008년에 그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적어도 2008년에 9.19 공동성명을 실현하고 조미관계를 정상화한다는 소리이다. 그들의 계획이 그대로 실행된다면, 2008년은 조미관계의 정상화가 실현되는 그야말로 격변의 연대가 될 것이다. 격변의 바람이 불어오는 드센 기운은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3. 전략적 압박공세, 전략적 태도변화

부쉬정부가 이처럼 전향적인 태도로 조미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는 까닭은, 북(조선)의 무기급 플루토늄 생산량을 급증시킬 기존 원자로 가동과 새로운 원자로 건설을 하루라도 일찍 중단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북(조선)은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면 그것을 곧 핵탄두로 제조할 것이다. 2005년 2월 10일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와 증산을 선언한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핵무기 보유와 증산에 관한 선언을 행동으로 입증한 것이 2006년 10월 9일에 실시한 지하핵실험이고, 영변 핵시설을 노리는 미국의 정밀타격작전을 무력화시키는 군사력을 과시한 것이 2006년 7월 3일에 실시한 미사일발사훈련이다.

영변 원자로 2호기 건설공사 재개(2005년 상반기), 미사일발사훈련 실시(2006년 7월), 지하핵실험 실시(2006년 10월)로 이어진 삼중타격을 얻어맞은 부쉬정부는 결국 북(조선)의 전략적 압박공세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리하여 부쉬정부가 북(조선)이 요구하는 행동 대 행동의 원칙, 직접협상 원칙을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되었음은 지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까지 이르는 과정에 관해서는 2007년 2월 20일에 발표한 나의 글 「2.13 초기조치 합의와 초기단계의 전략적 승리」에서 자세하게 논하였다.

관심을 끄는 것은, 부쉬정부가 행동 대 행동의 원칙, 직접협상의 원칙에 따라 작성하여 북(조선)에게 건넨 이행로정이다. 이행로정에는 어떠한 실행조치들이 담겨있을까? 이 물음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논의한 비밀사항에 관련된 것이어서 외부에서는 알 수 없지만, 언론보도에서 드러난 윤곽을 희미하게나마 엿볼 수 있다.

부쉬정부가 북(조선)에게 건넨 이행로정에 들어있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조미관계를 어떤 경로로 정상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정당하게 풀어나가는 이행과정에 상응하여 북(조선)은 자기의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공약을 이행하게 될 것이다. 북(조선)의 시각으로 보면, 북(조선)의 핵시설을 불능화하기 위해서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조미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북(조선)의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것이다.

미국언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부쉬정부의 이행로정에는 '3단계 관계정상화 방안'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것은 북(조선)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는 제1단계,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제2단계, 조미 수교협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제3단계로 되어 있다. (Associated Press 2006년 12월 26일) 조미직접협상에서 3단계 관계정상화 방안을 김계관 부상에게 설명하였던 힐은, 그 방안이 국무장관 라이스의 결재를 받았으며 워싱턴 수뇌부의 뜻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하였다. (『연합뉴스』 2006년 12월 22일) '워싱턴 수뇌부'라는 힐의 표현은 미국 대통령 부쉬를 가리킨 것이다.

최근 부쉬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변화된 행동에서 엿보이는 것은,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부쉬의 의사이다. 워싱턴의 외교정보지 『넬슨 리포트』 편집인 크리스토퍼 넬슨(Christopher Nelson)은 2007년 2월 6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진행한 방송대담에서 미국 국무부 관리의 말을 인용하면서, 북(조선)과 협상하기로 "굳게 결심한" 부쉬가 북(조선)의 '핵문제'를 전담하는 보좌관을 두고 자신이 직접 주관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북(조선)을 가리켜 2002년에는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2003년에는 '무법정권(outlaw regime)'으로, 2004년에는 '가장 위험한 정권(the most dangerous regime)'으로 마구 비방중상해오던 부쉬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북(조선)과 관계를 정상화하려고 급히 서두는 것은 전략적 변화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관계정상화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조미 두 나라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적대관계가 완전히 청산되고 동맹관계로 바뀌는 것은 결코 아니다. 머지 않아 조미 두 나라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는다고 해도, 북(조선)이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리고 미국이 제국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조미관계에 형성된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구도는 지금보다 완화되기는 하겠지만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조미 두 나라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대결구도를 완화하는 것은, 적대관계 자체를 완전히 해소하지 않으면서 그 관계를 일정하게 변형시킨다는 뜻이다.

조미관계 정상화란, 2.13 초기조치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양자간 현안들(pending bilateral issues)을 해결하고 전면적 외교관계(full diplomatic relations)로 나아가는 것이고,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에서 채택된 조미기본합의(Agreed Framework)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면, 양자관계를 대사급으로 격상시키는 것(upgrading bilateral relations to the ambassadorial level)이다.

4. 3단계 관계정상화의 의미

좀더 구체적으로 논한다면, 적대관계의 변형이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기존의 대립적 요소가 청산되고 새로운 대립적 요소가 생겨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논점을 들춰낼 필요가 있다.

4-1) 기존의 대립적 요소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북(조선)을 이른바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하고 적성국교역법을 적용해온 적대행위를 중지하게 될 것이다. 그에 관하여 부쉬정부는 2.13 초기조치에서 공약하였으므로 이제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하고 적성국교역법을 적용해온 적대행위를 중지하는 것은, 북(조선)의 사회주의자력갱생을 압박해온 제국주의경제봉쇄를 푼다는 뜻이다. 제국주의경제봉쇄가 풀리면 북(조선)은 사회주의자력갱생을 더욱 힘있게 밀고 나가면서 경제발전에 총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요즈음 북(조선)의 언론에서 자주 쓰는 사회주의강성대국의 여명이 밝아온다는 수사적 표현은 제국주의경제봉쇄의 완전한 해제가 촉진하는 사회주의자립경제의 비약적 발전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조선)의 경제는 봉건주의쇄국노선에 기초한 자급자족체제(autarkic system)가 아니라 사회주의자력갱생노선에 기초한 사회주의자립경제(socialist self-supporting economy)이다.

4-2) 조미 두 나라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청산해야 할 대립적 요소는, 무력충돌을 불러올 수 있는 군사적 대립이다. 무력충돌을 불러올 수 있는 군사적 대립을 청산하는 길은, 한국(조선)전쟁의 정전상태를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조미 두 나라는 정전상태를 평화상태로 전환한다는 원칙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전환방도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2.13 초기조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그 전환방도에 관한 합의에 이를 것이지만, 정전협정(armistice)을 평화협정(peace treaty)으로 교체하는 방도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2006년 4월 20일 중국 주석 후진타오(胡錦濤)가 백악관을 찾았을 때, 부쉬는 미국이 북(조선)에게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안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었다고 밝힌 당시 국무부 부장관 로벗 졸릭(Robert Zolik)의 말(『월스트릿저널』 2007년 2월 27일)을 들어보면, 부쉬에게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4-3)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는 것은, 과거의 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전쟁을 도발하려는 군사행동을 중단하는 것이다. 새로운 전쟁을 도발하려는 군사행동을 중지해야 2.13 초기조치에서 명시한 '항구적 평화체제(permanent peace regime)'를 세울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새로운 전쟁을 도발하려는 군사행동을 중지하는 데서 결정적인 문제는, 북침전쟁 시나리오에 따라 해마다 세 차례 씩 실시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이다. 북(조선)은 2007년 1월 16일부터 18일까지 열린 베를린회담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에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였고 미국도 그 문제에 주의하겠다고 말했다는 언론보도(『조선신보』 2007년 2월 11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라는 북(조선)의 요구에 대해서 부쉬정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연초부터 드러내 보인 일련의 도발적 군사행동들은 해결전망을 무척 어둡게 한다. 2007년 1월 8일 미국 국방부는 뉴멕시코주의 제49전투비행단 소속 에프(F)-117 1개 편대를 남(한국)에 배치하여 넉 달 동안 정밀타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에프(F)-117은 제국주의전쟁광들이 무력침공에 동원하는 첨단기종이다. 또한 2007년 1월 25일에는 탄도미사일방어능력을 가진 미국해군 이지스함이 일본 북부의 아오모리(靑森)현 하치노헤(八戶)항에 입항하였고, 2월 5일에는 또 다른 이지스함이 홋카이도(北海道)의 이시가리(石狩)항에 입항하였다. 가나가와(神奈川)현의 요코스카(橫須賀) 기지에 배치된 주일미군 이지스함이 민간항구에 기항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2007년 2월 10일에는 오키나와(沖柯)현의 가데나 (嘉手納)에 있는 미국공군기지에 최신예 전투기 에프(F)-22 랩터(Raptor) 12대를 배치하였다. 랩터를 미국 영토 밖에 배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2007년 2월 24일에는 미국의 최신형 핵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 호가 나가사키(長崎)현 사세보(佐世保)항의 미국해군기지에 입항하였다. 레이건 호가 일본에 기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공중발사 미사일(AGM-69), 공중발사 순항미사일(AGM-86)로 무장한 에프(F)-117과 에프(F)-22의 전진배치, 그리고 이지스함의 일본 북부 출항과 최신형 핵항공모함의 일본 기항은 부쉬정부가 한(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막강한 무력을 집중배치하였음을 뜻한다.

이러한 현상들은 중국인민해방군의 무력증강에 대응하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부쉬정부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는 대신, 한(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첨단무력을 배치한 것인지 아니면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일환으로 그러한 무력을 집결시킨 것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4-4) 무력충돌을 불러올 수 있는 군사적 대립을 청산하는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조치는,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주한미국군이 남아있는 한, 이른바 '핵우산 방위공약'을 이행하는 미국의 제국주의북침전쟁 시나리오는 폐기되지 않는다. '핵우산 방위공약'은 방위라는 말로 위장한 핵선제타격공약이다. 주한미국군이 철군하는 것은 병력과 군사장비를 거두어 가는 철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핵우산 방위공약'까지 포기함으로써 제국주의북침전쟁 시나리오를 완전히, 되돌릴 수 없게 폐기하는 것을 뜻한다.

북(조선)은 주한미국군을 완전히 철군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부쉬정부는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에 따라서 주한미국군을 감축하고 신속기동군(RDF)으로 개편하여 평택 미국군기지에 재배치하는 중이다. 부쉬정부의 그러한 행동을 보면, 주한미국군을 완전히 철군시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지만 북(조선)이 핵무기를 폐기하겠다는 결심을 단호하게 밀고 나가고 있으므로, 주한미국군 철군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부 분석가들은 북(조선)이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단계에까지는 나아갈 수 있어도 핵무기는 폐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으나, 그것은 북(조선)의 정치적 의도를 모르는 소리이다.

2.13 초기조치에 명시된, 북(조선)의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공약은, 북(조선)이 장차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성립될 수 있는 공약이다. 핵무기를 폐기할 생각이 없으면서 핵시설을 불능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북(조선)이 6자회담에서 2.13 초기조치 초안을 작성할 때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내용을 삭제하도록 밀어붙인 것은,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핵시설을 불능화한 뒤에 마지막 단계에 가서 폐기하겠다는 뜻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힌 대로, 한(조선)반도의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말은 외교적 수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북(조선)에서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절대적 원칙을 언급한 것이다. 북(조선)에서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수사적 표현으로 언급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북(조선)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실현했다고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핵무기를 폐기하여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는 과업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에 대한 혁명적 의리를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 하는 최상의 혁명과업인 것이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일점일획도 바꾸지 않고 바꿀 수도 없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 유훈에 따라 북(조선)의 핵무기를 반드시 폐기할 것으로 예상하는 근거가 거기에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북(조선)의 핵무기 폐기는 핵시설 가동을 중지하고 핵시설을 불능화한 뒤에 취하는 최종조치(final action)가 될 것이다. 물론 북(조선)이 핵무기를 폐기하는 최종조치에는 핵탄두를 실어 나르는 중거리, 장거리 미사일을 포기하는 조치도 포함되기 마련이다.

북(조선)이 핵무기를 폐기하는 최종조치는 미국이 그에 상응하여 취해야 할 최종조치를 동반한다. 최종조치는 조미 두 나라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최종적으로 실행함으로써 마침내 한(조선)반도의 비핵화 과업을 완수하는 조치이다.

북(조선)이 핵무기를 폐기하고 중장거리 미사일을 포기하는 최종조치에 상응하여 미국이 취해야 할 최종조치는 명백하게도 주한미국군 완전철군과 '핵우산 방위공약'의 포기이다. 북(조선)이 핵시설 가동을 중지하고 불능화하는 것에 상응하여 미국이 한(조선)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조미관계를 정상화하고 주한미국군을 단계적으로 철군하여 '핵우산 방위공약'을 포기하면 그에 상응하여 북(조선)도 모든 중장거리 미사일을 포기하고 핵무기를 단계적으로 폐기할 것이다. 한(조선)반도의 비핵화는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주한미국군을 감축하는 시늉이나 하면서 이미 건설되기 시작한 평택 미국군기지에 재배치한다면 그에 상응하여 북(조선)도 핵무기와 중장거리 미사일을 종전대로 보유할 것이다. 북(조선)의 핵무기 폐기와 중장거리 미사일 포기는 주한미국군 완전철군과 '핵우산 방위공약' 포기를 동반하는 최종조치인 것이다.

2.13 초기조치 이행이 완수될 2008년 이후, 그러니까 미국 대통령선거가 끝나서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2009년부터 북(조선)은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을 실현하기 위해서 주한미국군을 철군하고 '핵우산 방위공약'을 포기하라는 최후의 압박공세를 미국의 새로운 정권에게 들이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엄청난 강도의 압박공세일 것이다.

북(조선)에게 핵무기 폐기와 중장거리 미사일 포기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미국에게 주한미국군 철군과 '핵우산 방위공약' 포기 역시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미국이 보여준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면, 미국은 감축, 재배치, 개편 등의 술책으로 시간을 끌어가다가 주한미국군을 철군하지 않으려는 최후의 방어선을 쳐놓고 반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로써 사회주의핵무장 포기와 '핵우산 방위공약' 포기라는 최종과제를 놓고, 사회주의 대 제국주의의 최후결전을 방불케 하는 정면대결이 불을 뿜을 것이다.

그 마지막 대결에서 어느 쪽이 이길 것인가? 정면대결의 승패여부는 협상탁자 위에서 명멸하는 외교수완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신념과 의지에 의해서 결정되는 법이다. 주한미국군과 '핵우산 방위공약'을 필사적으로 유지하려는 아메리카합중국 국가안보회의의 정책과 전략이, 그들의 제국주의점령군을 기어이 철군시키고 '핵우산 방위공약'을 포기시키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의 신념과 의지를 결코 능가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정면대결이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날 것인지를 예상할 수 있다. 1993년 이후 14년 동안 거센 역풍을 맞으며 극적인 반전을 거듭하면서도 끝내 2.13 초기조치를 합의하는 현 단계까지 정세변화를 주동적으로 이끌어온 북(조선)의 저력, '최후에 누가 웃는가 보자'는 구호를 외치며 세차고 끈질기게 밀어붙이는 그들의 저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조선)반도를 비핵화하는 과정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북(조선)은 핵시설 가동중지→핵시설 불능화→핵무기 폐기와 중장거리 미사일 포기로 이어지는 비핵화과정을 밟게 될 것이며, 그에 상응해서 미국은 한(조선)반도 평화체제 수립→조미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주한미국군 완전철군과 '핵우산 방위공약' 포기로 이어지는 비핵화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물론 주한미국군을 완전히 철군한다 해도, 태평양군사령부가 이끄는 미일동맹군은 제국주의침략전쟁 시나리오를 여전히 유지할 뿐 아니라 '중국위협론'을 들먹거리면서 침략무력을 더 강화하겠지만, 주한미국군 철군은 일단 한미연합군의 제국주의북침전쟁 시나리오를 파기시키는 전략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미일동맹군의 제국주의침략전쟁 시나리오는 한(조선)반도에 집결한 한미연합군의 제국주의북침전쟁 시나리오와 달리, 동북아시아 전역에서 중국인민해방군, 러시아극동군, 그리고 조선인민군을 각각 상대로 하는 전방위 전쟁계획으로 작성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동북아시아 평화체제를 세우려는 다자회담은 미일동맹군의 제국주의침략전쟁 시나리오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정치문제로 나선다. 2.13 초기조치에 "초기조치가 이행되는 대로 6자는 9.19 공동성명 이행을 확인하고 동북아시아 안보협력 증진방안(ways and means for promoting securi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을 모색하기 위한 장관급회담(ministerial meeting)을 신속하게 개최한다"는 공약이 들어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5. 라이스의 평양방문과 푸에블로호 반환

6자회담 참가국들 가운데 북(조선)과 정상회담을 갖지 않은 나라는 미국밖에 없으므로, 부쉬가 조미정상회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006년 11월 18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쉬가 북(조선)이 핵을 포기할 경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한국(조선)전쟁의 종전을 선언하는 문서에 공동서명할 용의가 있다고 말하였던 것(『연합뉴스』 2006년 11월 30일)은 조미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한층 높여준 발언으로 평가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조미정상회담을 통해서 문제를 전반적으로 해결하려는 일괄타결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미관계 정상화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 조지 부쉬와 정상회담을 갖고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일괄타결하는 방안을 2005년 6월에 평양을 방문하였던 당시 통일부장관 정동영을 통해서 백악관에 제안하였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붕』 2005년 9월 12일)

물론 부쉬가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목적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목적은 서로 다르지만, 2.12 초기조치를 합의한 뒤로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문제가 조미직접협상의 목표 안에 포함될 것으로 내다보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 아니다. 실제로 조미 두 나라 정상은 직접 만나서 문제를 일괄타결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으므로, 문제를 해결하는 지점은 정상회담을 열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성숙시키고, 정상회담을 열기 위한 분위기를 어떻게 조성하는가에 있다.

조미 두 나라가 2.13 초기조치에서 공약한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여 지난 시기 조미기본합의(Agreed Framework)를 이행하고 2000년 10월 12일 워싱턴에서 조미공동성명(DPRK-US Joint Communique)을 발표한 수준으로 나아간다면, 조미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는 조건이 성숙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2.13 초기조치 이행수준이 조미정상회담의 성사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2.13 초기조치는 "참가국들은 상기 초기조치들이 향후 60일 이내에 이행되며 이러한 목표를 향하여 상호조율된 조치를 취한다는 데 합의하였다"고 명시하였고, 조미관계 정상화를 협의하는 "실무단(Working Group) 회의를 향후 30일 안에 개최하는데 합의하였다"고 명시하였다.

이 일정에 따르면, 2.13 초기조치를 이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시간은 2월 13일부터 두 달이다. 따라서 2007년 3월 중순 안에 조미관계 정상화를 협의하는 실무단 회의가 열리게 될 것이다. 조미관계 정상화를 협의하는 실무단 회의에서 문제가 잘 풀리면, 조미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문제는 조미정상회담을 열기 위한 분위기를 어떻게 조성하는가 하는 것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미정상회담을 열기 위한 분위기는 미국 국무장관의 평양방문으로 절정에 이를 것이다. 남(한국)의 언론이 베를린 회담에서 라이스의 평양방문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보면서, 라이스가 평양을 방문할 시점을 2007년 4-5월로 예상하는 것(『경향신문』 2007년 2월 23일)은 무리한 관측이 아니다.

라이스의 평양방문에 상응하여 북(조선)이 취할 수 있는 특별한 조치는 대동강가에 전시해놓은 미국 첩보선 푸에블로호를 반환하는 것이다. 북(조선)은 이미 오래 전에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면 푸에블로호를 넘겨주겠다고 암시한 바 있으며, 클린턴정부 시기인 2000년 10월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K. Albright)가 평양을 방문한 직후에도 북(조선)은 푸에블로호 반환문제를 논한 바 있다. (Associated Press 2005년 9월 7일)

푸에블로호 나포는 미국 해군사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워싱턴 정가에서 푸에블로호를 되돌려 받으려는 열의를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장 최근에 푸에블로호 반환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미국 연방상원에 제출된 때는 2007년 1월 23일이며, '2006 회계연도 지출법안'에 첨부된 연방상원 보고서는 국무장관에게 푸에블로호 반환노력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였다. (『연합뉴스』 2007년 2월 5일)

평양을 찾아간 미국 국무장관에게 조미 적대관계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푸에블로호를 넘겨주는 것은 조미관계를 정상화하는 극적인 사변으로 될 것이며 워싱턴에 몰아칠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북(조선)이 라이스의 평양방문에 응답하는 뜻에서 푸에블로호를 미국에게 돌려주겠다고 발표하면, 미국여론은 조미정상회담 개최를 지지하는 쪽으로 쏠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교관례를 깨면서 공식석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원색적으로 비방중상하였던 부쉬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만나는 것은 심약한 그로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며, 부쉬가 평양을 찾아가지 않은 조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먼저 워싱턴을 방문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 아니다.

조미정상회담에는 이처럼 풀기 힘든 문제가 얽혀있지만, 문제해결의 길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백악관의 초청으로 워싱턴을 공식방문하면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9월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뉴욕에서 열린 유엔 밀레니엄 총회에서 연설하기 위해 유럽을 경유하여 미국으로 가던 길에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공항보안관리들이 일반여행객들에게 하듯이 몸수색을 실시하는 봉변을 당하는 바람에 평양으로 되돌아갔고, 당시 미국 국무장관 올브라이트가 유감의 뜻을 표하여 수습한 적이 있다. 만일 그때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유엔방문이 성사되었다면 유엔총회에 참석한 미국 대통령 클린턴과 만나 조미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푸에블로호가 미국에 도착하여 환수행사가 열리고,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하여 백악관에서 조미정상회담이 열리는 극적인 장면의 상상은, 조미관계 정상화를 바라는 한(조선)민족과 진보적 인류의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글을 집필하는 중에, 언론은 북(조선) 외무성의 김계관 부상이 조미관계 정상화 문제를 다루는 실무단 회의를 갖기 위해 오늘 오후 8시 30분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조미관계 정상화를 실현하기 위한 발걸음은 빨라질 것이다. (2007년 3월 2일 작성)